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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이스]물속의 도시

김응수, 2014

[초이스]물속의 도시 대표 이미지

<물속의 도시>는 충주댐 건설로 수몰된 300여 개의 마을과 이 마을 사람들의 역사, 지난 삶의 흔적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영화다. 익히 알려졌듯이 충주댐은 4대강 유역 종합개발계획의 일환으로 1978년부터 1985년에 걸쳐 완성된 댐으로 대한민국 최대 규모이다. 이 댐 건설로 4개 시군에 걸쳐 300여 개 마을이 사라지고 7천여 세대 4만 명에 육박하는 수몰민이 양산됐다고 하니 수많은 사연과 삶의 흔적이 물속으로 사라졌음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물속의 도시>는 충주를 기반으로 꾸준히 영화적 실험을 해 온 김응수 감독의 신작으로 주제 못지않게 주제를 구현하는 스타일이 매우 중요한 영화다. 

영화 후반부에 충주호 수몰 지역민 가운데 최고령자인 임종인 씨(1919년생)가 등장한다. 호수 앞 거대한 나무 아래에 한동안 앉아 있는 그의 모습은 영화의 다른 장면과 달리 핸드폰으로 촬영된 흑백 영상이다. 한참 동안 호숫가를 떠나지 않는 노인의 모습을 길게 보여준 뒤에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집 앞에서 앰뷸런스에 실려가는 노인의 모습을 보게 된다. 역시 흑백으로 촬영된 이 장면에서 카메라는 노인에게 가까이 가지 못하고 그나마도 매우 짧은 시간 촬영되었을 뿐이다. 그런데 애초에 영화화를 염두에 두지 않은 상태에서 촬영된 노인의 이미지야말로 이 영화의 모든 것을 응축해 보여주는 이미지라는 생각이 든다. 이 폭력적인 개발과 수몰의 역사의 산증인인 노인의 상징적 죽음. 일체의 수식과 사운드를 배제하고 침묵 속에 보이는 이 장면은 영화가 담아내는 사건의 의미에 대해 조용히 그러나 엄중히 묻는다.

통상적으로 사건의 체험자들을 인터뷰하는 다큐멘터리들은 인터뷰 대상을 카메라 앞에 세워놓고 그들의 증언과 함께 얼굴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영화는 이런 방법에 관심이 없다. 카메라 앞에 선 노인들은 마치 정물 사진의 모델이 된 듯이 말없이 서 있을 뿐이다. 얼굴에 가득한 주름을 온전히 드러낸 채 카메라 앞에서 중립적인 혹은 특정한 의미를 담지 않은 무표정으로 서 있는 사람들의 얼굴은 특정한 의미로 환원되지 않는 삶의 다면성과 모호함을 확장시킨다. 인간의 얼굴 클로즈업에서 존재의 심오한 표현을 발견한 유럽의 작가들처럼 김응수 감독은 굳이 말이 없더라도 이들의 얼굴 자체가 많은 것을 알려준다고 믿는 것 같다. 아니, 차라리 말은 얼굴이 드러내는 진실을 미혹시킨다고 보는 것 같다. 물론 감독은 이들을 인터뷰하고 그들의 육성을 녹음했다. 그러나 그들의 목소리는 다른 방식으로 제시된다. 배 위에 올라탄 카메라가 충주호의 구석구석을 살필 때 카메라에 담긴 짙푸른 물결 영상 위로 수몰민들의 증언이 흐른다. 과거 특정한 순간의 그들의 경험과 수몰의 기억이 끊길 듯 이어질 듯 계속되는 것이다. 처음부터 영화는 인터뷰 대상자들의 이미지와 목소리를 분리하기로 계획한 것이다. 그럼으로써 사람들이 살아온 시간을 좀 더 다층적이고 두텁게 재현하는 동시에 그들의 삶을 통째로 앗아간 현재의 위압감을 더욱 응시하려 한다. 카메라에 담긴 호수의 물살은 매우 깊고 빠르다. 배가 만들어 내는 굉음과 침묵의 상태를 오가며 출렁이는 물살을 따라가던 카메라는 어느 순간 물을 향해 깊숙이 고개를 숙이듯 접근한다. 이때 배의 시점 쇼트로 보이는 짙푸른 물결은 아찔한 현기증을 일으키며 카메라와 함께 관객을 물속에 삼켜버리는 듯한 착각마저 들게 한다. 수몰지 인근에는 박제화된 과거의 생활양식이 전시되어 있고 폐허가 된 돌더미들은 과거의 흔적을 증언한다. 버려진 돌더미에 뚫린 구멍에는 부서진 삶의 흔적이 담겨 있다. 그 폐허의 흔적을 더듬는 카메라의 움직임에는 어딘가 깊은 상실감과 슬픔이 깃들어 있다. 영화는 그렇게 깊은 상실감의 어조로 묻는다. 그러한 개발을 통해 우리가 얻은 것이 무엇이며 잃은 것이 무엇이냐고.

한 가지 더 이 영화에서 언급할 것이 있다. 상이한 시간대의 사운드가 서로 충돌하고 잠식하는 양상에 대해서다. 댐 건설로 인한 수몰의 역사, 사라져 가는 기억을 길어 올리려는 영화의 작업에 좀 더 접근하기 위해서는 이 영화가 소환하는 또 하나의 사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980년 신군부가 집권하면서 추진된 언론통폐합 사건이다. 영화는 1980년 11월 30일 폐국된 동양 라디오의 인기 프로 ‘밤을 잊은 그대에게’의 마지막 방송을 반복적으로 들려준다. 유람선에 올라탄 카메라가 관광코스가 된 수몰지역을 탐사할 때 사운드트랙은 권력에 의해 강제 폐국 당한 동양 라디오 방송의 황인용 아나운서가 “더이상 종말은 없어야 한다”며 “잊지 말아달라”고 처절하게 호소하는 목소리를 반복해서 들려준다. 그러나 종말의 순간을 단 일분이라도 늦추려는 아나운서의 처절한 목소리는 현재의 유람선에서 흘러나오는 시끌벅적한 소음과 안내방송에 묻혀 버리기 일쑤다. 댐 건설로 인한 수몰의 역사와 강제 폐국되는 방송국 아나운서의 호소를 연결함으로써 감독은 개발이라는 명분으로 진행된 댐 건설이 신군부의 폭압적인 언론정책과 다를 바 무엇인지 묻는다. 주변 소음에 묻혀 노이즈가 되어 흩어지는 라디오 소리처럼 과거의 삶은 그렇게 물속에 속절없이 가라앉았다. 그 모든 기억을 품고 흐르는 검은 물길만이 먹먹하게 우리의 가슴을 칠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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