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
[초이스]애프터눈 클래스
오서로, 2015
한국에서 보기 힘든 단편애니메이션이 나왔다. 작품에 대한 반응은 뜨겁다. 4대 애니메이션 영화제인 자그레브와 안시 학생경쟁에 나란히 작품을 올렸다. 5월에 열린 SICAF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하고, 자그레브에서 스페셜 멘션을 수상하였다. 국내외 영화제에서 러브콜이 들어오고 있는 이 작품은 바로 오서로 감독의 <애프터눈 클래스>이다.
오후의 수업시간을 생각해보자. 밥 먹으랴, 수다 떨랴, 친구들이랑 뛰어다녔던 점심시간이 지나고 찾아오는 오후 수업. 나른한 햇살. 조용한 교실. 그리고 어김없이 찾아오는 졸음. 누구나 한 번쯤 겪어보았을, 그래서 모두가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 바로 <애프터눈 클래스>이다.
주인공의 머리는 자꾸만 무거운 것으로 바뀐다. 무거워진 머리는 책상을 향해 곤두박질친다. 어떻게든 졸지 않으려고 주인공은 사방으로 머리를 돌리고, 흐르는 침을 닦고, 눈을 크게 떠본다. 심지어 특단의 조치로 볼펜으로 다리를 찔러보기도 한다. 다 소용없다. 이미 다른 친구들은 꿈나라로 들어갔다. 정신이 희미해지면 글씨들이 이상한 모양으로 보이기 시작하고, 무언가 꿈인지 현실인지 알 수 없는 비전이 보이기 시작한다. 꿈속에 보이는 이들은 또 다른 나이다. 나는 그들에게 잠들면 안 된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그들을 말려보지만, 세상에서 가장 편하게 잠든 어릴 적의 나와, 내게 괜찮다며 손을 내미는 미래의 나를 만나는 순간 주인공도 그들과 함께 편안하게 잠이 든다.
작품의 애니메이팅과 타이밍은 수준급이다. 학생 졸업 작품이라고 보기 힘든 감각이다. 끊임없이 변하는 주인공의 머리는 리듬감이 있어 보는 내내 생동감이 느껴진다. 단순한 이야기임에도 작품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건 훌륭한 타이밍에서 온다. 작품은 지루함을 느낄 새를 주지 않는다. 적당한 속도감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아, 탄식과 그 사이의 놀라움이 널뛰기하듯 이어진다. 절정의 순간 주인공이 비몽사몽 꿈속의 세계를 헤맬 때, 우리들은 사실 주인공과 같이 잠의 세계로 들어갔을 때, ‘괜찮아’라는 위안에 함께 끄덕였을지도 모른다. 3분 50초라는 짧은 시간 동안 감독은 관객을 몰입시켰다가, 턱하고 풀어놓으며 조용히 작품을 끝낸다.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고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다.
또한 작품의 아트웍과 이미지는 매우 과감하다. 따뜻함이 느껴지는 붉은 계통의 색감과 인물들은 오후의 나른함을 더해준다. 함께 쓰기 힘들 것 같은 붉은 계통의 색과 파란색의 이미지들이 조화로워 감독이 색을 선택하고 칠해나갈 때의 자신감이 느껴진다.
한국의 독립애니메이션 작품을 보다 보면, 종종 메시지와 스토리텔링이라는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경우를 볼 때가 있다. 그러나 <애프터눈 클래스>는 대단한 메시지도 잘 짜인 스토리텔링도 없다. 그냥 졸린 상황 하나를 가지고 위트 있게 표현한 작품이다. 어떻게 보면, 이런 짧은 콩트 같은 작품은 한국에서 가장 나오기 힘든 형식이다. 그래서 더욱 이 작품은 소중하다.
솔직히 이 작품에 대해 구구절절이 이야기하는 건 사족이다. 제목을 기억하고 있다가 기회 될 때 그냥 작품을 한 번 보시라. 작품을 보면, 안시 영화제에서 밤 11시 상영 중 상영관을 가득 채운 웃음소리와 환호, 끝남과 동시에 터져 나오며 끝없이 이어지던 박수 소리를 이해할 수 있게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