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
[초이스]그녀의 전설
김태용. 2015
김태용 감독은 죽음을 바라보는 연출자다. 그의 영화는 종종 죽음의 곁을 머문다. <가족의 탄생>과 <만추>가 그랬고 첫 연출작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는 물론이거니와 그의 단편 <그녀의 연기> <피크닉> 또한 그랬다. 그의 영화는 조금씩 더 ‘죽음’의 면면을 살핀다. 장례식을 위한 여정 <만추>에 이어 그가 만든 단편영화 <그녀의 연기>에는 주인공이 죽음의 문턱에 선 자들,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말 없는 노인들, 말 없는 관객들을 위해 애도가를 부르는 장면이 나온다. 한 공간에 있으나 서로가 더 이상 같은 세계에 있다고 볼 수 없는 자들끼리 넘어설 수 없는 벽 앞에서 대화를 시도한다. 김태용 감독의 근작 <피크닉> 또한, 달리 해석할 수 있는 장면이기는 하지만, 죽은 자들의 공간을 떠돌며 방황하는 어린 오누이들이 보인다. 자폐아 동생을 산사에 버리고 온 누이는 다시 동생을 찾아 숲 속으로 들어가지만 그 숲 속은 정령과 죽음의 공간이다. <피크닉>은 침묵하던 죽음의 세계와 조우하고 여행하는 소녀의 이야기다. 3D로 만들어진 영화 <피크닉>은 생사의 경계 너머, 죽음의 살갗 너머를 입체영상으로 보게 한다.
김태용 감독의 최신작, 단편 <그녀의 전설> 또한 죽음과의 대면이 있다. 바다에서 실종된 늙은 해녀는 곰의 형상으로 딸에게 나타난다. 엄마는 곰이 되었다기보다는 거대하고 굼뜬 곰의 육체에 갇힌 것 같다. 딸은 곰이 된 엄마를 낯설어하고 엄마는 곰의 육체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둘은 엄마와 딸의 대화를 이어가지만 그들 사이에는 어떤 경계가 있다. 엄마는 딸에게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가고, 어멍의 그리운 사투리는 두터운 털가죽 너머 아득하게 들린다. 엄마는 생사의 경계면을 곰이라는 외투로 두르고 있는 것 같다. 딸과 엄마는 아무렇지 않은 듯 일상을 이어나가고 이는 이별의 의식이 된다.
영화 <그녀의 전설>은 닿지 않는 그리운 것들을 꿈에서 만나는 기분이 들게 한다. 딸은 엄마를 알았음에도 해녀로 살며 수면 아래의 다른 세상을 가졌던 여자를 알지 못했던 것처럼 죽음 저 너머에 있는 엄마를 만났지만 그 너머의 세계를 알지 못한다. 그리운 사람과 나란히 걷고 이야기를 듣고 그의 삶을 함께 보지만 만질 수 없는 서로 다른 세상에 있음을 감각한다. 그런 이유로 공존이 아닌 짧은 동행은 내내 서글프다. 꿈에서 깨듯 동행은 잠시 머무는 것이고 곰이 된 엄마가 숲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아야만 한다.
망자를 보내는 장례의 절차는 상을 치르는 이들에게 희로애락과 육체적인 한계를 지게 한다. 짧고도 긴 의식을 치르다 보면 그것이 죽은 자가 아닌 산 자를 위한 것임을 알게 된다. 마찬가지로, 만질 수 없고 이내 사그라지는 환영과의 서글픈 만남 또한 산 자의 기억을 위한 장례의 절차와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죽음을 쫓는 모든 이야기들이 산 자들을 위한 이야기가 되는 것처럼 곰이 된 엄마의 전설 또한 산 자들을 위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