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
[초이스]클린 미
강상우, 2014
지난 10년 동안 인디포럼 영화제에서 많은 독립영화를 보아오면서 유클리드 공리처럼 머릿속에 스스로 각인한 명제는 “잘 모르는 이야기는 함부로 하지 말라”는 것이다. 연출자 중 한 명으로서 얻은 가장 큰 교훈이기도 하다.
상업적 성공이든, 영화제 입선이든 어떤 욕망에 사로잡혀 자신이 잘 모르는 이야기를 섣부르게 영화로 만드는 순간 자칫 ‘대상화’의 심연 속으로 곤두박질치기 마련이다. 자기 자신이 아닌 이상, 모든 사물과 타자는 대상화될 수밖에 없지만, 그 거리와 간극에 대한 연출자의 태도가 영화적 윤리의 방향을 결정짓는다. 그리고 잘 모르는 이야기에 대해 쉽게 접근하려는 태도야말로 타자의 존재 양식을 제멋대로 재단하는 가장 나쁜 윤리의 전형이지 싶다.
가난을 대상화하고, 사회적 폭력을 또다시 폭력적으로 전시하고, ‘그것이 알고 싶다’류의 사건 사고들을 말초적으로 그려내는 수많은 상업-독립영화들이 쏟아지는 지금의 이 풍경은 어쩌면 타자에 대한 윤리를 상실한 우리 시대의 얼굴일지도 모르겠다. 대상화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면, 적어도 우리는 타자의 이야기에 대해 책임을 지려는 어떤 ‘안간힘’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차라리 자신이 잘 아는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는 게 낫지 않을까.
강상우 감독의 <클린 미>는 이런 우려와 고민을 단번에 일소시킨 영화다. 사적인 경험을 토대로 자신의 감각을 피륙처럼 펼쳐놓는 비범한 작품. 이 청량감 가득한 영화를 보고, 게을러진 내 자신을 스스로 질타하기도 했다.
이 영화가 제작되기 전 우연한 기회를 통해 이름이 블라인드 된 채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이런 이야기를 쓸 만한 사람은 강상우밖에 없겠지 싶었다. 바로 ‘갱생원’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국내 독립영화 감독 중 감옥에 간 사람도 적을 뿐만 아니라, 이렇게 사적 체험을 피하지 않고 서늘하게 응시하는 패기도 드문 탓이다. 처음 <백서>를 통해 만났던 강상우 감독이 양심적 병역거부 투옥 이후, 갱생원 이야기로 다시 돌아온 것이다.
<클린 미>는 제목 그대로 청소에 대한 이야기다. 주인공 병철은 출소 후에 법무보호복지공단에 입소한다. 이곳은 교정시설에서 출소한 사람들의 자활과 독립을 돕는 갱생원이다. 병철은 이곳에서 묵으면서 청소 일을 한다. 새벽에 쓰레기 수거차를 타고 다니며 청소를 하고, 낮엔 갱생원 청소를 하거나 낮잠을 잔다.
어느 상업영화의 감독의 고백처럼 내러티브 위주로 이 영화를 보면 “무슨 이야기인 줄 모르겠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 영화는 명확한 내러티브가 없다. 그저 주인공 병철이 청소를 하고, 낮잠을 자고, 산책하는 일상 장면들이 병렬되어 있을 뿐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클린 미>는 바로 이 내러티브 중독을 해독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내러티브 없이 이미지들만으로도 서사가 가능하고, 전혀 다른 감흥과 영화적 순간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갱생원 곳곳을 유려하게 누비는 카메라는 공간의 ‘공기’를 채집하고, 감독은 갱생원 안과 밖의 이미지와 사운드를 겹겹히 쌓아올림으로써 자신이 그곳에서 느꼈던 그 감정들을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타전한다. 주인공 강태영의 단단한 눈빛도 그 순간의 온기를 치열하게 전달한다.
어쩌면 단편영화는 ‘순간의 채집’일지도 모른다. <클린 미>는 청소를 하는 갱생원 입소자들이 자기 자신마저 말끔히 청소하고픈 양가적 감정, 일반인들이 한 번도 체험하지 못했을 그 슬픔과 희망이 교차되는 그 순간의 감정을 뭉클하게 체험하게 만드는 영화다. 채집된 이미지들의 힘이다.
얄팍한 대상화와 자극적인 영화들이 난무하는 시대에, 자신이 알고 있는 어느 순간을 솔직하게 채록해 관객들에게 전달하려는 안간힘이 이 영화에 온전히 담겨 있다. 이미지 포착하는 솜씨가 비상하다, 질투가 날 만한 재능. <백서>로 그 재능을 알렸다가 양심적 병역거부로 감옥에 갔던 강상우가 다시 <클린 미>로 돌아왔다. 앞으로 한국 관객들은 ‘강상우’라는 이름을 주목해야 할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