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
[초이스]환
김준기, 2015
신사의 봄은 역설적이게도 벚꽃이 만발한 완연한 봄기운으로 아름답기까지 하다. 거기에 고령의 어머님을 휠체어에 모시고 한 여인이 천천히 들어선다. 바람에 떨어지는 벚꽃 잎이 술잔 위에 떨어진다. 장면은 어느새 그 잔을 들고 둘러앉아 노래를 부르며 목숨을 거는 조종사들의 복종의식으로 바뀐다. 그들이 부르는 노래는 군가 ‘동기의 사쿠라’로 천황을 위해 목숨을 바쳐 나라를 구하는 특공대의 생을 벚꽃으로 비유한 노래다.
1. 너와 나는 동기의 사쿠라. 같이 훈련소(군사 학교)의 정원에 핀 꽃.
그렇다면 지는 것은 각오하자. 멋지게 지자 나라를 위해.
2. 너와 나는 동기의 사쿠라. 같이 훈련소의 정원에 핀 꽃.
혈육 나눈 사이는 아니지만 왠지 마음이 맞았지.
3. 너와 나는 동기의 사쿠라. 같이 항공대의 정원에 핀 꽃.
바라봅니다 노을 진 남쪽 하늘을. 아직도 돌아오지 않는 1 번 비행기를 기다리며...
4. 너와 나는 동기의 사쿠라. 같이 항공대의 정원에 핀 꽃.
그만큼 맹세한 그 날을 기다리지 못하고 어째서 죽어 떨어져야 하는지
5. 너와 나는 동기의 사쿠라. 그처럼 흩날릴지라도.
꽃의 도시, 야스쿠니 신사의 봄날. 그 가지에 피어 다시 만나자.
야스쿠니 신사는 1869년(메이지 2년), 군 희생자의 넋을 달래기 위해 설립한 초혼사가 그 전신으로 일본 천황을 위해 싸우다 목숨을 잃은 사람들을 신으로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 일본 제국주의 침략의 상징적 공간이다. 한일 간 역사인식은 참으로도 그 출발부터가 다르다. 일제강점기의 강압적인 통치와 수탈에 이어서 2차 대전(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에 의해 운영된 위안부가 그렇고 강제징용이 그랬다.
김준기 감독은 위안부 문제를 다룬 애니메이션 <소녀이야기>를 제작 국내외적으로 피해여성의 육성 녹취록을 바탕으로 실상을 널리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두 번째 역사고발 애니메이션 <환> 은 실화에 픽션을 더해 보다 예술적으로 표현하고자 노력한 작품이다.
천황을 위한 죽음을 통해 신사에 ‘가미’ 즉, 신(神)으로 모셔진다는 사상은 일본 전통신앙에 국수주의와 군국주의 지배 사상이 결합하여 왜곡된다. 보잘것없는 민초가 위대한 전쟁의 영웅들과 함께 나란히 묻혀 숭배받는다는 것은 현생을 뛰어넘는 영생불사 신의 환생인 것이다. 가미카제 [kamikaze, 神風(신풍)]는 신이 되는 의식으로 기능하게 되고 여기서 개인의 인간성과 주체성은 말살되어 비참하게 산화하게 된다.

실제로 가미카제용 비행기는 착륙장치와 탈출장치가 없이 폭탄만 가득 싣고 목표지점에 겨우 갈만큼의 기름만 주고 나는 방법만 익힌 어린 조종사들이 강제로 태워졌다는 증언 속에 징용조선인이 육탄방어와 공격에 대부분 희생되었을 것으로 본다. 주인공 또한 당시 가족을 지키고자 강제로 조종석에 앉혀져 다음 생에서나마 조국의 가족과 함께하고자 하였을 것이리라...
야스쿠니신사와 일본항모 갑판 위에서 치러지는 출격 전 복종의식은 그들에게 개인에서 신이 되기 위한 경계를 넘는 숭고한 의식이지만 조선인으로 참전한 주인공에겐 망국의 식민지 노예나 다름없는 처지에 참담함은 이루 말로 표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의 제국주의 전쟁에 어쩔 수 없이 끌려가 희생당한 참전 조선인들의 넋이 야스쿠니 신사에 봉인된 체 70여 년이 넘게 매일 출격하는 악몽에서 그들을 자유롭게 해야 한다고 이 작품은 오늘날 우리들에게 애타게 호소하고 있다.
그네들이 애국심과 전우애로 목숨을 바쳐 사쿠라 가지에 다시 피어나길 염원하였듯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되어 오늘날도 끝나지 않고 계속 반복되는 순환의 전쟁터에서 산화한 징용 조선인의 넋이라도 구해오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익히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을 사실적인 이미지로 우리 앞에 강렬히 재현하되 감성적인 터치를 하고자 애쓴 스토리 설정은 마지막에 도달해 주인공의 넋마저 욱일기의 방어벽에 막혀 어머니와 부인과 만나지 못하며 더욱 간절하게 한다. 주인공에 좀 더 감정이입이 되기 위한 설명과 이야기가 부족한 점을 빼고는 민감한 역사적 소재를 예술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으며 단편이지만 스케일적인 면에서나 영상적 완성도 면에서 매우 훌륭한 작품이라고 본다. 이미 이탈리아에서 개최된 제17회 퓨처필름영화제에서 관객상을 받는 등 해외에서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단편이라 영화제나 특별 상영회에서나 만나볼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