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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이스]얼굴들

지혜, 2006

[초이스]얼굴들 대표 이미지

<얼굴들>은 시그네틱스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을 다룬 다큐멘터리이다. 2001년 시그네틱스는 파주로 공장을 이전하면서 노동자들에게 이후 투자계획이 없는 안산공장으로 출근하라는 통보를 한다. ‘기계는 가져가도 사람은 가져가지 않’는 회사를 향해, 노동자들은 파주공장으로의 고용을 요구하며 투쟁을 시작했고, <얼굴들>은 투쟁이 장기화되던 시점의 여성노동자들의 얼굴을 바라본다. 

한 여성노동자가 인터뷰 도중 들려오는 목소리에 난감한 표정이 된다. 방 안에 있던 남편이 물을 한 잔 가져다 달라는 말이었다. 그녀는 인터뷰를 멈추고 물을 따라 쟁반에 받쳐 방으로 가지고 들어간다. 이 장면은 여성노동자들이 싸워야 했던 대상이 사측만이 아니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시그네틱스의 노동자 대부분은 기혼여성이었다. 여성노동자는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사측을 향해 소리 지르다가도, 아이에게 온 전화에 미안한 목소리로 밥은 먹었는지를 물어야 했다. 투쟁이 길어지면서 일상의 무게는 더 커졌다. 괜한 책 잡히면 안 되니까, 우리가 투쟁하려면 집에서는 그전보다 더 잘해야 한다고, 반찬도 더 맛있게 해야 하고 집에서 더 모범이 되어야 한다고 교육도 했다. 남편들은 그녀들의 투쟁을 ‘허락’해주는 사람들이었고, 아이들은 그녀들의 마음을 아리게 하는 존재였다. 그녀들은 자신들의 몸을 담보로 하는 단식투쟁을 하면서도 집에 쌓여있을 빨래와 다 떨어졌을지 모를 반찬을 걱정하고, 곁에 있어주지 못하는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에 눈물을 보였다. 

“승리하여 존경받는 어머니로 살아갑시다”

투쟁 현장 한편에 붙어있는 대자보를 비추며?감독은 말한다. “투쟁에 승리해서 존경받는 어머니가 되면 그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녀들도 알고 있다. 일자리를 되찾기 위한 투쟁을 하면서, 돌아갈 곳이 아이들과 남편의 곁인 것처럼 감정적인 호소를 하는 것이 결국 스스로를 얽매이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스스로가 만들어낸 굴레에서 더욱더 열심히 쳇바퀴를 돌려야 한다는 것을. 감독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한 여성노동자는 답한다. ‘노동만 내세워서는 우리 싸움을 봐주지 않으니까…현실이 그러니까. 그것도 우리 투쟁이니까.’

<얼굴들>은 2006년 제작된 작품이다. 영화가 완성되고 1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지만 여성노동자들의 삶은 영화 속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어쩌면 더 나빠졌을지도 모른다. 여성들이 임금노동자이자 가사노동자로 일하면서도 ‘안쓰러움’ 이상의 연대를 하지 못하는 현실. 이 작품은 10년간의 정체를 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이 영화의 또 다른 미덕은 막막하고 답답한 현실 속에서도 빛나는 ‘얼굴들’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점거, 단식, 고공농성... 할 수 있는 걸 다 했다고 한 시점에도 그녀들은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돈 몇만 원이 부족해서 아이 급식비 지원을 신청하러 가야 하는 것도 싫고, 집이 가압류 되어 한 번씩 송장이 날아오면 마음이 무거워지지만 그녀들은 서로의 손을 놓지 않는다. 그것이 우리의 자존심이라고 말한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도배사를 하기도 하고, 다른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기도 한다. 그녀들이 서로를 바라보는 얼굴은 아프다. 아프지만 아름답다. 감독은 내레이션을 통해 그녀들의 얼굴에서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고 했다. 아마 관객들도 이 작품을 통해 ‘나’의 얼굴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
시그네틱스 노동자들은 2007년 법원 판결 후에 복직되었지만 2011년 다시 정리해고가 되었다, 그녀들은 14년째 복직 투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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