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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이스]여자여

김준겸, 2015

[초이스]여자여 대표 이미지

김준겸 감독의 단편영화 <여자여>는 그 제목만큼이나 이상한 이야기를 가진 영화다. 

인적 드문 해변, 한 남자가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다. 무료한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낚싯대의 반응은 없다. 핸드폰이 울린다. 전화를 건 사람은 남자의 아버지다. 이왕이면 큰물에서 노는 큰 사람이 되라는 충고를 하는 아버지에게, 남자는 큰사발 먹고 큰 사람 되겠다는 다짐을 한다. 전화를 끊고 다시 낚시에 집중하려는데, 이번에는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온다. 그녀는 아들에게 성경 속의 어부 베드로를 이야기한다. 이왕이면 사람을 낚으라는 것이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황당한 전화를 차례로 받으면서 남자가 보이는 반응이 좀 특이하다. 그는 세상에 무심하게 반응하는 사람이다. 황당한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남자의 얼굴은 평온함을 잃지 않는다. 의미가 미끄러지는 전화 통화가 모두 끝나고 나면 이제 해변엔 완벽히 남자 혼자다. 새들만 바다 위를 날아다닌다. 그때, 갑자기 찌가 흔들린다. 남자는 낚싯대와 격렬한 사투를 벌인 끝에 무언가를 낚는다. 

그가 낚은 것은 사람이고 여자다. 여자의 이름은 놀래미, 남자는 그녀를 데리고 횟집으로 간다. 횟집에서의 데이트, 여자의 다리 밑으로 자꾸만 물이 흘러내리고, 식당 아줌마는 물기를 닦으라고 성화다. 여자는 갯지렁이를 먹고, 수조의 물을 받아 마신다. 이 모든 괴상한 사건이 벌어지는 동안, 남자는 그 일들이 일상적인 것처럼 반응한다. 조금 더 관계가 깊어졌다 싶었을 때, 여자가 몸이 다 말라 버릴 것 같다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고, 남자는 당연하다는 듯 그녀를 따라나선다.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해변에서 남자는 다시 혼자 남는다. 남자는 여자가 사라진 바다 쪽으로 격렬하게 뛰어간다. 멀리 바다에서 여자가 돌고래처럼 뛰어오르는 광경을 보는 동안, 나훈아의 <해변의 여인>이 간드러지게 흘러나온다. 바다를 바라보는 남자의 뒷모습은 마치 나라를 잃은 사람 같이 장엄하지만 얼굴 표정만은 평온하다. 영화는 그렇게 갑작스럽게 끝난다. 

아마도 이 이야기에서 의미를 찾는 것은 가망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이 영화는 그런 방식으로 만들어진 영화가 아니다. 다만 이렇게 이야기할 수는 있다. 의미 없는 세상의 한복판을 통과하는 우리들에게 이 영화의 남자는 ''''''''당황하지 말 것''''''''을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일상적으로 반응할 것. 그것만이 지금 여기를 통과할 유일한 방법이다. 

가끔 우리를 다른 세계로 데려가는 영화들이 있다. 막 나가자는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그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낯선 세계가 낯익은 무엇인가로 변모하는 느낌을 주는 영화들. 의미에 저항하면서, 의미 사이의 결을 파악하는 영화들. 말로 파악되지 않는 세계에 관심이 있는 영화들. 명확함보다는 모호함의 상태로 빠져드는 영화들. 

그런 영화가 독립영화 계의 주류를 이루던 시절도 있었다.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만들었던 신재인의 영화들. 혹은 이종필의 <달세계 여행>를 꼽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아마 누군가는 이런 영화의 계보에 놓기에 김준겸의 <여자여>는 너무 소품인 데다가 시각적인 야심이 작다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영화는 소리 없이 강하다. 문득 다가와 낯선 세계를 펼쳐 보인 다음, 홀연히 사라진다. 거기에 조우하느냐 마느냐, 하는 것은 취향의 문제이지만 단 한 번이라도 조우했다면 몇 번이고 돌아보게 된다. 돌아볼 때마다 새로운 것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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