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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이스]야근 대신 뜨개질

박소현, 2015

[초이스]야근 대신 뜨개질 대표 이미지

<야근 대신 뜨개질>은 사소한 대화와 소소한 일상에서 시작한다. 공정여행사 트래블러스 맵에서 일하는 나나와 주이, 빽 등 몇몇 여직원들은 야근을 하면서 나눈 하소연에서 좀 재미난 일이 없을까 고민을 나누다 ‘야근 대신 뜨개질’ 모임을 만들고, 함께 모여 수다를 떨며 뜨개질을 한다. 다양한 색색의 털실들처럼 모인 멤버들도 각자의 개성과 색깔을 지니고 있어 누구는 뜨개질을 가르쳐주고,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는 등 모임은 서로가 갖고 있는 기술과 재능, 고민을 나누는 자리가 된다. 

그렇게 시작된 ‘야근 대신 뜨개질(야뜨질)’은 얼핏 회사 생활에 지친 여자들의 가벼운 수다 모임 정도로 보이지만, 개인들의 친목 모임으로 그치지 않는다. 사실 영화가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아 (헌 티셔츠를 잘라 만든 실로 뜨개질을 해서 삭막한 도시를 알록달록 물들이자는) 도시 테러를 감행하기 위해 흥분에 들떠 영등포역을 향하는 그녀들을 보며, 뜨개질로 세상에 도전장을 내민 그녀들의 시도가 과연 세상에 어떤 균열을 낼 수 있을까, 그저 무모한 것은 아닐까 내심 걱정했다. 이른 새벽 시간 아무도 모르게 감행한 영등포역의 도시 테러가 날이 밝자 무참히 철거되고, 도시의 출근길이 다시 삭막하고 무표정해질 때, 그녀들의 알록달록 뜨개질이 무안할 정도로 사람들의 시선을 붙들지 못할 때, 그녀들의 이야기는 어디로 향할 것인가, 그런 그녀들과 함께하는 이 영화는 또 어디로 갈 것인가 불안하기도 했다. 

야뜨질 멤버들의 이 시도가 그저 무모한, 혹은 자족적인 시도에 그치지 않는 것은 그녀들이 자신이 서 있는 자리와 삶이 세상과 한 코 한 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무표정한 출근길을 알록달록하게 물들이는 도시테러의 감행(!)을 시작으로, 그녀들은 밀양송전탑 투쟁을 응원하는 765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직접 밀양에 찾아가 농사를 돕기도 한다. 각자의 자리에서 어떻게 세월호 투쟁에 연대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광화문 세월호 유가족 농성장을 찾아 함께 노란 리본을 만드는 일에 동참한다. 그리고 나나는 자신들의 일터인 ‘트래블러스 맵’의 노동 환경과 자신들의 노동자성을 생각하며 사회적 기업 최초의 노동조합을 만드는 일에 착수한다. 

노동조합을 만들려는 나나와 동료들의 움직임과 일상에서의 사회적 연대를 고민하는 야뜨질 모임, 그리고 그녀들을 따라가는 <야근 대신 뜨개질>은 언뜻 동떨어진 이야기처럼 보이는 이 두 가지를 날실과 씨실이 교차되며 두 개의 선이 면을 이루어가듯 하나의 이야기로 모아낸다. 이 날실과 씨실을 관통하는 고민과 물음은 윤리적 생산에 가려진 비윤리적인 조직 시스템을 들춰내기도 하고, 조직의 발전에 눌려있던 개인의 희생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렇다고 이 질문들이 비단 ‘사회적 기업’이나 대안적 삶을 꿈꾸는 활동가들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야근 대신 뜨개질>은 아주 소소해 보이지만, 우리의 일상과 사회의 변화가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지, 그래서 일상의 작은 ‘디테일’이 실은 얼마나 중요한지를 돌아보게 한다. 야뜨질의 멤버들은 거창한 구호를 외치지 않으면서도, 어려운 논리를 펼쳐놓지 않으면서도 개인과 사회, 나와 너, 그리고 우리라는 경계를 확장하고 넘나든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있으면, 내가 속한 곳과 나의 일상, 가족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그 경계를 넘어서기는 힘든 우리, 반대로 대의명분과 진보적인 운동에는 앞장서면서도 정작 나 자신에 대해서는 성찰하지 않는 우리를 반성하게 된다.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세상일이 다 그렇지 뭐’라고 자포자기하려는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나나는 회사를 그만두고, 주이와 빽은 여행을 떠나면서 이들은 삶의 한 매듭을 짓지만, 질문은 영화를 보는 우리에게 여전히 남는다.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그리고 더 행복한 삶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어떻게 사람들과 관계 맺어야 할까, 그리고 그 삶을 지탱할 수 있는 기운은 또 어떻게 주고받아야 할까. 영화를 보고 나면 여성의 화법으로 어딘가에서 치열하게 이 고민하고 있을, 어쩌면 이 고민의 긴 터널을 지나왔을 또 다른 야뜨질 멤버들을 만나고 싶어진다. 그 난관을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돌파하고 있을 그녀들의 이야기가 더 많이 세상에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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