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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이스]눈의 마음 : 슬픔이 우리를 데려가는 곳

김정, 2014

[초이스]눈의 마음 : 슬픔이 우리를 데려가는 곳 대표 이미지

일 년여 전에 본 <눈의 마음: 슬픔이 우리를 데려가는 곳>을 다시 떠올리게 된 것은 영화 속에 등장하는 잊을 수 없는 몇몇 이미지들 때문이었다. 그중 하나는 천산의 이미지다. 영화는 보고 있으면서도 믿기 힘든, 온통 눈으로 새하얀 카자흐스탄 알마티의 길 위에서 시작한다. 한참 넋을 놓고 있노라면 지평선 너머로 벽처럼 솟아오른 천산의 모습이 보인다. 극장에 앉아있다는 사실을 잊게 할 만큼 초현실적이고 아름다운 설경. 그러나 알마티를 지나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 한국의 안산을 오가던 영화가 1937년 강제이주의 모습이 담긴 푸티지를 보여준 후 다시 알마티로 돌아오면, 전혀 다른 모습의 천산이 보인다. 1937년 강제로 이곳으로 끌려온 사람들은 천산을 마주하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어느 방향에서든 철벽처럼 서 있는 천산을 보며 자신의 가혹한 운명과 닮았다고 느끼지는 않았을까. 

영화에는 세 가지 죽음이 암시된다. 고려인들의 죽음, 김정 감독의 아버지를 비롯한 감독의 가까운 지인들의 죽음, 세월호가 앗아간 죽음이 그것이다. 1937년 당시 17만 5천여 명의 고려인 강제이주자 중 이주 도중에 사망한 인원만 1만 1천여 명으로 알려져 있다. 고려인 1세들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며, 영화에 나오는 최 예브게니아 할머니처럼, 고려인 2세들 역시 죽음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는 나이이다. 돌아가신 김정 감독의 아버지, 고 김열규 교수는 감독에게 볼셰비키로 활동한 한인 최초 여성공산주의자 김 알렉산드라 페트로보나의 이야기를 들려주어 그녀를 이 먼 곳, 중앙아시아로 이끌었다. 안산에 사는 김 알렉스 씨를 비롯한 고려인들은 세월호의 소식을 듣고, 늦은 밤 단원고등학교 운동장에서 학생들과 함께 촛불을 들고 있었다. 이 무수한 죽음들을 감당하기 위함일까. 중앙아시아의 희고 황량한 풍경들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눈의 마음: 슬픔이 우리를 데려가는 곳>은 애도를 위한 한 편의 여정, 의식과 같은 느낌을 준다.

잊히지 않는 또 다른 이미지는 송 라브렌티 감독의 식탁 풍경이다. 송 라브렌티 감독은 고려인 2세로, 모스크바 국립영화학교를 졸업하고 카자흐스탄에서 영화감독으로 활동했다. 그는 김정 감독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여 중앙아시아에서 보낸 유년시절의 기억들을 들려주고 자신이 만든 영화의 테이프를 꺼내 보여준다. 따뜻한 차와 꿀이 있고 포근한 주황빛이 감도는 식탁에서, 잊혀져왔던 기억/역사를 보고 듣는 이 장면은 그 이야기를 듣기 위해 먼 길을 날아 중앙아시아로 온 여행객들의 추운 몸과 설레는 마음을 달래주기에 충분해 보였다. 

그의 집을 떠나기 전 카메라는 잘 가꾸어진 화초들이 놓인 창가를 비춘다. 꽃이 핀 싱싱한 화초들은 가꾼 이의 정성을 느끼게 하고, 추운 바깥 날씨를 생각하면 성스럽게까지 느껴진다. 이 정성과 성스러움은 영화 내내 반복하여 등장하며 제의와 애도로 이어진다. 한식(寒食)날 유가이 콘스탄틴 가족이 지내는 제사, 진열대 안의 과일들이 얼어붙지 않게 하기 위해 놓여있는 비쉬켁 시장의 촛불들, 최 예브게니아 할머니가 고이 간직하고 있는 당신의 수의, 단원고 운동장에 모여 촛불을 들고 기도하는 사람들, 새해 첫날 키르기스스탄 알라 아르차 계곡에서 돌아가신 아버지께 올리는 김정 감독의 제사까지. 이렇듯, 오래되고 가까운 죽음들 그리고 미래의 죽음들까지 애도하는 <눈의 마음: 슬픔이 우리를 데려가는 곳>의 긴 여정은 카자흐스탄 출신 고려인 가수 빅토르 최의 노래와 달리는 차 안에서 바라다보이는 천산의 풍경으로 마무리 된다. 하나의 예술작품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비극들을 담고 있는 <눈의 마음: 슬픔이 우리를 데려가는 곳>이 한 편의 영화로 가능했던 것은, 한 많은 세월을 담담한 어조와 목소리로 표현한 빅토르 최의 노래 ‘슬픔’처럼 이 죽음의 기억/역사들을 눈물이나 절규 대신 고요하고 온화한 애도들로 채워내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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