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
[초이스]사당동 더하기 22
조은,박경태, 2009
다큐멘터리 <사당동 더하기 22>는 한 철거민 가족의 22년을 기록한 영화이다.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도시 미관이라는 명목하에 달동네였던 사당동은 공권력에 의해 철거된다. 수많은 철거민들이 생겼고 당시 이들의 삶을 학술적 목적으로 기록했던 감독은 12년이 지난 1998년, 사당동에서 쫓겨난 후 유일하게 상계동 임대아파트에 들어갈 수 있었던 정금선 할머니 가족과 재회한다. 이후 10년의 시간 동안 이 가족의 이야기를 카메라에 기록하게 된다. 달동네를 나와 아파트에 입주하면서도 할머니 가족의 가난한 삶은 달라지지 않았다. 이주여성과의 새로운 삶을 기대했던 큰아들의 꿈은 좌절되고, 경제적 자립이 불가능해 보이는 큰 손주는 필리핀 이주여성과의 가정을 꿈꾼다. 안정되지 못한 결혼생활과 육아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둘째 손주, 불확실한 미래와 대책 없는 현실에 헛웃음을 치는 막내 손주, 그리고 이들 모두를 돌봐야 하는 할머니의 삶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다. 어찌 보면 3대에 걸쳐 공공근로, 일용직, 비정규직 노동자로 살아가고 있는 가족들의 삶은 끝이 보이지 않는 가난한 우리의 현재를 이야기하고 있는 듯하다. 가난했지만 그래도 따뜻했던 달동네 공동체의 붕괴는 그나마 살아갈 수 있는 힘마저 송두리째 빼앗긴 기분이다. 하루하루의 삶이 숨 막히게 느껴지는 이유이다.
이렇게 강력한 영화를 근래에 만나봤나 할 정도였다. 과하지 않은 언어로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이 영화가 왜 이렇게 강력하게 느껴지는 것일까를 많이 생각해보게 된다. 대부분의 기록영화 감독들은 기록 대상(극영화와는 다르게 우리는 이들을 ‘사회적 배우’라 부른다)과 많은 시간을 함께 하지 못한다. 그들 삶에 의미 있다고 느껴지는 단편의 시간만을 함께 하게 된다. 영화촬영이 끝난 후 계속해서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해도 어찌 되었건 기록되어지는 이야기는 유, 무형의 사건이 일어나는 그 짧은 시간 안에 존재한다. 그 짧은 시간 안에 뭔가 폭넓고 확장된 이야기, 혹은 입체적이고 풍부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강박 같은 것이 있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많은 경우 이 ‘사회적 배우’들의 삶에 천착하기보다는 이들을 경험했던 감독 마음의 변화를 전체 서사구조의 틀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물론 이 역시 현실을 그려내는 감독의 윤리, 역사의식, 세계관 등이 자연스럽게 투영되기에 의미 있다고 할 수 있지만, ‘사회적 배우’들이 중심이 될 수밖에 없는 현장 다큐멘터리에서는 이와 같은 구조가 조금은 억지스러워 보이는 경우가 있다. 기록영화라는 장르가 어떤 삶 혹은 사건의 순간을 돋보기로 확대해 보여주며 이 세계의 맥락을 보이게 하려는 노력이기도 하지만, 또 세상을 해석하고 분석해 내려 하는 감독의 철학과 시선에 대한 인공적이고 단편적인 결과물일 수는 있지만, 그래도 이 세상을 함의해줄 ‘사회적 배우’들의 삶의 본질에 다가가기 위한 노력은 필수적인 것이다. 그리고 ‘영화적 시간’은 이를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무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간헐적이긴 하지만 22년이라는 시간 동안 한 가족의 삶과 함께하며 관형어 없는 글을 쓰듯 담담하게 그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직조한 이 영화가, 그래서인지 나에게 진짜로 다가온 것 같다. 한 편, 한 편의 영화를 순간순간 짜내며 만드는 나의 가벼움 때문에 더더욱 진짜로 다가온 것 같다.
더불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카메라의 거리에 대한 것이다. (내가 보기에)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이 가족들은 카메라와 그리 친숙해 보이지 않는다. 가끔씩 출현하는 카메라에 대한 쑥스러움일 수도 있고, 자발적으로 말하거나 보여주고 싶지 않은 자신들의 현재이기에 그럴 수도 있다. 위에 언급했던 ‘영화적 시간’으로도 극복하지 못한 이 긴장된 거리 혹은 이 객관적 거리의 실체가 어디에서 연유된 것일까? 많이 궁금했다. 아직 실마리는 찾지 못했다. 그런데 나는 이 거리감이 영화를 오묘하고 풍부하게 느끼게 해 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는 각 가족구성원이 단순히 착하고 촬영을 거절하지 못해서 이런 거리감으로 촬영된 것이 아니라, 카메라 앞에서 뭔가 쑥스럽긴 하지만 자신들의 삶을 긴 시간 동안 증언해주고 있는, 증거해주고 있는 이 영화와 제작진에 대한 신뢰, 나아가 이러한 방식으로 자신들의 과거의 삶/현재의 삶/미래의 삶을 웅변하고자 하는 의지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 가족들과 그들의 삶에 대한 제작진들의 존중, 그리고 이 제작진을 향한 주인공 가족들의 오랜 신뢰는 결국, 짧은 시간 안에 어떤 변화를 응시, 혹은 인위적으로 유도하면서 어느 특정한 의미를 만들려 노력하는 최근의 다큐멘터리가 갖지 못한 묵직함과 진지함을 갖게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나와 우리 삶의 과거, 현재를 직면하게 되고, 재인식의 과정을 거쳐 좀 더 주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미래를 상상하게 된다. 다분히 절망적이고 힘들 것이지만, 무엇이 절망적이고 무엇 때문에 힘들 것인지를 잔잔하게 이야기해주는 영화, 그럼에도 우리는 삶의 의지를 가지고 하루하루 살아갈 것임을 값싼 희망의 언어가 아니라 실존과 실증의 언어로 이야기해주는 영화였다. <사당동 더하기 22>의 제작방식이 나를 비롯한 많은 제작자들에게 전염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