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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이스]4학년 보경이

이옥섭, 2014

[초이스]4학년 보경이 대표 이미지

그렇게 살아본 적이 없어서 잘은 모르겠지만 바라보는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면, 한국에서 여배우로 살아가는 것은 꽤 피곤할 것 같다. 특히 개성은 통통 튀어야 하고 적당히 상큼하고 발랄하기도 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거침없고 되바라져서는 안 되는 젊은 여배우라면 더욱. 전계수 감독의 <삼거리 극장>으로 데뷔한 배우 김꽃비는 양익준 감독과 함께 작업한 <똥파리>로 이름을 알린 이래 늘 당돌하고 자의식 강한 여배우로 인식되었다. SNS를 통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거침없이 이야기하고, 영화제 레드카펫에서 정치적 퍼포먼스도 서슴지 않는 그녀는 대단히 독립적인 면모를 드러내 왔다. 그래서 독립영화가 유독 김꽃비를 사랑하는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그녀의 연기는, 솔직히 늘 훌륭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강한 자의식이 극 중 캐릭터와 대체로 충돌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겉도는 느낌을 받아 왔고, 인물을 표현한다기보다 ‘김꽃비가 연기하고 있다’는 인상을 자주 받았으며, 그것은 굉장히 좋은 표현력을 가진 배우임에도 김꽃비를 좋은 배우로 손꼽기를 주저하게 만들었다. 이 부분은 김꽃비가 극복해야 하는 과제가 아닐까 생각했었다. 김꽃비가 아닌 영화 속 캐릭터를 만나는 경험은 <똥파리> 이후 이제 더는 없는 것일까 걱정이 되던 즈음, 김꽃비는 미대 4학년 보경이로 돌아와 주었다. 

영화 <4학년 보경이>는 연애가 끝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주인공 보경이는 남자친구 덕우와 4년째 익숙하고 편안하며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이제 더 이상 그들의 관계에 떨림은 존재하지 않는다. 보경이는 고장 난 선풍기처럼 한 곳을 바라보지 못하고 자꾸만 고개를 돌리고, 이별을 통보받고 너무나 괴로운 나머지 정말로 죽어버렸던 덕우는 다시 살아나 선풍기를 고치고 작업실을 깨끗이 정리해 놓고 보경이를 기다린다. 변한 마음과 그 마음 때문에 상처받았으면서도 끝까지 매달려보고 싶은 마음이 때로는 비유적으로 때로는 직설적으로 표현된다. 뽀얗고 아름다운 화면, 조금은 황당하기까지 한 한편의 소동극, 흘러간 유행가와 광고 음악, 이런 것들이 묘하게 어울리면서 이별의 감정과 어른들의 이별 행위를 적당히 비장하고 적당히 가볍게 묘사한다. 

이 영화에서 김꽃비는 주인공 보경이를 연기했다. 보경은 누군가에게는 자기 자신이기도 하고 더 많은 누군가에게는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그 몹쓸 사람’이기도 할 것이다. 다른 떨림을 찾아 오랜 연인에게 이별을 통보하는 여자의 애타는 감정을, 그리고 시작도 못 해보고 저 멀리 날아가 버릴지도 모르는 새로운 떨림을 부여잡으려는 애절한 안간힘의 이유를 영화는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김꽃비의 새초롬한 표정, 멋쩍은 웃음과 함께 한껏 주름지고 마는 눈꼬리, 제대로 모질어지지 못하는 어정쩡한 말투 따위의 것들이 그 설명을 대신한다. 어쩌면 그냥 ‘못된 년’이 되어버릴 뻔한 보경이는 김꽃비의 연기를 거쳐 ‘그래도 조금은 납득이 가는 캐릭터’로 살아난다. 

<4학년 보경이>를 통해 다시 나의 훌륭한 배우 김꽃비를 돌려받았다. 그녀는 앞으로 또 어떤 인물을 나에게, 관객들에게 이해시켜줄까? 사뭇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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