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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이스]불온한 당신

이영, 2015

[초이스]불온한 당신 대표 이미지

“나는 레즈비언이고 다큐멘터리 감독이다. 나이 든 레즈비언을 만나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바지 씨, 이묵을 만났다.” 감독의 단호한 선언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그리고 영화가 도착한 곳에는 작고 다부진 체격에 머리를 삭발한 1945년생 이묵이 있다. 말하자면 <불온한 당신>은 레즈비언인 감독 이영과 그가 선배라고 부르는 이묵 사이에 펼쳐진 한국사회 레즈비언의 역사이자 그 역사를 지나 도달한 지금 한국사회의 풍경이기도 하다. 아니, 이 말이 너무 거창하다면, 이 영화는 레즈비언 선후배 사이의 정다운 대화이자, 그들이 마치 거울을 보듯 서로에게서 자신을 느끼고 들여다보는 이야기라고 말해도 될 것이다. 

시골 마을에서 이묵의 회상을 고요히 듣던 영화는 어느새 소수자들을 겨냥하는 광적인 마녀사냥의 현장 속에 들어가 있다. 이영과 이묵 사이에 세월의 시간은 벌어져 있지만,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그곳은 학생인권조례 개정안 토론회이기도하고 세월호 유가족들의 집회현장이기도 하며 퀴어문화제가 열리는 거리이기도 하다. 그곳은 또한 이성이 마비된 집단의 폭력적인 언어와 행동이 유령처럼 출몰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영화는 종종 그러한 풍경 앞에서 분노하고 당황하고 탄식하고 좌절하는 자신의 내면을 숨기지 못한다. 어디를 가도 떼어낼 수 없는 추악하게 병든 풍경의 소란함. 그 소란함은 보는 이에게도 지겹고 끔찍하며 견디기 어려운 것이다. 

<불온한 당신>은 견디기 위해 시선을 돌린다. 감독은 보호받을 사람과 보호받지 못할 사람을 나누는 한국의 현실에 대해 넋두리를 하다 2011년 일본 대지진 이후 그곳에 사는 동성애자들의 삶이 궁금해진다. 미야기 현에 사는 레즈비언 커플의 일상을 지켜보는 영화의 시선에는 어느새 활력이 살아나고 있다. 죽음 앞에서 시스템이 자신들을 보호해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 눈앞에 살아있는 연인을 씩씩하게 긍정하고 힘껏 끌어안게 되었다는 커플의 건강함을 영화는 닮고 싶어 하는 것 같다. 반복되는 구호와 피로한 싸움에 지쳐갈 때마다 영화는 일상의 개별적인 구체성, 그러니까 자신의 육신과 욕망을 믿고 인정하며 삶을 꾸려가는 개인들의 면면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이 영화의 힘은 폭력에 저항하기 위해 고함을 질러야 하는 집회의 현장에서가 아니라, 이처럼 조용하게 담대한 사람들의 일상에서 나온다. 

그 중심에 바지 씨, 이묵이 있다. 오랜 시간 담배를 벗 삼아 고독을 견뎠을 그의 낮은 목소리, 과거를 담담하게, 그러나 생기롭게 기억하는 그의 표정, 자신의 일상을 가꾸기 위해 노동하는 그의 몸짓에는 그와 같은 소수자를 향해 던져지는 천박한 소란의 풍경들을 단숨에 압도해버리는 무언가가 있다. 그 무언가는 아마도 어떤 혐오의 언어도, 편견의 언어도, 젠체하는 지식의 언어도 무력화시키는 단단하고 구체적인 삶의 기억과 자신에 대한 긍정일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이 영화의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그가 고향 여수의 집과 용인의 집 앞에서 마을 사람들과 어울릴 때 나온다. 술과 담배를 앞에 두고 누군가는 그를 형님으로 부르고, 누군가는 여전히 그의 성별을 궁금해하고, 누군가는 아무래도 상관없어한다. 자칫 어색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그는 태연하고 능란하다. 그렇게 되기까지 그에게도 수많은 사연들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짧게 등장하는 이 장면들에 깃든 자연스러움, 아니 떳떳함은 존엄하고 유쾌하다. “돈복은 있어도 여자 복은 없었던 것 같다”고 덤덤히 회상하는 바지 씨 이묵은 당장이라도 영화 속으로 들어가 술 한 잔 나누며 그의 기운을 함께 호흡하고 싶게 만드는 사람이다. 참기 어려운 일들이 반복되는 한국사회의 현실 속에서, 그 참혹한 풍경들로 숨 막히는 영화 안에서, 그를 만난 건 영화에나 우리에게나 더없는 행운이고 위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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