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
[초이스]축지법과 비행술
이경섭, 2012
취업준비생으로 만화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영식은 언제나 바다 여행을 꿈꾸지만 현실은 만화카페 사장으로부터 휴가 때도 나와 일하라는 요청(을 가장한 명령)을 거절하지 못하는 소심하고 우울한 20대다. 어느 날 축지법과 비행술을 가르쳐준다는 학원 간판을 발견하고 이곳에 들어간다. 어쩐지 수상한 ‘사부’(오달수)를 반신반의하면서도, “몸이 무거우면 날 수 없듯, 수강료가 무거우면 날 수 없으니 깎아주겠다”는 말에 이곳에 드나들며 축지법을 수련하기 시작한다.
관객들 모두가 이 허름한 학원의 초라한 사부가 사기꾼일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 우보법, 호보법, 용보법, 운보법 등의 용어를 주워섬기지만 이 또한 아마도 무협지깨나 읽었다면 그리 낯설지 않을 것이다. 단전을 통한 호흡이 중요하다는 가르침 역시 무협지를 몰라도 누구나 짐작 가능한 부분. 우리의 주인공인 영식 역시 사부가 가르쳐 준다는 축지법과 비행술이 진짜일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다. 그럼에도 그가 피 같은 아르바이트비를 털어 이곳에 등록한 이유는, 아마도 도피처와 위안이 필요했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는 무협지나 만화를 탐닉하고, 누군가는 TV 드라마에, 또 누군가는 와우나 그 밖의 온라인 게임에 빠지는 것처럼. 영화의 초반, 사장의 요청(!)을 차마 거절하지 못하며 우물거렸던 영식은 이 학원에 드나들고 사부와 교분을 나누기 시작하면서부터 그래도 무언가 몰두할 거리를 얻는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틈틈이 호흡법을 연습하고 자세를 가다듬는다. 그리고 겨우겨우, 아주 소심하게나마, 사장의 요청을 거절한다. 물론 우리는 이후 영식 앞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충분히 예상할 수 있고 이 예상은 그리 빗나가지 않는다.
<축지법과 비행술>이 기술적으로 아주 뛰어나고 참신한 무언가를 보여준다고 하긴 어렵다. 앵글과 컷의 연결은 종종 서투르고 매끄럽지 못하며, 이야기의 전개 역시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방향을 그리 넘어서지 않는다. 심지어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인 마지막 장면의 비상 역시도 이런 류의 이야기에서 충분히 기대 가능한 무엇이다. 그럼에도 이 ‘뻔한’ 비상이, 그리고 그때 내레이션으로 다시 반복되는 ‘사부’의 가르침이 위안과 해방감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너 자신을 믿어라”라는 너도나도 믿지 못하는 그 뻔한 속삭임이, 어쩌면 정말일지도 모른다, 정말로 하늘을 날 수 있게 해줄지도 모른다! CG가 동원된 이 장면에서 나는 감독의 어떤 간절함이 화면 그대로 전달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선배 세대로부터 ‘88만원 세대’라는 호칭을 부여받았으나 스스로는 ‘잉여’라 자조적으로 일컬는 청춘들에게, 또래 세대인 감독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끌어모아 “우리, 힘내자!”며 건네는 작은 위로라고나 할까. 그 위안이 ‘축지법과 비행술’이라니, 이것은 또한 얼마나 고약한 농담이자 자조인가, 싶기도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