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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이스]가면놀이

문정현, 2012

[초이스]가면놀이 대표 이미지

성폭력을 ‘문화의 차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국은 약자들에게 무서운 곳이다. 성폭력을 인지하는 감수성의 부족과 성폭력의 고통과 그것을 처리하는 것의 미숙함, 이런 모든 것에서부터 오는 상처들은 고스란히 피해자들에게 남는다. 몇몇이 이야기를 하다 놀랍게도 그 자리의 모든 사람이 성폭력 피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적이 있다. 일상적으로 성폭력 위험에 노출되는 환경 속에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발동되는 방어기제들 때문에 많은 에너지를 쓰다 기진맥진해진 스스로를 발견할 때면 짜증스럽게 오래된 화가 올라온다. 일상적으로 만연한 성폭력이 가부장적인 문화 때문이란 이야기도 하지만 무엇부터 시작해야 성폭력 없는 세상에서 살 수 있는지 물어보게 된다. 

<가면놀이>는 아동성범죄 피해자의 가족 모임인 ‘가족의 힘’에 대한 영화이다. 모임이 조금씩 자리를 잡아나가는 모습이 담겨 있다. ‘가족의 힘’의 회원들은 피해자들의 어머니들이다. 아이의 상처는 주양육자에게 그것도 여성에게 전이된다. 그녀들은 아이를 성폭력으로부터 보호하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고 그 아이가 겪어야 하는 아픔에 대해 아파한다. 그리고 주변의 시선, 가해자가 가족일 경우 벌어지는 현실의 막막함을 호소한다. 그 모든 상처들을 스스로 보듬어야 하는 그녀들은 현실이 벅차다. 마주하기 힘든 현실에 잡아먹히기도 하지만 하나둘 스스로 상처를 보듬으며 주변의 성폭력 피해자들과 손을 잡는다. 그녀들은 현실의 벽에 도망치기도 하지만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여기까지가 이 영화의 대략의 줄거리이다. 그렇지만 <가면놀이>에는 각기 다른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섞이면서 ‘또 다른 영화’가 된다. 

우선 성폭력 피해자의 목소리가 나온다. 모자이크 처리가 되어 있기도 하지만 전반적으로 목소리만 나온다. 소리 죽여 한숨처럼 들리는 그녀들의 목소리에는 당연한 분노와 저주가 주저함 속에서도 또렷하고 정직하게 담겨 있다. 그리고 성폭력 가해자들이 나오는데 그들의 말은 언뜻 들으면 자신의 행동에 자책하며 반성하고 있는 것 같지만 그들의 목소리에는 무엇을 반성해야 할지 모르는 무기력한 인간이 있다. 또한 여기에 나오는 활동가는 끊임없이 벌어지는 아동성범죄의 현실 때문에 영화를 만들면서 힘들 거라 감독에게 경고하지만 동시에 그녀의 목소리에는 무기력과 절망감이 서려 있다. 

목소리들이 쌓여가고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영화의 경계가 확인된다. 영화는 사방이 벽인 곳에 갇혀 있다. 그 닫혀 있는 공간의 주인은 <가면놀이>를 ‘또 다른 영화’로 만든 감독이다. 감독은 성범죄를 만들어내는 사회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감독의 목소리에는 미안함과 충격과 분노가 가득 담겨 있다. 감독은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을 만나게 되면서 그들의 상처와 기억을 자신의 것으로 만든 듯하다. 그것이 노력의 결과인지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인지는 영화에 드러나지 않는다. 다만 감독은 그것들을 다양한 장치들로 영화 안에 표현해 낸다. 그래서 영화는 갑갑하다. 어머니들은 조금씩 연대하며 앞으로 나가지만 감독은 충격과 미안함 그리고 분노에 맴돌 수밖에 없다. 고통스러운 일이다. 

성폭력문제를 해결하는 시작이 피해자의 발화일 수 있듯이 피해자가 아닌 사람이 성폭력의 충격과 분노를 표현하는 <가면놀이>는 성폭력문제를 해결하는 또 다른 시작이 될 수도 있겠다. 아프지만 또 다른 방식의 연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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