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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이스]옥화의 집

허철녕, 2012

[초이스]옥화의 집 대표 이미지

‘사람이나 동물이 추위, 더위, 비바람 따위를 막고 그 속에 들어가 살기 위해 지은 건물’ 혹은 ‘가정을 이루고 생활하는 집안’을 일컫는 말. <옥화의 집>은 우리가 매일매일 돌아가는 그 곳,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공간인 집에 대한 영화이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옥화가 없는 옥화의 집에 대한 영화이다. 감독은 4년 전 암으로 떠난 외숙모 옥화의 집, 그러니까 옥화의 남편과 옥화의 두 아들만이 남은 그 집에 카메라를 들고 찾아간다. 옥화의 남편인 정진은 폐지를 팔아 생계를 유지하며 고물상을 차릴 꿈을 꾸고, 연애를 시작한다. 이웃에 살고 있는 고모와 이모의 보살핌 속에 생활하고 있는 옥화의 두 아들은 집에 다른 여자를 들이는 아버지가 못마땅하다. 로우 앵글로 잡힌, 곧 재개발을 앞둔 낡은 빌라의 외관이나 묵은 때가 덕지덕지 눌러앉은 가스레인지, 문짝이 떨어져 나간 싱크대 등 옥화의 집은 언제 무너질지 모르게 낡고, 위태롭다. 그건 비단 물리적인 공간으로서의 집뿐 만은 아니다. 정진은 새로 장가를 들어 옥화의 빈자리를 채우려 하지만, 두 아들은 새엄마의 존재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제는 거칠게 찍힌 홈비디오의 화면 속이나 사진으로만 기억할 수 있는 가족의 단란했던 한때는 옥화의 부재를 더욱 강하게 각인시킨다.

<옥화의 집>의 영문 제목은 'The Remanent People', 즉 남겨진 사람들이다. 이 영화는 옥화가 떠나고 남은 세 사람, 옥화의 남편 정진과 그녀의 두 아들 선희와 승우에 대한 이야기이다. 옥화가 떠난 이 가족의 이야기에 묘하게 `용산`이라는 공간이 겹쳐진다. 재개발을 기다리고 있는 이 낡고, 허름한 빌라 주변으로 새로 들어선 고층빌딩과 아파트들은 아찔하리만큼 높이 솟아있다. 쉼 없이 지나가는 용산역의 지하철 선로 옆에 위치한 이 빌라에서 이들은 재개발에 대한 희미한 기대와 환상을 품고, 다가올 변화를 기다리고 있다. 정진은 사람들이 떠난 집에 들어가 장판을 걷어내고, 벽지를 뜯어낸다. 싱크대의 철근을 분리해내고, 종이 박스들을 줍는다. 이것들을 고물상에 넘기고 받은 돈으로 이 가족은 생계를 꾸려간다. 철거민들이 떠난 빈집, 혹은 재개발을 앞두고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이 떠나간 이 지역에서 정진과 두 아들은 남아 파지를 줍고 생계를 꾸려가는 것이다. 

이 영화의 감독에게 세상을 떠난 옥화는 외숙모이고, 정진은 외삼촌이며, 포자는 이모이다. 하지만 감독은 자신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인물을 소개하지 않고 옥화와의 관계와 이름, 나이만으로 인물을 소개한다. 그러니까 이 영화 속에서 인물의 관계도는 철저히 지금 여기 없는 옥화를 중심으로 짜이는데(그래서 다큐멘터리에서는 다소 낯선 이 인물의 소개 방식은 얼마간 관객을 혼란에 빠뜨린다), 그것은 이 영화가 감독 자신의 가족을 담은 사적 다큐멘터리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옥화가 없는 옥화의 집, 옥화의 부재가 떠받치고 있는 남겨진 사람들의 삶에 온전히 주목하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영화는 외삼촌의 가족 이야기이기보다 엄마를 떠나보내고 남은 가족, 혹은 엄마의 자리가 비워진 어떤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될 수 있었다. 

영화는 종종 인물들의 뒷모습을 따라간다. 파지를 싣고 달리는 정진의 오토바이나 일을 마친 후 고단한 몸을 이끌고 돌아가는 포자, 술 취한 아버지를 부축하고 걷는 선희 등. 고단함과 불확실함, 허전함을 견디며 삶을 버티고 있는 이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일은 가슴이 먹먹한 일이다. 하지만 또 이들이 그 고단함을 견디고 있는 것은 언제 부서질지 알 수 없는 허약한, 하지만 또 혈연으로 맺어졌기에 끈끈할 가족이라는 버팀목 때문이기도 하다. 

누구 하나만 그 끈을 놓아버려도 무너져버릴 것 같은 이 아슬아슬한 가족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옥화가 살았다는 기억, 옥화에 대한 기억인지도 모른다. 새엄마를 받아들일 수 없는 것도, 새엄마가 들어서는 순간 이 가정은 곧 으스러져 버릴 것이라는 걸 정진도, 그의 두 아들도, 정진의 누나인 포자와 옥화의 동생 재선 모두 알고 있다. ‘새것’은 들어설 곳이 없어 보이는 옥화의 집에서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은 엄마와 아내의 부재가 남긴 서글픔과 슬픔, 그리고 집이란 무엇인가, 가족을 꾸리고 유지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다소 묵직한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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