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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이스]어둠의 저편

김창수, 2015

[초이스]어둠의 저편 대표 이미지

영화제에서 영화를 보다 보면 ‘저건 분명히 감독 자신의 경험일 거야’라고 생각되는 작품이 가끔 있다. 영화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를 할 때 다른 관객들도 감독에게 직접 겪은 일이냐는 질문을 많이 던진다. 아마도 직접 경험하지 못하면 알기 어려운 어떤 디테일이 그 영화에 들어 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드는 것 같다.

애니메이션의 경우 감독이 겪은 일로 만든 작품을 찾아내기란 더 쉬운데, 감독과 주인공 캐릭터가 똑같이 생긴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아! 똑같네’ 라는 생각이 들면서 바로 ‘그 작품을 만든 사람이구나’ 생각이 든다. 이건 거의 명함 수준이다. 여기 주인공 캐릭터와 감독이 똑같이 생긴 또 한 편의 애니메이션을 소개하고자 한다. 2015년 서울독립영화제 상영작인 <어둠의 저편>이다.

영화는 어두운 병실 안에서 생명 유지 장치의 반복되는 ‘삐삐’ 소리로 시작된다. 신경을 거스르는 소리에 주인공은 잠을 이루지 못한다. 말기 암에 걸린 누나의 병실을 지키고 있던 주인공은 급기야 어떤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바로 다시는 떠올리기 싫었던 기억, 아버지의 죽음이다. 흑백으로 된 아트웍은 병원과 죽음이라는 주제와 잘 어울린다. 이곳에서 색을 가진 것은 유일하게 삶에 대한 의지가 담긴 누나의 분홍색 페디큐어뿐이다. 

이 작품을 보면, 바로 이것이 감독의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으며, 그렇기 때문에 작품을 만드는 과정이 쉽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가족의 죽음을 작품으로 만들려면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한 것일까? 또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나서 어느 정도 솔직하게 만들면 좋은 것일까? 나는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솔직함에 큰 충격을 받았다.
<어둠의 저편>은 누나와 아버지의 죽음을 소재로 ‘우리는 죽음을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감독은 작품의 첫 상영에서 가족들을 초대했다. 그리고 영화가 끝나고 가족들과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영화를 만들 때부터 꼭 가족들과 함께 보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그동안 가족끼리 누나를 잃은 슬픔을 한 번도 드러내 놓고 이야기 해 본 적이 없어서 그런 치유의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감독이 가족에게 주는 선물 같은 작품이다.

김창수 감독은 꽤 오랫동안 애니메이션을 해왔다. 장편애니메이션 <천년여우 여우비>(2006), <마법 천자문>(2010),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2015) 등의 핵심 스태프로 참여했다. 20년 동안 업계에서 일하고 이제 자신의 첫 연출 작품을 만든 것이다. 나는 영화감독이 다른 예술 분야를 하는 것에 비해 좋다고 느낄 때가 있는데, 그것은 나이가 들어 시작해도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바이올린, 피겨 스케이팅, 화가, 가수 등은 사실 늦은 나이에 시작해서 뭔가를 해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영화만은 삶에 대해 어떤 시선을 가지고 있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에 나이가 들어도 얼마든지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게다가 이러한 첫 작품이라면, 다음 작품이 기대되지 않을 수가 없다. 올해 만들어진 신작이니 2016년에는 여러 영화제를 통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있을 것이다. 애니메이션을 즐기는 관객이라면, 놓치지 말고 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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