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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이스]할머니의 먼 집

이소현, 2015

[초이스]할머니의 먼 집 대표 이미지

93세의 할머니가 어느 날 자살을 시도한다. 수면제를 먹고 누운 할머니의 화장대에는 장례비로 쓰라며 전 재산 30만 원이 놓여있었다.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다는 것은 가까운 이들에게는 상처가 되기도 한다. 우리가 그 삶을 붙잡지 못할 정도로 가벼웠던 것일까, 하고 자책하게 된다. 어린 시절 할머니의 손에 커서 이제 30대가 된 감독은 할머니가 사라지지 않게 하려고 서울에서 전라도 화순까지 ‘할머니의 먼 집’을 찾아간다. 

하지만 할머니의 일상은 죽음보다 삶과 가깝다. 먼 길 온 손녀에게 밥 한 그릇이라도 더 먹이고 싶어 하고, 뻔히 따로 먹을 것을 아는 큰아들의 식사를 차리고, 마당 한켠 작은 텃밭을 가꾼다. 늦잠을 자다 카메라를 들고나온 감독은 마당에서 잔디를 고르고 있는 할머니를 본다. 집에선 엄마가 뭐라고 해서 그렇게 늦게까지 못 누워있지, 하며 웃는 할머니의 모습은 감독을 여유 있는 품으로 키워준 바로 그 모습이다. 그런 할머니는 왜 죽으려고 했을까. 감독의 물음에 할머니는 그저 ‘성가신게’ 하고 말할 뿐이다. 

감독의 방문으로 안정을 찾으시던 할머니는 큰아들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삶의 기력을 조금씩 잃어간다. 속이 꽉 막혀 들어가지 않는 밥 대신 죽은 아들이 좋아하던 술을 마시고, 누워서 잠을 청하는 시간이 늘어난다. 감독은 할머니를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드리고 싶어 영양제를 놓아드린다. 더 이상 자신이 도울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에 할머니가 스스로 떠나지 않도록 자주 가서 들여다 뵙는 것뿐. 살날이 많이 남은 젊은 손녀는 죽음밖에는 남지 않은 성가신 삶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다. 

죽음이라는 주제는 때로 다큐멘터리의 윤리와 부딪히기도 한다. 어느 순간 주인공의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할머니의 먼 집>은 할머니의 자살시도로 시작하고, 때로 노골적인 죽음의 바람이 드러나기도 한다. 할아버지의 묫자리를 옮기고 온 가족이 모여 제사를 지낸 다음 해 질 녘 산 아래를 내려오며, 할머니는 말한다. 오늘 밤에라도 여기 오게 되면 좋겠다고. 자식들도 웃으며 말한다. 묫자리 잘해놨으니 언제 와도 편히 계실 수 있다고. 감독의 어머니는 할머니를 요양원에 보내는 것보다 돌아가셔서 땅에 묻는 것이 더 마음이 편할 것이라고 한다. 자식들이 할머니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그들 역시 이미 긴 노년에 접어들어, 할머니의 모습에서 자신을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종일관 할머니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 영화는 죽음을 기다리는 불편함이 없다. 역설적이게도 굉장히 밝고 사랑스럽다. 할머니의 귀에 대고 소리를 지르는 손녀도, 같이 막걸리를 한 잔씩 나눠 먹고 낮잠을 자는 두 사람도,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사다 놓고 소박한 파티를 하는 모습도, 관객들에게 저절로 미소를 짓게 하는 장면들이다. 영화 내내 할머니가 사라지지 않았으면 하는 감독의 간절한 마음이 스크린 너머까지 전해져온다. 

“참말로 올해는 꼭 죽어야제. 그 맴 밖엔 없어. 통 죽을 맴 밖엔”
“할머니, 죽으면 나도 못 본데 괜찮애?”
“요만치나 컸응게 괜찮애야”
“안 괜찮애, 나는”
<할머니의 먼 집> 중에서

<할머니의 먼 집>의 영문 제목은 Dear Grandma 이다. 이 절절한 러브레터는 감독의 할머니에게만 보내지는 것이 아니라 관객들에게도 소중한 누군가를 떠올리게 하는 힘이 있다. 

겨우내 찬 기운을 피해 창고에 들어가 있던 화분들을 꺼내 물을 주고, 손녀와 함께 저수지 산책을 하며 할머니는 말한다. “인자 가자, 깐닥깐닥 구경 잘했다. 어디 먼디 구경 온 것 맹이로.” 할머니의 남은 생이 손녀와의 산책처럼 즐겁길, <할머니의 먼 집>이라는 ‘홈비디오 다큐멘터리’가 할머니의 새로운 봄맞이가 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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