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
[초이스]즐거운 나의 집 101
련, 2015
2014년 6월 11일은 지옥이었다. 아침 6시 사이렌 소리가 산을 감쌌고 경찰과 공무원은 군홧발로 가슴을 드러낸 할매들의 몸을 짓밟았다. 사람의 얼굴을 한 괴물들은 목에 감긴 쇠사슬을 무 자르듯 커터로 잘라냈고, 1년을 지켜온 집을 삽시간에 무너뜨렸다. 4곳의 농성장을 하루 만에 철거한 경찰과 공무원은 주민들이 토해내는 울분을 뒤로하고, V자를 그리며 유유히 산을 내려갔다. 10년 동안 투쟁한 밀양에는 국가도 사람도 없었다. 카메라를 들고 있던 나는 미약한 힘에 치를 떨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편집실에 틀어박혀 밀양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잘 정리하는 것뿐이었다. 영화는 그해 10월에 완성되었고, 영화로 밀양 투쟁을 알린다는 명목 하에 밀양으로 향하는 나의 발길은 멀어졌다.
밀양에 살 수밖에 없는 주민들은 6.11 행정대집행 다음날, 밀양 투쟁 시즌2를 선언하고 전국을 누볐다. 주민들이 지옥 같은 순간을 빨리 떨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늘 곁을 지켰던 연대자들 덕이다. 련 감독의 <즐거운 나의 집 101>은 주민들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연대자를 주목한다. 영화는 101번 철탑 부지에서 주민들과 연대자들이 우정을 쌓아가는 과정을 통해 송전탑 건설로 국가가 파괴한 것과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공동체에 대해 생각하게끔 하는 영화다.
구미현 어머니가 간이 딱 맞는 짭짤한 땀을 흘리며 산을 오른다. 그곳엔 비닐하우스로 만든 농성장만 있을 뿐 전기도, 물도, 화장실도 없다. 행정대집행 예고장이 수시로 날아오지만 신기하게 긴장감도 없다. 10년 동안 송전탑 반대를 하며 터득한 투쟁의 노하우는 ‘놀고먹고 웃자!’였다. 사람들은 각자 놀고먹기 위해 산 아래서 밥, 반찬과 물, 맥주를 메고 오고, Joon’s카페와 요서요 북카페를 연다. 옆 산봉우리엔 쿵쾅쿵쾅 공사가 한창이지만 101번 부지에는 고등어 파티와 음악회가 열리며 웃음소리와 음악이 끊이지 않는다. 101번 식구들은 산 아래서는 너무나 쉽게 누리는 작은 것에 소중함을 깨달으며 작은 공동체를 꾸려나간다.
현장을 기반으로 한 영화에서 흥미롭게 바라봐야 할 지점은 감독이 현장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느냐이다. 련 감독은 현장을 멀리서 지켜보지 않고 그 속에 들어가 또 한 명의 연대자가 된다. 함께 밥을 먹고, 음악을 즐기고, 웃고 떠든다. 제목에서 농성장을 ‘나의 집’으로 호명한 이유가 영화 속에서 온전히 묻어나, 관객에게 현장의 생동감을 고스란히 느끼게 해준다. 급기야 감독은 6.11 행정대집행 때 한 명의 주민이 되어 나의 집을 지키기 위해 목에 쇠줄을 감고 카메라를 든다. 극장에서 6.11 행정대집행 장면을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었다. 무뎌졌다고 생각했는데, 내 안에 그때의 분노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그때 이후 그 순간을 외면하려고 노력했던 나와 달리 감독은 그 장면을 올곧이 지켜보고 있다. 그리고 극장에서 영화를 관람하고 있는 우리에게 이 나라의 현실을 직시하게 만든다.
영화의 큰 줄기 중 하나는 행징대집행 1년 이후 어진이가 101번 부지에 오르며 자신의 소회를 나누는 것이다. 어진이는 고등학교를 다니다 밀양 소식을 듣고 연대한 이후, 학교를 자퇴하고 밀양765kV 송전탑 반대대책위에서 활동가로 활동하고 있다. 어진이가 오른 곳엔 101번 송전탑이 거대하게 버티고 있다. 어진이는 송전탑을 올려다보며 조용히 사는 게 꿈이라고 말한다. 감독은 어진이에게 “너한테 101번은 뭐야?”라고 묻는다. 어진이는 힘들었던 곳이지만 우리가 전기 없고 물 없이도 잘 살 수 있다는 걸 깨달은 시간이었다고 대답한다. 그리고 대준 아저씨처럼 배짱이도 밥 먹을 수 있는, 평지에서 만들 집의 롤모델이었다고 말한다. 어진이의 경험과 깨달음은 도시에서 각자 섬이 되어 힘겹게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현재 밀양에는 101번을 포함해 62개의 괴물 같은 송전탑이 마을을 감싸고 있다. 시험 송전은 마쳤고 올여름이면 본격적으로 송전이 시작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밀양 투쟁을 끝났다고 규정짓지만 밀양 주민들은 오늘도 탈핵 탈송전탑을 외치며 전국을 누비고 있다. 밀양 주민들은 패배하지 않기 위해, 당신들이 받았던 연대에 힘을 나누기 위해, 기어코 즐거운 우리 집을 짓기 위해, 오늘도 현장을 찾는다. 당신은 폭력이 난무하는 이 나라에서 어떤 집을 짓고 싶은가? <즐거운 나의 집 101>을 보고 우리나라의 현실과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야 할 집에 대해 이야기 나눠보자!
공동체 상영 문의: jelesais@naver.com
상영 소식: https://www.facebook.com/즐거운-나의-집-101-9004768533937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