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
[초이스]오디션
민경조, 2009
2009년 12월의 어느 날. 인터뷰를 위해 구로의 어느 건물을 찾았다. 애니메이션 제작사가 모인 곳이었는데, 분위기는 공장에 가까웠다. 전기료를 아끼려 듬성듬성 켜진 복도의 형광등, 덜컹거리는 엘리베이터.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곳이라고 보기에는 색감이 전혀 없었다. 그곳에서 <오디션>을 제작하고 연출했던 민경조 감독을 만났다. 천계영의 동명 만화가 원작인 이 작품은 프리프로덕션에 들어갔던 1999년 이후, 10년 만에 개봉을 앞두고 있었다. 개봉관은 남산애니메이션 센터 딱 1곳이었다.
원작만화는 발행 당시 10권의 시리즈로 각각 10만 권씩 팔아치웠던 작품이었다. 음악이란 매개와 오디션이란 무대, 그리고 짙은 상처를 지닌 10대 미소년들의 이야기는 그때의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열광의 대상이었다. 장편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다는 소식이 불러일으킨 기대는 당연히 컸다. 중국과 일본에서도 투자가 진행된다는 이야기가 있었고, 당시로써는 엄청난 뮤지션들이 재활용밴드와 다른 경쟁그룹의 음악을 만드는 계획도 들렸다. 하지만 (언론 시사도 열리지 못해서 스크리너로 보았던) 애니메이션 버전의 <오디션>은 거창한 기대와 계획에 비해 빈약했다. 원작에 나타난 기상천외한 그룹들과의 경쟁 에피소드는 아예 삭제됐고 4명의 소년 각자가 가진 상처 또한 묘사되지 않는다. “베레 베레”라는 외계어를 쏟아내던 황보래용이나, 말없이 멋있는 척하다가도 삐끗하는 국철의 매력을 다시 느낄 수 없다는 건 큰 아쉬움이었다. 캐릭터에 대한 설명이 없는 탓에 이들이 만든 음악도 뜬금없게 들린다. 원작을 경험한 입장에서는 너무 손쉽게 만난 이들이 연습도 별로 하지 않고 최종오디션에 오르는 과정이 싱거웠다.
<오디션>이 기획될 당시만 해도 <마리 이야기>나 <원더풀 데이즈> <아치와 씨팍>이 제작에 들어가 있었다. 하지만 이 작품들 중 흥행한 작품은 없었다. 애니메이션 제작 붐의 막차를 탄 <오디션>에도 투자가 끊겼다. 민경조 감독은 다른 곳에서 투자를 받아내는 한편, 다른 일을 하면서 번 돈으로 <오디션>을 제작했다. “방대하게 시작했지만, 포기할 게 점점 많아지더라고요.” 콘서트 장면은 여러 대의 카메라를 이용해 소스를 찍어서 활용하려 했지만, 역시 자금이 부족했다. 리그전의 에피소드까지 담기에도 돈과 인력이 부족했다. 몇 가지 에피소드를 지켜가는 선에서 완성은 했지만, 나름의 완성도를 위해서는 그마저도 걷어내야 했다. “동냥질로 10년 동안 만든 그림을 걷어내는 게 정말 힘들었어요. 그래도 중도하차는 못 하겠더라고요. 어떻게든 일단 완성시키고 싶었어요. 사람들의 평가는 두 번째 문제인 거고.”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흐르자, <오디션>은 고전이 돼버렸다. 2007년 이후 개봉을 타진했지만, 극장은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결국 작업에 참여한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기다릴 수가 없어 단관개봉을 결심했던 것이다.
작품만 놓고 봤을 때, <오디션>은 초이스 될 수 없는 애니메이션이다. (IPTV에서 볼 수는 있다.) 다만 나에게 <오디션>은 한국에서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있는 사람들의 근황을 궁금케 만드는 작품이다. 천계영의 <오디션>이 회자될 때마다, 그때 찾아간 건물의 황량함이 동시에 떠오른다. 그곳도 원래는 알록달록한 색감으로 가득한 곳이 아니었을까? 좌절과 낙담이 반복되면서 풍부했던 작품은 살점을 잃어가고, 그들이 일하는 공간도 색감을 잃어간 건 아니었을지. <오디션>은 하나의 쓰라린 사례다. 동시에 모두가 외면했지만, 종종 되돌아봐야 하는 기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