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
[초이스]고치
여은아, 2015
민아는 엄마의 안락사를 거부하고 집으로 데려온, 남들이 보기에 전형적인 효녀다. 그러나 실상 엄마와의 하루하루는 고통과 두려움의 연속이다. 고치로 변해가는 병에 걸린 엄마는 그녀에게 폭언을 일삼으며 정신적인 학대를 일삼는다. 그러나 그 사실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민아는 매일 쓰러져가는 아파트 한 켠의 벌레로 가득한 집안, 그곳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무시무시한 엄마에게 돌아간다. 결혼을 약속한 남자친구 철구에게도 엄마의 존재를 비밀에 부친 채 항상 주변을 확인하고서야 현관문을 연다.
깨진 거울 너머 민아가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엄마의 안락사를 거부하는 자신의 목소리와 자식이 엄마를 돌봐야 하지 않겠냐는 사람들의 말을 떠올리며 두통을 느끼는 장면은 거울처럼 망가져 회복할 수 없는 모녀 관계와 가족으로서의 무거운 의무감을 상징한다. 민아에게 끔찍한 것은 고치로 변하는 엄마의 모습이 아니라 부모라는 이유로 무조건 견뎌야 하는 엄마의 폭력적인 말들이다.
만나는 사람이 있다는 딸에게 엄마는 미쳤냐며 결혼이라도 할 생각이냐고 비웃는다. 엄마는 쉴 새 없이 딸의 가슴을 할퀴는 말들을 쏟아내며 자식의 편안한 잠조차 허용치 않는다. 그러다가도 돌연 태도를 바꿔 너도 날 버릴 거냐며 외로워 죽겠다고 하소연하는 엄마는 민아에게 벗어나고 싶지만 벗어날 수 없는 굴레다.
현실에 순응한 민아는 자신을 물어뜯는 엄마를 본능적으로 방어한 후에도 오히려 엄마에게 미안하다며 이상해지는 건 엄마가 아니라 자신이라고 자책한다. 집을 떠나 자신에게 오라는 철구의 제안에도 달리는 차 안에서 뛰어내려 다친 다리를 절뚝이며 엄마에게 향하는 것으로 답한다. 엄마로부터의 탈출구로 보이는 남자친구 철구도 민아를 이해하고 보듬기보다 집착과 소유의 대상으로 볼 뿐이다.
어느새 완전한 고치가 되어 목소리만 들려주던 엄마는 마침내 나방으로 변화해 끔찍한 모습을 드러낸다. 엄마의 여전히 날이 선 말들과 남자친구까지 위협하려는 행동은 민아가 지금까지 겨우 붙잡고 있던 이성의 끈을 놓게 만든다.
사람들에게 가족이란 관계는 어떤 의미를 지닐까? 한국영화아카데미 졸업작품인 여은아 감독의 <고치>는 가족이라는 이름이 주는 의무감, 그 틀 속에 갇혀 살아가는 인물들을 그려내고 있다. 재개발이 예정된 쓰러져가는 아파트를 배경으로 엄마, 민아, 철구 세 캐릭터의 관계를 그려내는 작품이 주는 충격은 강렬하다. 공포 만화의 대가 이토 준지의 작품을 떠올리게 하는 캐릭터들의 섬뜩한 묘사와 흑백의 색채가 주는 무미건조함은 무척이나 서늘하다. 더욱이 전통악기들로 만들어내는 예상치 못한 그로테스크한 음악은 영상과 어우러지며 작품에 긴장감을 주며 뚜렷한 개성을 부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