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초이스]옥주기행

김응수, 2016

[초이스]옥주기행 대표 이미지

태초에 소리가 있었다. 이 태초의 소리는 존재가 원형의 어떤 것으로부터 분화되기 시작하는 원초적 힘의 울림이었을 것이다. 흔히 ‘원형의 섬’이라고 불리는 진도의 삶에는 고대에 인간과 그 원형의 존재를 연결해 주던 의례가 남아있다. 그리고 그 의례의 중요한 요소는 물질과 비물질의 중간, 주체와 객체 사이의 어딘가 위치하며 그 간극을 채우는 소리이다. 김응수 감독의 <옥주기행>은 바로 그 원형적 울림으로서의 소리를 담아내려는 노력이다. 그렇기에 사라져가는 전통을 기록한 영화라는 표면적 형태 안에 담긴 것은 우리 안에 존재하는 소리의 근원을 환기시키며 우리를 그곳으로 끊임없이 회기시키는 소리의 존재론이다. 

영화의 각 장을 여는 것은 지역의 풍광이다. 부드러운 푸른 곡선으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남도의 산하를 소개하는 음악은 서구의 음악이다. 이러한 조합이 전혀 이질감 없이 바로 이어서 들리는 진도의 가락과 연결된다는 영화적 솜씨 이외에도, 이 선곡이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 아님은 쉽게 알 수 있다. 스코틀랜드 민요, 카탈루냐 민요를 포함하는 챕터 간 음악은 마치 영화 안의 소리가 단순히 진도 주민의 노랫가락이기 이전에 땅과 하늘에 스며 있는 보편적 소리임을 전제하는 듯하다. ‘소리는 새 육체를 찾아 떠돈다’, ‘눈이여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느냐’라는 제목의 첫 두 챕터의 소개는 바흐의 마태수난곡과 함께 자못 비장하게 사라질 위기에 있는 소리를 애도하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하지만 영화가 이제는 목소리에 힘이 없음을 호소하는 노인들의 소리에 이어 술자리에서 거나하게 이루어지는 중장년층의 신명나는 즉흥 소리판까지 담은 후 이어지는 마지막 챕터에서는 정서의 전환이 이루어진다. ‘새는 노래한다’라는 제목의 챕터는 갖가지 새들이 예수의 탄생이 가까웠음을 알리는 ‘새의 노래’와 함께 시작된다. 새는 세계 많은 신화에서 세계 창조에 관여하며 인간계와 천상계, 신과 인간을 매개하는 존재로 묘사된다. 육체 없이도 존재하며 떠돌던 소리는 새의 노래와 함께 다음 순환의 시작을 기약한다. 이러한 상징적 구성의 장 안에 등장하는 진도인은 산하에 떠도는 소리를 자신들의 삶과 목소리를 통해 육화하는 존재로 나타난다. 항상 존재하는 자연의 메시지를 지금 현재의 세상에 전달하는 새와도 같은 존재인 것이다. 

이렇듯 각 장의 소개를 통해 소리의 주체를 보는 거시적인 시각을 제시한 영화는 그 장들을 현재의 공간에서 소리를 재현하는 주체들의 삶으로 채운다. 노래라고 하기엔 담화에 가깝고 말이라고 하기엔 몸을 진동시키는 리듬과 가락이 있는 그것을 ‘소리’라 부르는 것에도 그들이 내뱉는 소리가 가진 원형성이 반영되어 있다. 먼저 간 남편을 그리며, 고기잡이 그물을 걷어 올리며 그들이 소리를 만드는 행위는 ‘부른다’기 보다는 ‘산다’라는 동사로 표현하는 것이 더 어울린다. 감독은 녹음된 음원으로는 결코 재현할 수 없는 그 삶을 영화만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고스란히 담아낸다. 카메라는 소리의 주인공을 굳이 내세우지 않는다. 대신 무심한 시골집 잡동사니들과 소주병, 함께 장단을 맞추거나 핸드폰에 열중하거나 하는 주변의 구경꾼이 현재 그 소리와 하나임을 계속 드러낸다. 노래 끝의 탄식과 한숨은 하나로 연결되어 그 시간과 장소의 정서, 몸의 리듬과 하나가 된다. 영화 속 소리하는 노인들은 대를 이을 젊은 세대가 없음을 한탄하지만 영화는 이들이 소리의 마지막 세대임을 애잔해 하지만은 않는다. 

영화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것은 진도 바닷길축제의 행렬이다. 자연이 어김없이 바다를 다시 가르는 기적을 보이듯, 소리는 다른 시간에 다른 형태로 존재할 것이다. 전작에서와 마찬가지로 감독은 현재 안에 층층이 존재하는 과거를 담았다. 그리고는 그 다차원을 관통하는 힘을 찾아내어 표현하는 놀라운 통찰을 보여준다. 문화재로서의 소리를 버리고 구경꾼과 핸드폰과 등산복 행렬과 하나 된 소리의 모습을 잡아내기까지, 수없이 재설정해야 했을 자신과 카메라의 존재는 영화의 무게가 되어 담겼다

관련 영화인

불러오는 중입니다.

관련 영화글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