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연재
[테마연재]쫓는 차와 쫓기는 차 - 추격하는 경찰차
영화와 자동차 ②
넷플릭스에서 이탈리아의 자동차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그것이 등장하던 순간, 깜짝 놀랐다. 고속도로를 주행하는 경찰차의 차종이 람보르기니 우라칸 스파이더라는 모델의 스포츠카였기 때문이다. 차 한 대의 가격이 3-4억 원 이상 나간다는 값비싼 스포츠카에서 내린 경찰은 다큐 제작진에게 뭘 놀래느냐는 표정을 지어 보인다. 그러면서 경찰은 스포츠카, 아니 경찰차 트렁크에 실린 구급상자 시스템을 보여주며 자신들은 난폭 운전자들을 쫓는 일 외에도 (이렇게 비싼 차니까) 위급상황 발생 시에 헬기보다 더 빠르게 응급처치를 도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날씨가 안 좋아 헬기가 뜨지 못해도 차는 질주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렇게 비싼 차니까) 법이 인정한 질주 가능한 경찰차라니, 묘한 매력이 느껴졌다. 역시 페라리와 람보르기니의 나라답다. 한 가지, 한국 못지않게 이탈리아 역시 경찰차의 디자인 색상이 예쁘지 않다는 점이 눈에 밟혔다. 아무튼 현실에선 경찰차가 가장 눈에 띄지만 영화를 볼 때는 경찰차에 아무런 관심이 가지 않았다.
반면에 범죄자들의 차량은 디자인과 색상이 캐릭터와 맞물려 하나의 성격이나 태도를 나타내주는 잣대로 평가하곤 했다. <분노의 질주> 시리즈에서 도미닉(빈 디젤)이 타는 닷지 차저와 브라이언(폴 워커)이 타는 토요타 수프라의 차종 자체가 그들의 캐릭터를 대변했듯 말이다. <히트>에서 LAPD 빈센트 반장(알 파치노)이 무슨 차를 타고 다니는 지가 그리 중요한가? 기억도 잘 안 난다. 참고로 이 글을 쓰려고 일부러 찾아보니 1992년형 포드 크라운 빅토리아 LX 모델이었다. 미국 내 웬만한 택시와 경찰차는 대부분 이 모델이 공급된다. 도미닉의 입장에서 깔보자면 무개성 보급형인 것이다.
내 눈을 사로잡은 경찰차

<블루스 브라더스> 경찰차
그런데 영화를 보다가 유독 경찰차에 꽂힌 적이 있다. 존 랜디스 감독의 1980년 작 <블루스 브라더스>를 보던 중이었다. 망나니 제이크(존 벨루시)는 교도소에서 출소하던 날, 형제인 엘우드(댄 애크로이드)가 경찰차를 몰고 나타나자 대뜸 “이 똥차의 출처는 어디냐?”고 따져 묻는다. 그가 끌고 나온 낡은 경찰차는 1974년형 닷지 모나코로 엘우드는 경찰 공매에 나온 낡은 중고차, 즉 경찰이 쓰다 버린 차를 돈을 주고 주워 타고 온 것이었다. 차체의 앞뒤 모두 넓은 직사각 형태라 위에서 내려다보면 옛날 회수권 비율의 직사각형이 떠오른다. 1970년대에 주로 만들어 보급했던 이 모델은 4문 세단의 중형차로 전륜 구동에 넓은 무게감을 강조하는 형태로 디자인된 경찰차였다. 엘우드는 이 차가 “경찰 엔진에 경찰 타이어, 그리고 경찰 서스펜션을 겸비한, (석유 파동 이후 적용된 차체 규제가 적용되기 이전 모델이라) 일반 휘발유로도 잘 나가는 차”라고 자랑한다. 사실 이 낡은 닷지 모나코가 마음에 들었던 이유는 제이크와 엘우드 형제가 이 차를 몰고 시카고 시내를 누비고 다니면서 벌이는 황당한 모의 때문이었다. 자신들이 자라온 고아원이 밀린 세금 5,000달러 때문에 건물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하자 그들은 돈을 구해보겠다며 밴드를 결성해 콘서트를 연다. 요주의 인물로 찍힌 망나니 형제가 도시를 휘젓고 다니니까 영문을 모르는 경찰들은 그들이 무슨 범법을 저지를지 몰라 그 뒤를 바짝 뒤쫓는다. 영화 후반부, 두 형제가 경찰을 따돌리고 공연장에 도착하기 위해 벌이는 추격 장면은 당시로써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블록버스터 범죄 영화 규모의 카체이스 액션을 선보인다. 수십 대의 경찰차가 형제를 뒤쫓다가 도로 한복판에서 서로 부딪쳐 뒹굴며 종잇장 구겨지듯 짓이겨지는 장면은 명불허전이다. 당시 SNL에서 최고 인기를 구가하던 배우 댄 애크로이드가 이 영화를 기획하면서 존 랜디스 감독과 함께 액수 불명의 엄청난 제작비를 써댔는데 스튜디오가 이를 제어하지 못하는 바람에 탄생한 명장면(?)이었다고 전해진다. <다크 나이트>(2008)에서 조커(히스 레저)가 바주카포를 날리던 지하도, 조커의 지시로 고담시 시민들이 브루스 웨인을 덮치던 고가 아래 도로 같은 시카고 시내 도로를 블루스 브라더스 형제가 십수 년 전에 이미 닷지 모나코를 타고 질주한 바 있다.
무모한 카체이스 촬영

<프렌치 커넥션>

1971년형 폰티악 르망
<블루스 브라더스>의 경찰차에 사로잡혔다는 것은 정작 경찰이 모는 경찰차에 끌린 건 아니라는 소리다. 허나 경찰이 타고 있는 차를 모두 경찰차의 범주에 넣는다면 <프렌치 커넥션>(1971) 이야기를 꺼낼 수 있을 것 같다. 윌리엄 프리드킨 감독에게 1972년 최연소 아카데미 감독상, R등급 최초 작품상 등을 안긴 이 영화는 뉴아메리칸 시네마 시대를 열어젖힌 영화로 널리 알려져 있다. 제작자인 필 댄토니는 지난 칼럼에서 소개한 영화 <블리트>를 제작했는데 그때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감독과 함께 기존 영화들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시도로 점철된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탄생한 추격 장면은 자동차가 자동차를 추격하는 것이 아니라 자동차가 기차를 추격하는 장면이었다. 프랑스에서 건너온 마약 거래 사범들을 뒤쫓던 지미는 킬러로부터 살해 위협을 받고는 도망치는 그를 추적한다. 그런데 킬러가 기차를 타자 열차 고가 밑 도로를 마침 지나가던 시민의 차량인 1971년형 폰티악 르망(하드탑 세단)을 무작정 빼앗아 뒤쫓는다. 앞서 소개했듯, 이 장면은 촬영 현장 분위기를 알고 다시 보면 불편해서 제대로 즐기기 어려울 정도로 험난하게 촬영했다. 이 장면의 탄생 비화는 다음과 같다. 첫 제작 회의에서 제작자 필은 스태프들을 모아 놓고 “내가 지금 최고의 추격장면을 담은 영화를 기획했다.”고 자랑을 늘어놓으면서 <블리트>보다 더 멋진 추격 장면을 넣자며 허풍 아닌 허풍을 떨었다. 그런데 감독은 촬영이 시작됐음에도 추격 장면에 대해 딱히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없었다. 둘은 서로 차일피일 아이디어를 내놓길 미루다가 하루는 촬영장으로 향하면서 뉴욕 거리를 산책하는데 마침 두 사람이 걷던 도로 아래로 지하철이 덜컹거리며 지나가더란다. 길거리에는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걸어 다니는 모습을 본 제작자 댄은 자신이 평생 살아왔던 뉴욕의 고가 철도를 올려다보며 위아래로 무언가 동시에 달려나가는 추격 장면을 떠올리게 된다. 자동차가 기차를 쫓는 장면의 콘셉트는 그렇게 시작됐다. 그런데 당시 1970년대에는 지금처럼 카체이스 전문 촬영 장비인 러시안 암 같은 특수 장비가 존재하지 않을 때이고 그렇다고 차량을 개조해서 찍을 생각도 해보던 시기가 아니라 무식하게 추격 장면을 ‘진짜로’ 연출해서 찍어야 했다. 애초 이들의 연출 방향이 다큐멘터리 스타일을 추구하는 범죄 영화를 표방했기 때문에 실제로 추격하는 장면을 찍어야 한다는 사명감은 더욱 컸을 것이다. 훗날 촬영감독은 “주인공이 탄 차가 신호를 무시하고 달리고 사람과 차 사이를 간신히 비껴가는 등의 영화 속 추격 장면은 연출된 게 아니라 전부 실제상황이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절대로 찍어서는 안 되는 방식으로 촬영한 장면이었던 것이다. 또 흥미로운 것은 진 핵크만의 스턴트 운전 대역으로 빌 힉크만이라는 스턴트 전문가가 맡았는데 바로 <블리트>(1968)에서 악역으로 등장했던 그다. 그는 이번 영화에서도 FBI 요원으로 등장해서 주인공 형사 지미(진 핵크만)의 속을 긁는 역할로 출연하기도 했다. 그는 감독이 요구하는 거의 모든 무모한 스턴트 촬영을 모두 해냈다. 무사한 게 다행이었다.
물론 사고도 있었다. 세컨드 유닛 촬영감독이 고가철도 아래쪽에서 지미 역의 배우 진 핵크만이 직접 차를 모는 장면을 찍고 있었는데 카메라는 자동차 트렁크에 있었고 엄청난 속력으로 질주 중이었다. 그런데 촬영과 무관한 일반 시민들의 차량이 옆 차선에서 같이 달리는 것을 염두에 두지 못한 상태에서 갑자기 차 한 대가 뛰어드니까 진 해크먼이 왼쪽으로 핸들을 급히 꺾은 것이다. 그래서 옆 차와 충돌하고 이어 다리 기둥과 부딪쳤는데 촬영감독이 그 충격으로 트렁크에서 날아가 바닥에 나뒹굴었다고. 다행히 배우도 다친 곳은 없었지만 영화 역사의 비극으로 남을 뻔한 촬영현장이었다.
또 <프렌치 커넥션>은 제작진의 영화를 향한 위험하고 무모한 도전이 캐릭터에도 반영된 흥미로운 영화이기도 하다. 극 중 지미는 프랑스 마약단을 잡기 위해 집요하게 그들을 쫓다가 거의 반 미치는 상태가 되어 동료의 죽음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뒤쫓은 괴물 같은 존재가 되어간다. 그것은 범죄자의 뒤를 쫓던 캐릭터가 이성을 잃고 점점 자신이 쫓는 범죄자와 닮아가곤 하는 캐릭터를 보여주는 방식이었다. 지미가 평소 범인들을 추적할 때 타고 다니는 자신의 차가 1971년형 포드 LTD(Brougham Hardtop Sedan)인데 이 모델은 경쟁사 차량인 고급형 세단 링컨 콘티넨털에 대항하는 고급화 전략을 내세워 만들어진 차량이었다. 극 중 프랑스 마약단이 미국으로 마약을 숨겨 들어오는 수단으로 링컨 콘티넨털을 이용한다는 설정의 디테일도 이 같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라면 과장된 해석일까. 윌리엄 프레드킨 감독은 경찰과 범죄자, 영웅과 악당의 기준을 모호하게 제시한 <프렌치 커넥션> 이후 알 파치노가 동성애자 연쇄 살인사건을 추적하는 형사로 분하는 <광란자>(1980), 선배 요원의 죽음에 분노해 범죄와 결탁한 조직의 치부를 드러내고자 하는 특수요원 이야기 <리브 앤 다이>(1985) 등의 영화를 통해 일관된 주제를 밀고 나갔다. 물론 이들 영화에도 우악스러운 카 체이스 장면을 빼놓지 않고 등장시켰다. 경찰차에 대해 흥미를 느꼈다면 함께 찾아보시길. 경찰차의 추격이 인상적인 영화와 반대로 경찰에 쫓기며 질주하는 악당들의 카체이스 장면이 인상적인 영화에 대해서는 이어지는 다음 연재에서 정리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