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
[초이스]사랑의 기원
예전에 어느 지인과 대화중 필자는 극히 개인적인 이유로 음악보다 영화가 더 위대한 예술장르 같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극히 개인적으로, 지금도 그 사실에 변함이 없는 이유는 필자가 음악을 통해 위로받고 감동 받은 적은 수없이 많았지만 음악이 삶의 실천과 연관된 의식에 영향을 준적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반면 나를 반성케 하고 성찰하게 해준 영화는 꽤 많았다. 킴벌리 피어스 감독의 <소년은 울지 않는다.>가 가장 대표적인 영화였다.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타자에게 향한 나의 폭력의 시선이 무척이나 부끄러웠던 그 순간 대한민국에 사는 한 청년은 그 영화를 보며 깊은 반성의 눈물을 흘렸다.(20년 동안 기독교로부터 학습된 성적소수자에 대한 나의 편견이란...지금도 부끄럽다.) 이렇듯 오랜 시간동안 주입되어 더 이상 생각의 가지가 뻗어나가기 힘들었던 나에게 가지치기를 해준 애니메이션도 있었으니 다름 아닌 실사영화 <헤드윅>에 삽입되어 있는 Emily Hubley의 <사랑의 기원>이라는 단편애니메이션이다. (별도의 작품명은 없는듯하여 테마송의 제목을 붙였다.)
이 작품은 겁나게 머나먼 옛날, 남자와 남자, 여자와 여자, 남자
와 여자, 이와 같은 세 종류의 완전체로 살아가고 있던 인간이 제우스의 폭압으로 갈라져서 훗날 서로가 서로를 갈구하고 찾아다니게 되었다는 플라톤의 <향연> 중 일부분을 신화적 이야기로 만든 뮤직비디오 형식의 단편애니메이션이다.
그동안 누군가가 우리에게 주입된 사고로 이 애니메이션을 대한다면 그는 신(神)을 지배할 수 없다. 평생을 권력과 지배자들의 하수인 노릇하다가 끝날 팔자다. 신화는 1차적인 메시지보다 그 뒤에 있는 2차적인 메시지, 즉 메타포의 발견이 중요하다. 우리 주위엔 세상의 신(神)들을 거슬러 자신의 사랑의 기원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있다. 혹시라도 세상의 신(神)들이 자신들의 완전체를 부서뜨릴까 무서워하고 꼭꼭 숨어 있어야 하는 사람들. 이 애니메이션은 숨어 사는 그들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필자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그 상상은 실제로 필자와 동시대를 살면서 그런 사랑을 진행하고 있는 소수자들을 이해하게 하고, 그들을 혐오하고 차별하는 사람들로 부터 맞서 싸울 수 있는 의지를 심어 준다. 이렇게 뻗기 시작한 상상력의 가지는 세상의 무수한 현상들을 그 누군가의 생각이 아닌 나만의 통찰력으로 이해할 수 있게끔 열매 맺게 도와준다. 우리 사회가 문화 예술을 지지하고 사랑해야 하는 주된 이유 중에 하나이다. 이 광합성의 에너지가 한편의 단편 애니메이션 <사랑의 기원>에서 나오고 있다니...그 귀한 생명의 말씀을 잠시 나눠보고 싶다.
“지난 번 너를 봤을 때, 우리는 막 둘로 나눠진 참이었어. 너는 나를, 나는 너를 보고 있었지. 너를 어쩐지 알 것 같았지만, 그렇지만 알아볼 수 없었어. 네 얼굴에, 내 눈에 피가 묻어 있었으니까. 하지만 네 표정을 보면 네 영혼 밑바닥의 고통은 내 것과 같은 종류라고, 나 확신할 수 있어. 심장을 반으로 쪼개 놓는 것 같은 그 고통. 우리는 그걸 사랑이라고 불러.
우린 서로 보듬어 안고 처음처럼 한 몸으로 돌아가려고, 사랑을 하지. 사랑을 하지. 그건 아주 오래 전 어느 춥고 어두운 저녁, 전지전능한 손에 의해 어떻게 우리가 외로운 두 발 짐승이 되었는가 하는 그런 슬픈 이야기. 사랑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 그게 사랑의 기원이야.
사랑의 기원, 사랑의 기원, 사랑의 기원“ - <사랑의 기원>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