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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이스]프린세스

안데르스 모르겐탈레, 2006

[초이스]프린세스 대표 이미지

애니메이션과 관련된 여러 가지 이슈들 중에서 ‘리얼리티’와 ‘서사’라는 개념은 몇 안 되는 난제에 속한다. 복잡한 문제를 제외하더라도, 애니메이션이라는 매체가 가진 가장 근본적인 속성인 ‘그려진 이미지’와 ‘움직임’이라는 요소는 현실이라는 측면보다는 ‘환상성’에 더욱 많은 부분이 착종되어 있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실사영화는 필름이라는 매체의 지표적 성격 때문에 현실에 더 많은 부분이 할애되어 있다. 물론 매체적으로 말이다. 때문에 많은 연구자들이 지적하였던 것처럼, “애니메이션은 서사 또는 리얼리티 보다는 실사영화가 묻어버린 ‘상상력과 환상성의 강화’에 주안점을 두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보통 애니메이션이라는 명칭에서는 상상력과 표현, 그리고 제작 공정과 같은 마술적이고 기계적인 요소에 더 많은 장르적 기대를 걸어왔다. 

이러한 - 그러면서도 불온한 - 장르적 양식에 따른다면, 애니메이션 <프린세스>는 우리가 흔히 사유할 수 있는 애니메이션적인 서사와 이미지 등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공주’라는 단어만큼이나 애니메이션의 환상성을 대표하는 요소가 또 있을까? 하지만 <프린세스>에는 왕자를 기다리는 예쁘고 귀여운 공주 따위가 등장하지 않는다. 말괄량이 공주가 요술봉으로 급성장하여 미모의 여신급으로 변화하는 그런 류도 아니다. 이 작품에서의 공주는 하드코어 포르노 여배우의 별명이다. 환상적이고, 마술적인 상상력이 말라버린, 이 얼마나 불온한 서사인가? 이에 비하면 레이디 가가의 국내 내한 공연 소동은 장난에 불과하다.

2006년, 덴마크에서 만들어진 불온하고 우울한 서사로 가득한 애니메이션 <프린세스>. 이 작품은 자신의 실수로 여동생을 포르노 스타로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신부(神父) ‘오거스트’와 그녀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남겨진 다섯 살 여자 꼬마 아이 ‘미아’가 펼치는 복수극이 근간이 된다. 이들 사이에서 죄의식, 속죄, 살인, 방화, 포르노, 마약, 성매매, 아동 학대와 성폭력 등은 <프린세스>의 서사를 관통하는 주요한 요소들이다. 마치 스콜세지의 <택시 드라이버>를 떠오르게 하는 이 서사는 작품 속 애니메이션의 ‘그려진 이미지’와는 달리 묵직한 무게감을 가진다. 그리고 그것은 지독한 현실을 그대로 드러낸다.

프린세스

주목할 것은 이 작품이 취하는 실사와 애니메이션에 대한 태도이다. <프린세스>에는 현재의 이야기가 애니메이션으로 진행되는 동안, 과거의 플래쉬 백 장면이 실사로 등장한다. 가정용 홈비디오로 촬영된 실사장면은 거친 표면과 흔들리는 카메라의 모습을 통해 마치 다큐멘터리적인 요소처럼 꾸몄다. 예컨대 이들은 현재 사건이 일어나고 있는 애니메이션의 현실과 현실을 침범하는 실사이미지로 구성된 과거 판타지적 기억으로 구성되는데, 이 작품은 결국 두 가지 층위를 오가며 매체의 착종된 성격들을 서로 맞교환 시키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그 결과 그려진 이미지, 즉 애니메이션은 이제 현실이 되고 실사의 장면은 불완전한 기억, 즉 상상의 이미지가 되어버렸다. 

물론 이 작품이 가진 서사 구축의 방식은 상당히 구조화되고 양식화된 형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의미를 가지는 것은 우리가 자칫 그려진 이미지에 고착되어 왔던 서사를 단순히 환상성으로만 치부하는 우(愚)에서 벗어나게 해 줄 수도 있다는 점 때문이다. <돼지의 왕>이 우리의 애니메이션을 그 우에서 벗어나게 했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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