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
[초이스]요세미티와 나
김지현, 2011
독립영화 감독인 ‘나’는 흔히 필름으로 영화를 만들었으나, 막 디지털로 이행하던 시기인 1990년대 후반에 영화감독이 되었다. 흡사 삐삐거리는 모뎀소리가 들려올 것 같은 정겨운 PC통신을 통해 친구들을 만나던 때, 감독은 요세미티라는 별명을 가진 매킨토시 G3를 소개받고 그로부터 9년간 요세미티로 영화를 편집해 왔다. <웃음>, <연애에 관하여>, <뽀삐>, <앞산전>까지. 감독은 어느 날 요세미티의 물리적 운명이 다했음을 직감하고 추억을 기록할 것을 결심한다. 요세미티가 진실로 또 다른 생명을 부여받는 순간, 자연을 경외했던 시간에 대한 기시감이 언뜻 스친다. 남들은 웃을지 모르지만, 사물에도 영혼이 있다고 믿는 것은 여러모로 재미있다. 오래된 낡은 것에 스티커를 붙이고, 이름을 지어주고, 말을 나누는 행위, 그 유치한 경험 가운데, 소위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는 세계의 단단한 차원을 벗어나는 느낌이랄까.
영화는 드라마의 외형을 가지고 있기는 하나 다큐멘터리적인 요소가 다수 개입되어 있다. 영화 속에 이야기 대부분은 사실에 가깝고, 추억되는 에피소드와 언급되는 영화, 심지어 등장하는 인물들 역시 그때 그 시설 스탭이고, 배우이고, 동료이다. 무엇보다 감독 자신이 ‘나’를 재연한다는 것이 흥미롭다. 이전 영화 만들기 과정에 대한 몇몇 인터뷰 신에서 감독은 진짜 묻고 싶었던 것을 질문하고 인터뷰이는 응당 답할 말을 하고 있는 듯하다. 극과 다큐멘터리를 오가는 양식적 구조는 영화에 특별한 재미를 더한다. 강호에 의리가 떨어진 시기 <웃음>의 편집 기사를 자청했던 정창익과 편집을 익히는 과정에선 뜻하지 않은 러브라인이 발견된다. <연애에 관하여>에선 영화의 제작과정에 대한 다양한 비유가 등장 하는데, 분당 13,200원의 택시미터기에 비유된 필름의 소요비용과 각본에서 편집까지 감당해야 하는 1인 제작시스템의 등장은 본격적인 디지털 영화 시대의 진입을 반영하고 있다. 나름 거액의 지원금을 받았던 디지털 장편영화 <뽀삐>에 이르러서는 감독의 작가세계를 구축하는 독특한 자아에 대한 고백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뚝심 있게 작품을 완성해 왔던 작가적 의지가 엿보인다. 그리고 감독으로서의 또 다른 욕망과 실패. 그 경험으로 인해 우리는 한동안 감독을 만나지 못했다. 방송외주프로덕션에서 일하면서 단 한명의 친구도 만들지 못했던 감독 마침내 다시 영화세계로 돌아오기로 결심한다. 우여곡절이 난무하고, 고통이 감독을 철학케 했던 시간, 그러나 친구들이 있었던 그때로. 감독은 다시 요세미티를 꺼내든다. <앞산전>은 감독이 다시 영화를 만들 수 있게 용기 준 작품으로 요세미티는 막대한 분량의 테잎을 우직하게 감당하며 그 자신의 마지막 필모그래피를 기적처럼 완성한다.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 영화 제작 기반뿐만 아니라 곳곳에서 낡은 것이 무너지고 새것이 들어선다. 누군가는 미래를 선도하겠지만, 대부분은 변화를 따라갈 뿐이다. <요세미티와 나>는 그 시대를 통과한 감독 자신을 포함한 독립영화인들에게 대한 기억이고 추억이다. 때문에 영화는 수행적이고 성찰적인 다큐멘터리의 면모를 품고 있다. 요세미티를 이야기하는 그곳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반추하는 감독을 만날 수 있으며, 또한 각자의 그리움을 떠올릴 수 있다. 천연덕스럽게 밀어붙이는 김지현 감독의 영화적 방식은 위기의 순간에 언제나 부팅에 성공해 주었던 요세미티처럼 아슬아슬한 구석이 있다. 그 예측할 수 없음이 쌓아 올린 감독의 영화들. 그것을 돌아 볼 수 있는 진정한 여유를 가지게 된 감독은, 이제 요세미티를 딛고 어디로 나아갈까. <요세미티와 나>를 보고 나면, 감독의 전작이 다시 보고 싶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