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
[초이스]러브, 오키나와
후지모토 유키히사,카케야마 아사코, 2012
최근 주위 지인들로부터 자주 듣는 말이 있다. 내가 속해 있는 다큐멘터리 제작집단 “푸른영상”의 작업 스타일에 대한 것이다.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어쩌면 그렇게 영화가 똑같을 수 있냐고들 한다. 마치 한 사람이 만든 영화 같다고들 한다. 현장에 밀착해 억울해 하는 사람들의 아픔과 분노들을 기록하는 것에 머물며 이를 선전, 선동의 도구로 활용하는 단선적인 화법들이 이제는 조금 촌스럽지 않느냐고들 한다. 기록영화를 시작할 즈음인 10년 전에도 나는 같은 이야기를 들었었던 것 같다. “나는 정말 과거의 방식을 답습하며 제자리를 맴돌고 있는 걸까?”, “현장의 기록 안에서 새로운 질문과 논쟁이 될 수 있는 무엇(영화적 진실)을 찾기 위해 나는 어떤 노력을 해 왔을까?”, “현장에서의 나의 작은 경험들이 사회적 의미로의 확장을 담보하고 있을까?”, “그리고 나의 영화가 효과적인 이야기 방식을 취하고 있을까?”, 카메라를 들고 현장에 있으면서 늘 하게 되는 고민들이다. 정말이지 치열하게 하는 고민들이다. 20년 전과 다를 바 없는, 아니 좀 더 험악해진 우리의 현재를 기록하는 방식, 혹은 이를 발화하는 방식에 더 큰 고민들이 필요함은 당연하다. 그리고 이는 어제, 오늘의 고민이 아님을 나는 분명히 알고 있다.
최근 다녀온 밀양 송전탑 건설 현장에서의 고민도 같은 것이었다. 한전의 송전탑 건설을 돕기 위해 매일 2000여 명의 경찰들이 주민 할머니 다섯 분을 둘러싸고 있는 현장에서의 일이다. 할머니들은 ‘축복받은 땅’ 밀양을 자랑스럽다고, 사랑한다고 하셨다. 그리고 자신들의 땅에 송전탑이 지어지는 것은 그들의 삶을 짓밟을 뿐 아니라, 자연 생태계를 파괴하는 짓이라며 분노하셨다. 할머니들은 다수의 이익을 위해 소수가 희생해야 한다는, 그런데 그 다수의 이익이라고 하는 것도 너무나 허무맹랑한 거짓임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셨다. 평생 농사일 하시며 고생하셨던, 그래도 지금보다는 행복했다 하시는 할머니들의 눈물 나는 사연들을 기록하고 싶었다. 그리고 카메라를 들며 생각했다. “내가 담을 이 이야기가 어떻게 하면 많은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전달될 수 있을까?”, “특히나 짧은 기간 체류할 수밖에 없는 내가 어떤 질문들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하고 있을 즈음 후지모토 유키히사, 카게야마 아사코 감독의 <러브, 오키나와-헤노코, 타카이, 후텐마>(이하 러브, 오키나와)를 보게 되었다.
영화는 오키나와 땅 20%를 차지하고 있는 미군기지, 헤노코와 다카이에 새로운 미군기지 건설을, 그리고 후텐마 기지에 배치될 오스프레이(수직 이착륙기)를 막기 위한 주민들의 투쟁을 8년에 걸쳐 담았다. 8년의 시간 동안 오키나와의 투쟁 현장을 기록한 카메라는 “미국이 일으키는 전쟁의 공범이 되고 싶지 않아 당연히 투쟁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시민들을, “비행기 소음이 너무 커 이제 웬만한 시끄러움에는 울지도 않는 아이”를 위해 현장으로 나온 어머니를, “현재의 싸움에는 졌지만 그래도 삶의 터전을 위해 계속 싸울 수밖에 없지 않겠냐”며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주민들을 응원한다. 그리고 매일 아침 해상시위를 위해 카누를 타고 바다로 나가는 주민들을 따뜻한 기운으로 위로한다. 영화를 보며 많이도 울었다. 평택 대추리가, 파주 오현리가, 제주의 강정이,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철거민들이 그리고 밀양의 할머니들이 보였다. 동시에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기록영화의 방식을 취하고 있지만, 현장의 진심이 느껴질 수만 있다면 어떤 기록의 방식도 의미 있는 무엇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장에 충실한 기록- 즉 현장에 밀착해 들어가 그들과 함께 만드는, 그들을 위한 영화는 일방향의 이야기가 될 가능성이 다분하다. 때로는 현장의 정당함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 채, 마치 투쟁 당사자들의 대변인이 되어버린 카메라를 발견하기도 한다. 이는 아마도(내 경험상) 내가 찍고 있는 정치적 올바름들을 큰 틀이나 전체 맥락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오히려 감독이 그 소재의 힘에 끌려 다니는 결과인 것도 같다. 부조리함에 저항하는 싸움을 응원하고 그들과 함께 하고자 하는 카메라의 윤리와 그 윤리의 한계일 수도 있다. 그래서 제작자에게 현장은 혹은 현장에서의 관계는 때로는 영화에 독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언젠가부터 하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현장에서의 운동성을 기반으로 하는 기록영화들을 안타까워하며 좀 더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방법들을 질문하는 지인들의 이야기는 더 큰 자극이 되어 돌아온다. 솔직히 그 어떤 기록영화 감독도 자신의 재현방식에 대해 완벽하게 만족하지는 못할 것이다. 매번 내가 혹은 나의 카메라로 경험한 세상을 통해 이 사회에 좀 더 의미 있는 질문들을 던지고 싶은 것이, 최소한 내가 생각하는 창작자들의 욕망이기 때문이다. 변해가는 세태와 시선들 안에 다양한 영화적 서사방식과 새로운 실험들을 고민하며 살아가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현장을 기록하는 일군의 영화들이 과거의 것을 문제의식 없이 답습한다는 식의 뭉뚱그린 이야기는, 자칫 각 개인 감독들이 기본적으로 존중코자 하는 현장의 존재와 의미를 왜곡하거나 그 이야기 자체를 논외로 만들기 십상인 것 같다. 만약 영화 안에 새로운 질문과 고민들이 보이지 않았다면, 그건 그 각각의 영화에 해당하는 구체적인 자료와 객관적 근거들을 통한 실증적인 비판이 되었으면 한다. 이러한 방식의 논쟁 안에 “영화를 만드는 이”, “영화에 찍히는 이”, “영화를 보는 이” 간의 신뢰와 긴장이 생기고 각 영역에서의 주체적이고 창의적인 행동과 발전적 해석들이 가능할 것이다.
10년 전 다큐멘터리를 시작할 때, “다큐멘터리영화 감독이란 감독이 찍고자 하는 대상들의 삶의 모습과 태도를 겸손히 배우고 성찰한 뒤, 뒤돌아서 이를 관객들에게 전달해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라고 어떤 선배가 조언을 해 주었다. 나는 아직 이 말에 동의한다. 겸손히 배우고 성찰하며 이를 관객들에게 보여주는 방식에 대해 많이 서툴고, 어색하고, 그리 새롭지는 않지만, 현장의 경험과 그들의 진심이 내 영화의 원천임을 나는 확신한다. 그리고 이를 확인시켜 준 영화가 바로 <러브, 오키나와>였다. 긴 시간 동안 현장을 지켰던 성실한 카메라, 그 카메라는 내가 머리로만 알고 있을 수도 있는 이야기를, 울림 있는 삶의 이야기로 내 가슴에 전달해 주었다.
과연 나의 카메라가 밀양 할머니들의 진심을 담아낼 수 있을까? 일단 연대의 마음으로 현장에 들어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