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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이스]니마

부지영, 2011

[초이스]니마 대표 이미지

옴니버스 영화 한 편을 준수하게 ‘뽑아내는’ 게 참 힘들다. 그 각각의 에피소드가 바통 터치하는 것을 지켜보는 관객도 중간에 한 번쯤은 마음이 편치 않다. 가요 순위 프로와 비슷하달까. 색깔 다른 무대를 골고루 구경하는 풍성함이 있다 싶다가도, 그 사이에 그저 장르의 차이라고만은 할 수 없는 엄연한 수준차 (또는 보는 이의 호불호)가 존재하기에 공연이 아닌 경연을 참관하는 듯 얄궂은 마음도 드는 것이다. 비유가 좀 얇긴 했지만 옴니버스 영화가 의미 있는 성과를 내기 힘든 이유가 거기 있지 않나 싶다. 다만 그렇게 미리 까칠한 태도로 관람하더라도 국가인권위의 다섯 번째 옴니버스 프로젝트인 <시선 너머>의 성취는 상당하다. 새터민 청소년을 다룬 <이빨 두 개>는 강이관 감독의 다른 작품이 그렇듯 신중해서 아름답고, 이주노동자를 다룬 윤성현 감독의 <바나나 쉐이크>는 주제에 눌리지 않은 활력이 넘친다. 김대승 감독의 <백문백답>은 정보인권 이슈를 직장 내 성폭력 문제와 세련되게 결합시킨 웰메이드이고, 부지영 감독의 <니마>는... 

그래, 이 <니마>가 조금 튄다. 기왕에 릴레이에 비유하자면, 중간에 바통을 받아서는 비뚤배뚤 뛰다가 가속도를 내려나 싶은 순간에 구간이 끝나는 주자다. 여성, 불법체류 이주민, 비정규노동자 등등 한국사회에서 소수자/약자로 규정될 정체성을 주인공 캐릭터 (모텔에서 청소일을 하는 몽골이주여성노동자 ‘니마’) 에 단번에 모아놓고 그 수난의 양상을 죄 보여주려니 영화가 너무 바쁘다. 고국 몽골에 남겨두고 온 딸의 출산, 소통을 사양하는 한국인 여성 동료, 방 한복판에 배설물을 싸지르고 가는 무례한 투숙객, 함께 온 여성을 두들겨 패며 되려 유세를 떠는 비열한 남자, 니마를 그저 윽박지르는 모텔 지배인, 나 홀로 출산을 위해 모텔을 찾은 여고생 등등의 이슈가 명멸하는 모습은 마치 옴니버스 속에 또 다른 옴니버스가 위치한 느낌마저 든다.

어, 그런데 이런 태도가 어쩐지 친숙하다. 영화를 공공적 접근(public access)으로 대하고 실천하는 습작들의 리듬이 이렇다. 기존 매체들이 시선을 할애하지 않던 자신과 이웃의 삶을 한 번에 담아내려니 배열이 서툴고 바쁘다. 드라마의 구축보다는 우정의 나열이 중요해진다. 어찌 보면 연출자에게도 이 몽골 여성은 노련하게 극화해야 할 대상이 아닌 정말 이웃인 거다. 드라마보다는 우정이 중요한 거다. 

대개 이런 태도를 프로답지 못하고 아마츄어에 가깝다 얘기한다. 그런데 아마추어적인 태도가 꼭 부정할 무엇일까? 아마추어(amateur)의 어원을 번역하자면 ‘love of’가 된다. 즉 돈이나 명예를 위해 무엇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사랑하기 때문에 추구한다는 의미. 지금 이 땅에서 공공의 영역이 충분히 보듬지 않는 인물들을 연출자 개인에게 주어진 기회로 감싸려는 부지영 감독과, 영화 속 최약자면서 오히려 모두에게 손을 내미는 니마의 미덕이 그렇게 겹친다. 가령, 온갖 세탁물들이 니마의 손을 거쳐 모텔 구석의 튜브를 통해 꾸역꾸역 내려가던 이미지 - 온갖 잡스러운 사연을 똘똘 말은 타올과 시트들이 툭- 튜브 밖으로 떨어지는 모습은 어떤 낙심의 표현이 아닌 엄숙한 출산을 닮은 풍경이다. 그 앞에서 니마는 그저 낮은 존재가 아닌 늠름한 산파인 셈이다. 자신을 닮은 여성의 사연들을 수렴할 때 묘하게 아마추어 같아지는 부지영 감독 또한 그렇다. 그녀가 더 좋은 산파가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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