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
[초이스]로맨스 조
이광국, 2011
타로점을 보던 중 이상한 생각이 든 적이 있다. 카드 중에 먹구름이 낀 하늘 아래 저 멀리 검은 강이 흐르는 어느 절벽 사이로 망토를 두른 해골 인간이 커다란 낫을 들고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가만히 그 그림을 보고 있자니 묘한 의문들이 떠올랐다.
‘저기가 어디지?’
저 계곡과 구름들과 강, 그리고 인간의 뼈 형상이 있는 걸 보니 지구의 어딘가임은 분명한데, 저 해골도 저 정도 키로 성장하려면 뼈로만 살지 않았을 테고 분명히 인간이었던 적이 있었을 텐데, 그렇다면 부모님도 있었을 텐데 저 해골의 부모님은 엄한 분이셨을까? 저 해골의 살과 근육이 있었을 시절 재산은 어느 정도였을까? 어린 시절에 짝사랑에 실패해 눈물 흘린 적도 있었겠지? 저 낫 또한 누군가 만든 것일 테고 유럽 어딘가의 대장간에서 만들었다면 저 낫을 만든 대장장이는 저걸 과연 누구에게 팔았기에 지금 저 해골이 들고 있는 것일까? 등등... 당연히 그 해골이 서 있는 그 상황은 실재한 적이 없고, 세상 어디에도 그런 곳은 없으며, 그런 해골도 존재한 적 없다. 하지만 그 그림을 보고 있는 동안은(부인할지 모르지만) 그 그림의 실재를 우리는 믿을 수밖에 없다. 아주 잠깐이라도 그건 보는 사람 머릿속에서는 정말 있었던 일이기 때문이다. 다른 예로, TV MBC 채널에 나오는 드라마 속 인물이 압구정동에 산다고 가정해보자. 그 인물이 최신형 핸드폰을 들고 있는 걸 보니 2013년이긴 한데, 그럼 2013년 대한민국의 압구정동에 가면 그 사람이 살고 있을까? 삼성 갤럭시 노트3를 사용하고 있다면 분명 MBC도 존재할 텐데, 저 주인공은 저녁 7시 5분에 MBC를 켜면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일까? 아니라면 다른 건 다 현실과 똑같은데 자기가 나오는 그 드라마만 방송하지 않는, 우리의 우주와 유일한 차이점이 그것인 다른 비슷한 우주에 살고 있는 것일까? 어떻게 보면 쓸모없고 중2스러운 망상들이지만 현실을 모방해 창작자의 머릿속에서 가공되어 재창조되는 세계와 진짜 현실 세계의 경계에 관한 문제는 무척 오묘하고 기괴하며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로맨스 조>의 가장 큰 특징은 복잡하고도 입체적인 이야기의 레이어 들이다. 많은 영화들이 이러한 구조로 택하고 있지만 <로맨스 조>의 탁월한 점은 이런 독특한 구조 그 자체 안에 바로 영화의 정수가 숨어 있다는 것이다. <로맨스 조>는 비선형적인 이야기 구조로 근사하게 치장한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현실 세계와 창조된 세계 사이 경계의 모호함을 대한 영화이며 바로 이것을 위해 가장 이상적이고 정확한 이야기 방식을 따르고 있다. <로맨스 조>의 스토리를 가장 편리하게 정리하는 방법은 모든 것이 ‘고객의 원하는 이야기’를 하려는 국문학과 출신 다방레지가 다 지어낸 이야기라는 것이다. 정말 그렇다고 치자. 이런 방법은 타로 카드 그림이나 TV 드라마를 우리가 얼마나 진짜라고 믿는지에 대한 증거이다. 관객들이 만들어진 모든 그림과 이야기를 진짜라고 생각하기 쉬운 것처럼, <로맨스 조>의 모든 허구 위에 있는 다방레지와 300만 감독만큼은 실재한다고 여기기 쉽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사실 이 영화에서 실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다방레지와 300만 감독조차도 이광국 감독이 만들어낸 2012년에 개봉한 영화 속 허구의 인물일 뿐이다. 어차피 영화란 다 가짜니까. 이 다층적인 이야기의 속임수는 마지막 시퀀스에서 절정을 이룬다. 경찰은 감독에게 주민등록이 되어 있지 않다며 면박을 준다. 하지만 감독을 실재하지 않는 인물이라고 말하는 경찰조차 현실 속의 인물이 아니다. 세상에 어느 경찰이 그런 식으로 ‘부재’에 대해 훈계를 하며 야단을 치는가? 실재함을 과시하는 그 경찰조차 사실 ‘이야기’이라는 다른 우주속의 존재이다.
아주 주관적인 <로맨스 조>의 옥에 티를 하나 지적하고 싶다. 첫 장면에 나오는 액자 속 말 사진이 그것인데, 나는 그 액자 속에는 사진이 아니라 그림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그림이란 구상(具象)주의 작품이기는 하나, 실제로 사물이나 모델을 실시간으로 보고 그린 그림이 아닌 화가의 머릿속에만 나온 그림이어야 했고, 수많은 평행 우주 중에 우리의 우주에서는 일어난 적이 없는 순간을 그린 그림이어야 했다. 왜냐면 실물을 보고 그린 그림이나 사진은 지구 역사상 어디선가 실제 벌어지긴 했던 한순간이므로 ‘허구’, 그것도 ‘실재하는 허구’가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