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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이스]장례식의 멤버

백승빈, 2008

[초이스]장례식의 멤버 대표 이미지

몇 년도였나. 영화아카데미에 입학하고자 입학 설명회에 갔을 때, 단편 영화를 한 편 보여줬다. 흥. 개중에 잘나온 영화 하나 보여주려나 보지. 내가 더 잘 할 자신이 있지. 라는 마음을 보기 시작했고. 영화가 끝났을 땐 약간은 복잡한 마음이 되고 말았던 적이 있다. 잘 만들고 못 만들고를 떠나서 묘한 공기를 잡아내는 능력이 탁월해 보였다. 옆에 같이 앉아있던 (처음 보는) 지원자는 ‘저 영화 무슨 소린지 혹시 아시겠어요?’라고 했다. 무슨 소린지는 알겠는데, 목소리의 톤이 굉장히 생소하네요. 라고 대답을 할까하다가. 그냥 웃고 말았다. 그 영화는 백승빈 감독의 단편 <프랑스 중위의 여자>였다. 

<장례식의 멤버>는 ‘노희준’이라는 소년의 장례식에서 우연히 한 자리에 모인 가족의 이야기다. 이들은 가족이지만 마치 처음만난 사람들인 것처럼 생경하다. 노희준의 죽음 앞에서 떠올리는 그들 인생의 죽음에 관한 기억들을, 영화는 차례로 복기한다. 각자의 삶에서 마주친 죽음들은 삶의 길을 크게 변화 시켰다. 이상하게도, 노희준은 그들의 마음속에 자리했던 죽음의 이미지를 불러온다. 사랑, 경멸, 동경. 그들이 죽음에 가졌던 이미지를 노희준이란 인물에 그대로 투사했던 이 기이한 가족은, 소년의 장례식에 찾아와 꿈을 꾼 듯, 소고기 국에 밥을 말에 먹으며 다시 살아갈 채비를 한다. 웃고 있는 노희준을 뒤로 한 채. 

욕심이 느껴지는 영화다. ‘노희준’으로 대표되는 낭만적인 죽음의 이미지를 중심으로 각종 문학 텍스트의 인용과 짓궂은 유머감각이 뒤섞인다. 위에 아주 간략하게 내용을 언급하기는 했지만, 사실 내용을 말하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는 영화다. 죽음의 이미지에 사로잡힌 자들이 문어체로 떠들어대는 그들의 삶의 궤적에 뜬금없이 끼어드는 B급 영화의 향취가 즐거운 당황을 준다. 산만한 영화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일련의 이야기들이 발생시키는 모호한 공기를 놓치지 않고 잡아내고 있다는 점에서 나는 영화감독으로서의 재능을 신뢰하게 된다. 이 사람은 소설을 쓰기보다 영화를 만드는 게 훨씬 좋겠군. 이라는 확신.

영화적이기보다는 문학에서 빌려 온 것이 많다는 점 때문에 공격도 당하는 것으로 안다. 하지만 그것은 백승빈 감독이라는 텃밭의 영양분일 뿐이다. 아직 싹도 나지 않았다. <장례식의 멤버>는 본격적인 상업영화 감독으로 가기전의 살풀이라는 느낌이 있다. 데뷔작을 찍은지 4년. 전에 가지고 있던 것들을 더 발전시키려 했을지, 아예 다른 분야로의 이동을 준비 중인지는 모르겠다.(아직 시나리오를 쓰시고 있다는 점으로 봐서는 다른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는게 아닌지 생각해본다.) 영화가 아무리 문학적이라고 해도, 영화는 영화다. 영화를 정식으로 배우거나 한 적은 없기에 ‘영화적’이라는 말의 용례가 어느 정도의 품을 가졌는지는 잘 알지 못하지만, <장례식의 멤버>는 한국영화에서 보기 힘들었던 영화적 상상력을 보여줬다는 점은 단언할 수 있을 것 같다. 조만간 두 번째 장편을 만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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