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
[초이스]나를 떠나지 말아요
신이수, 2006
영화 <나를 떠나지 말아요>의 줄거리.
‘윤주와 형근은 동거하는 연인이다. 형근이는 옛날 여자 친구 우정이를 만난다. 둘은 시시하게 헤어졌다. 둘은 다시 시시하게 헤어진다. 윤주는 이상한 남자랑 영화를 본다. 둘은 술도 마시고 잠도 잔다. 윤주와 형근은 서로의 공간에서 예감을 갖게 된다. 둘은 헤어진다.’ 이 영화의 내용은 몇 줄 안 되는 저 시놉시스와 꼭 같다. 이게 전부다.
사람마다 ‘위로’받는 무엇을 가지고 있을 텐데, 그 ‘위로 목록’에 들어찬 것도 제각각일 테다. 음악이거나 영화거나 사람이거나 혹은 또 다른 어떤 것들이거나. 남에겐 특별할거 없어 보이는 것이 “네게는 무엇 때문에 위로를 주느냐” 물으면, 딱히 할 말이 없다. (내게 필요한 위로를 ‘너’ 대신 다른 것이 주는데, 그 위로의 형태에 대해 설명하라면, ‘너’가 가진 언어로 ‘나‘의 부족에 대해 설명하라는 것인데. 진이 빠지는 일이다.)
좋은 영화, 훌륭한 영화들이 많다. 최근에 주목할 만한 영화들도 많다. 하지만 굳이 2006년에 만들어진 오래된 영화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영화가 성취한 보편적 칭찬보다 내 개인에게 위로를 줬던 영화를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찌되었던 영화가 좋아 영화 영역에서 일을 하고 이들에겐, ‘영화=일’ 그야말로 영화가 일이 되어버리는 역전상태가 오곤 한다. 그러다 가끔 ‘난 어떤 영화를 좋아하지, 어떤 영화로 위안을 받았지’라는 생각을 하곤 하는데, <나를 떠나지 말아요>가 떠올랐다.
오래전 이 영화에 대해 어딘가 글을 쓸 때, ‘연애 이야기이며, 기억에 관한 이야기’라고 썼다. 당시에도 이 영화로 인해 받은 위로는 충만한데 그 위로를 표현할 언어가 짧아 애를 먹었다. 이는 지금도 같은데, 이유를 생각해 보니 이 영화를 일로 분석하려들지 않고 관객으로서 받은 위로에 대해 설명하려 하니 답이 없는 것이다. <나를 떠나지 말아요>의 영화적 미덕에 대해 칭송하자면 못할 것 없다. <나를 떠나지 말아요>를 영화적으로 분석하고 흠을 찾자면 못 찾을리 없다. 하지만 저런 이야기를 하고 싶진 않았다.
어떤 영화들은 누군가에게는 흠이 될 부족함을 누군가에게는 위로를 줄 무엇으로 대체해 버리곤 한다. 2012년 다시 본 <나를 떠나지 말아요>는 2006년 당시 나에게 줬던 위로와 다를 수 있겠다. 하지만 영화 속, 순간의 대사들은 지금도 유효하다. 논리적이지도 않고 기승전결에 따라가지도 않는, 무의미해 보이는 대사들에 개인적으로 고단한 마음까지 싣게 한다. 무의미한 대사에 무의미한 대사로 응대하는 배우들의 말들로 위로를 받는다.
가끔은 말없이 이해 받고, 말없이 공감 되었으면 할 때가 있다. 아마도 이 영화를 다시 생각한 것은 누군가에게 저러한 공감을 얻고 싶어서인지 모르겠다. 감독 또한 자신의 영화를 꺼내 놓을 때 영화에 대한 분석도 바라겠지만 진심 가득한 ‘참 좋네요’ 한마디에 기운이 나기도 할테니까.
당시 신이수감독이 <나를 떠나지 말아요>를 통해 말하던 무언가가 지금도 유효한지는 모르겠으나, 2006년 당시 영화를 보던 나와 지금의 내가 같은지 모르겠으나 <나를 떠나지 말아요>는 그대로 있어서 반갑다. <나를 떠나지 말아요>에 출연한 이우정, 류형근 배우들은 현재 독립영화진영의 중요한 배우, 감독으로 함께하고 있어 즐겁다. 더불어 치열하게 고민하고 악전고투 하면서도 유머와 감수성을 잃지 않는 신이수감독의 영화들도 기다려진다.
이번 초이스, <나를 떠나지 말아요>를 통해 누군가가 위안을 받게 된다면 기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