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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이스]MJ

김희진, 2012

[초이스]MJ 대표 이미지

- 어떤 이야긴데?

- 그냥, 교복영화야. 

대충 그렇게 감상을 퉁치고 마는 영화들이 있다. 성의 없어라. 하지만 그것만큼 정확한 비유나 설명도 딱히 없으니까 앞으로도 그 영화가 시시껄렁하면 내 입에선 곧바로 저런 말이 튀어나올 것 같다. ‘그냥 교복영화야, 댓츠 올.’ 

그러니까 왠지 주목할 만한 사연이 있고, 들어줄만한 이야기를 갖고 있을 것 같은 (교복차림의) 십대 소년소녀(들)가 주인공으로 나오지만, 하나 같이 천편일률적으로 시시하거나 고통스러울 만큼 가식적인 이야기와 자세로 일관하는 학교/학원 배경의 영화들, 여기서 아이들은 모두 교복을 입고 돌아다니기 때문에 나중에는 다른 교복영화의 아이들과 섞여버려 이름과 얼굴이 아예 실종되어버린다. 여기서 교복이라는 의상은 거의 저주의 코스츔이다. 그러다보니 그 영화의 주인공 소년소녀가 러닝타임 내내 학교나 교실 근처에 얼씬도 안하는 이야기라 할지라도 일단 교복 차림의 아이들이 짠, 하고 등장하는 순간 나는 움찔, 한다. ‘교복영화인가?’ 

이젠 거의 하나의 장르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많고도 다양하게 시시해서 좀처럼 아이들의 얼굴과 제목을 기억할 수 없는 교복영화들 가운데, 내가 주인공들의 얼굴을 비교적 또렷하게 기억하는 두 편의 교복영화가 있다. 하나는 이우정 감독의 <애드벌룬>, 다른 하나는 지금 소개하는 김희진 감독의 < MJ >이다. <애드벌룬>은 이미 이 코너에 소개된 적이 있으므로, 지금 나는 < MJ >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려 한다. 

이 영화가 재밌는 것은 아예 이 ‘교복’이라는 저주의 코스츔을 벽에 걸어놓고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탐구하려는 듯한 시도가 엿보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의도적인지 아닌지는 별로 상관없다. 이 영화에서 ‘교복’이 해내고 있는 역할을 생각해보면 말이지. 오죽하면 이 영화의 제목인 ''''MJ(엠제이)''''는 주인공 소녀들이 바꿔 입는 교복의 ‘이름’이기까지 하다. 그러니까 걸핏하면 술 먹고 주먹을 교환하면서 다음날이면 또 술잔을 기울이는 (아주 웃프기 짝이 없는) 아버지들의 딸들인 이 (판이하게 다른 성격의) 소녀들은, 도난당한 교복을 돌려주고 돌려받는 과정에서 비로소 서로의 진짜 이름을 알게 되고, 술 취한 아버지를 함께 부축하면서 조금씩 마음을 교환한다는... 정리하자면 그런 이야기다. 

이 영화의 가장 흥미진진한 부분은 치마 뒷자락에 검은 실로 조그맣게 수놓인 ‘MJ''''라는 이니셜의 교복을, 친구가 보는 앞에서 책상 위에 올라가 보란 듯이 갈아입는 ’민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야기 구조상으로는, 클라이막스나 다름없는 부분인데, 그전까지 영화가 보여주던 사실적이고 평탄한 흐름에서 이 장면은 갑작스레 연출적인 설정과 의도가 뾰족, 튀어 나오기에 ’응?‘ 하면서 주목하게 된다. 나는 이 영화를 어떤 영화제 상영을 통해서 보았고, 이후 이어진 GV에서 그 장면에 대한 관객들의 질문에 감독의 답변을 들었는데, 그건 (무리수일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찍고 싶었다는 얘기였다. 

뭐, 당연한 소리. 이 영화가 아예 교복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라고 보면, ‘MJ''''라는 이름의 교복을 돌려주고 갈아입는 그 씬을 꼭 기억에 남는 장면으로 만들고 싶은 건 연출자로서 당연하고도 정확한 욕구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나온 그 씬이 아주 그럴듯하다고 생각하고, 지금도 이 영화를 떠올리면 딱 그 장면만 생각난다. 여기서 좀 더 넘겨 짚어보자면, 나는 이 영화가 딱 그 찰나의 (교복을 갈아입는) 순간에서부서 비로소 출발했으리라 본다. 두 소녀가 교복을 매개로 서로에 대해 알게 되고 말하기 시작하는 것, 그 장면 외의 온갖 설정과 에피소드들은 그 순간을 우선적으로 말이 되게 만들기 위해 공들여 쥐어짜내 조금씩 붙인 것들이리라는 나의 섬세한 추리. 

물론 이 영화를, 웃프기 짝이 없는 아버지들을 통해 만나서 그들과의 삶이 무거워 울고 싶다고 얘기하는 아이들의 애틋한 이야기로 보아도 여전히 말은 되지만, 그건 내가 아주 좋아서 호들갑 떨 만큼 독창적이거나 신선한 접근은 아니다. 게다가 그건 나중에 만들어내 붙인 이야기일 것이기 때문이지. 그러니까 이 영화의 심장에 제대로 접근하는 방법은, MJ 라는 이니셜의 교복을 돌려받고 갈아입는, 말 그대로, ‘교복영화’적인 순간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영화제 카탈로그와 GV에서 언급한 감독의 연출의도를 대입해보자. 영화제 카탈로그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는 사람을 보여주고 싶었다.’ 라고 나와 있고, 이후 GV에서 감독이 한 이야기는, ‘졸업앨범을 보면서 반에 이런 아이가 있었나?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친구들이 있는데 그들을 생각하면서 만들었다.’ 였다. 뭐, 결국 둘 다 같은 얘기지. 그래, 아무리 오래 한 반에 같이 있어도 말 한마디 섞지 못하면서, 똑같은 교복이 주는 그레이존 사이로 얼굴과 이름이 사라져버린 친구들을 나도, 너도, 우리 모두 한 두 명 이상은 알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 MJ>는 그러한 아이들에게 이름을 주고, 피와 살이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주려는 시도에 대한 이야기이고, 더 나아가, ‘(그때) 너를 더 잘 알지 못해 아쉽다’는 이야기를 건네는 것처럼 보인다. 

이 영화는 그것을 가능하게 다리를 놓는 역할을 아예 ‘그놈의 교복’에게 맡긴다. 그리고 거기에 이름까지 붙여준다. ‘MJ(엠제이)’. 이 제목은 교묘하고도 정확하다. 그것이 ‘민지’가 아니라 ‘MJ''''라는 점이 말이지. 이제는 이름도 잘 기억나지 않는 과거의 그 친구는 사실, 민지가 아니라, 미정일 수도 있고, 명진이나 미자, 문주, 모조, 멍지....? 뭐, 하여간 그 이니셜의 어떤 이름도 가능하다. 치맛자락 뒤에 조그맣게 수놓은 이니셜 ''''MJ''''을 클로즈업해 보여주는 것 정도가 최선이리라. 

그러니 구질구질한 아버지들과 그리 상쾌하다고 할 수 없는 가정환경 속에서 최선을 다해 웃고 떠들거나, 외롭게 돌아다니는 이 아이들에게 ’교복‘은 그들이 간신히 삶에 붙어서 기생할 수 있게 만드는, 절박한 갑옷이자 코르셋이다. 이 영화의 아이들은 그러한 교복의 비밀을 알고 있다. 그런 면에서 는 아주 훌륭한 ‘교복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이 사실을 무시해도 상관없을 만큼 그 자체로도 정확하게 아름다운 이야기겠지만, 

- 어떤 이야긴데? 
- 교복영화야.
- 그렇군, 댓츠 올.
- 아니, 그게 다가 아니고.

이 영화에 대해 궁금해 하는 사람에게, 아마 나는 이렇게 감상을 들려주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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