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
[초이스]팔당 사람들
고은진, 2013
지난해 6월 이후 나의 일상은 밀양과 부산을 오가며 촬영과 교육을 반복하고 있다. 밀양과 부산을 오가기 위해 오른 기차의 느릿한 창밖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낙동강에 넓고 짙게 펼쳐진 녹조와 싸늘하게 공원으로 닦여버린 논과 밭, 아무도 달리지 않는 자전거길, 이제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집터가 쓸쓸히 지나가면 3년 전 그때가 떠오른다. 자신의 삶 터에서 쫓겨난 농부의 절규와 소리 없이 사라져간 모래와 생명들, 밤낮없이 삽질을 하고 모래를 나르는 노동자를 안타깝게 지켜보며 이를 기록에 남겨야 한다는 사명감에 독립영화 감독과 미디어 활동가들이 모여 <강, 원래>프로젝트를 진행했었다. 12편의 단편영화를 제작하고 상영회를 조직하고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강의 현실을 알렸던 2011년. ‘내가 할 일은 마쳤다!’ 착각하며 이후 난 뉴스를 통해 자전거길 개통을 알리는 팡파르를 지켜봤고, ‘보’라 불리는 ‘댐’ 완공 소식을 남 일처럼 전해 들었다. 그러던 2012년 뜨거운 여름 어느 날 고개가 갸웃하는 소식이 들려왔다. 4대강 싸움에서 처음으로 농민이 승리했다는 소식이었다. ‘세상에 이런 일도 있구나~’ 기뻐하며 그들의 이야기가 다큐멘터리로 완성되길 기다렸다.
고은진 감독의 <팔당 사람들>은 우리나라 최초로 유기농을 시작한 팔당 지역 농민들의 삶과 4대강 사업 반대 투쟁을 다룬 다큐멘터리다. 팔당 유기농 단지는 경기도의 자랑거리였다.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2008년 세계유기농업학회 국제학술대회에서 “유기농의 발상지인 팔당 지역, 양평에서부터 시작해서 대한민국 유기농의 중심지역입니다.” 라며 전 세계인에게 자랑하곤 팔당 유기농을 적극 권장했다. 그로부터 몇 개월 뒤 정부의 4대강 정비사업 발표 후 팔당댐 안에서의 유기농이 발암물질을 생산한다며 어떤 형태의 농사도 지어선 안 된다고 180도 입장을 바꾼다. 마른하늘에 곤파스 태풍이 몰려오듯 밭만 일구던 농민들의 삶도 거센 ‘4대강 사업’ 광풍에 마구 흔들린다.
영화는 4대강 사업의 허와 실을 직접적으로 파고들거나, 농민들의 투쟁 과정을 자세하게 나열하지 않는다. 대신 유기농지를 만드는 방법과 농사를 대하는 농민들의 마음을 겸손하게 들어준다. 그 속엔 땅을 함께 일궈나가는 기쁨이, 1년 동안 가꿔온 수확물이 맛없을 때 느끼는 절망이, 계란 껍질 술잔으로 소주를 나눠 먹는 즐거움이 담겨있다. 뿐만 아니라 유기농지에서 살아가는 지렁이와 자 벌레의 느릿한 걸음을 지긋이 바라보고, 어떤 것과 바꿀 수 없는 두물머리의 풍경을 꼼꼼히 들여다본다. 그리고 4대강 사업으로 갈기갈기 찢기는 공동체와 차마 울지 못하는 분노를 담아내려 노력한다. 어떤 이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20년 넘게 자식처럼 일궈온 땅을 버리고 대체 부지를 찾아 말없이 떠나고, 다른 이는 땅의 가치와 자신의 명분을 지키기 위해 남는다. 떠난 이와 남은 이의 미안함과 서글픔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태풍 곤파스가 훑고 간 자리엔 비닐이 뜯겨있고 쇠살이 쓰러져있다. 농민들은 다시 농사를 짓기 위해 웃음 가득 농을 던지며 힘을 모아 쇠살을 펴 하우스의 골격을 만들고 비닐을 덮는다. 그로부터 4대강 사업 광풍이 농민들의 삶을 헤집고 지난 3년 후, 끝까지 싸움을 이어온 농민들이 하우스에 앉아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다. 그들의 대화엔 한숨과 후회가 오가고, 얼굴엔 피곤과 수심이 가득하다.
영화는 논 위에서 달집태우기를 하며 소원을 비는 농민들의 모습에서 시작해 단단한 공원으로 변해버린 두물머리의 풍경으로 맺는다. 이젠 더 이상 달집태우기를 하며 수줍게 웃는 농민도, 그들이 바랐던 삶도, 유기농지에 살던 지렁이와 자 벌레는 보이지 않는다. 영화를 보면서 2012년 여름날 ‘세상에 이런 일도 있구나~’는 무지에 의한 기쁨은 사라졌고 며칠 전 밀양 송전탑 반대 투쟁을 하는 농부의 말이 떠올랐다.
“연대하는 이들이 있어 희망이 커졌다. 그만큼 싸움은 길어졌고 우리들의 상처도 깊어졌다. 끝까지 함께 싸워 이길 수 있도록 하자!”
책임 있는 연대! 고은진 감독은 팔당 농민들 곁을 지키며 국책사업이란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에 맞선 이들의 삶을 충실히 담아내어 보는 이들로 하여금 농민들처럼 한숨과 후회, 피곤과 수심을 가득하게 만든다. 고은진 감독의 <팔당 사람들>은 <강, 원래>프로젝트 이후 4대강 사업을 나 몰라라 했던 나를 돌아보게 했고, 카메라를 들고 밀양에 연대하고 있는 내게 책임 있는 연대가 무엇인지 또 하나의 길을 알려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