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
[초이스]아야의 밤엔 사랑이 필요해
마거리트 어바우트, 2013
“사람 사는 게 다 똑같지 뭐.” 해외에 나가면 유명관광지는 못 들러도 숙소 근처 골목길은 꼭 한번 돌아보고 오는 편이다. 손짓발짓으로 의사소통하는 게 더 편한 수준인지라 혹시나 눈이라도 마주칠까 조심하는 편이지만 어느 나라건 골목길 풍경 슬쩍 한번 보고 나면 왠지 마음이 편해진다. 짧은 풍경일지언정 몇 마디 단어에 미처 담지 못할 생활의 냄새가 묻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야의 밤엔 사랑이 필요해>(이하 <요푸공의 아야>)는 이처럼 비슷한 듯 다른, 다른 듯 닮은 일상의 흔적들이 차곡차곡 쌓아 교감하는 애니메이션이다.
흔히 ‘아프리카’라는 단어 뒤에 조건반사처럼 따라붙는 이미지들이 있다. 드넓은 초원을 달리는 야생동물, 기아에 시달려 배만 볼록 하게 나온 아이들의 눈망울, 내전으로 피폐해진 사람들의 지친 표정 등등. 뉴스나 자연다큐멘터리 같은 미디어를 거쳐 학습된 이 이미지들에는 빈곤과 미개에 대한 환상이 자리한다. 설사 거짓은 아니라 해도 여기엔 실제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표정이 생략되어 있다. 그 사이 우리는 그들도 우리처럼 먹고 마시고 즐기고 사랑하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종종 잊는다. <요푸공의 아야>는 거꾸로 이 당연한 사실에서부터 걸음을 뗀다.
이야기 자체는 흔해빠진 통속극에 가깝다. 1980년대 코트디부아르의 수도 아비장을 배경으로 꿈 많은 소녀 아야와 그녀의 친구들의 천태만상 연애 이야기를 미주알고주알 풀어 놓는데, 그 모양이 우리네 막장드라마와 놀랍도록 닮았다. 아야의 친구 빈투와 아주아는 신데렐라를 꿈꾸는 수많은 요푸공의 소녀들처럼 마키(무도회장)에서 매일 밤 젊음을 불태우고, 여기에 얼굴만 번지르르한 동네 한량과 한 사람 구실을 못하는 부잣집 도련님이 끼어들어 삼각, 사각 관계로 번지다가 결국 아이 아버지가 누구인지 찾는 소동으로까지 이어진다. 역설적이지만 이 욕망의 소용돌이 속에 그간 보지 못했던 아프리카인들의 진짜 얼굴이 보인다. 고민하고 싸우고 좌절하면서도 농담 한마디 던지며 오늘을 사는 청춘들의 모습이 아프리카도 사람 사는 동네라는 당연한 사실을 새삼 환기시키는 것이다.
이 모든 ‘실감’을 가능케 하는 동력은 그들이 먹고 마시고 사랑하는 요푸공의 풍경들이다. 야트막한 황갈색 담벼락, 비죽 튀어나온 전봇대와 복잡한 전선들, 번잡한 시장통 피어오르는 흙냄새까지 살려내는 섬세한 배경묘사는 관객을 그 시절 요푸공 골목 한가운데로 데려다 놓는다. 이국적인 골목길 풍경 사이 지지고 볶고 살아가는 익숙한 사람 냄새가 나는 순간 비로소 ‘그들도 우리처럼’ 오늘을 치열하게 살고 있음을 깨닫는다. 욕망하되 원망은 없는 삶, 어떤 상황에서도 놓지 않는 삶에 대한 긍정과 낙관,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코트디부아르판 천변 풍경이 여기에 있다. 아프로-쿠바 리듬, 차차차, 크룬 등 80년대 코트디부아르에서 유행했던 흥겨운 음악은 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