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
[초이스]잔인한 나의, 홈
아오리, 2013
영화를 보고 왔다고 하면 주변에서 물어본다. “무슨 이야기야?” 그럼 우선 대략의 줄거리를 이야기하고 인상 깊었던 장면을 곁들여 소감을 이야기한다. 물론 더 많은 이야기를 할 때도 있다. 주인공이 마음에 든다거나 음악이 좋다거나. 어떤 장면의 표현은 새로웠다거나.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것이 일이다 보니 다큐멘터리를 보고도 비슷한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소재와는 상관없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때가 더 많다. 하지만 다큐멘터리는 소재와 분리해서 생각하기가 힘든 구석이 있다. 당연히 관객들도 소재를 보고 다큐멘터리를 고른다. 그러다 보니 어떤 소재는 그저 그 소재라는 이유로 관객들이 피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잔인한 나의, 홈>은 친족성폭력에 대한 다큐멘터리이다. 그러다 보니 그 소재 때문에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는 다큐멘터리이다. 현실의 잔인함, 힘겨운 경험을 한 주인공을 목도해야 하는 순간들이 마음의 무거움을 만들어내기에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런데 <잔인한 나의, 홈>은 보기 시작하는 순간 소재를 듣기만 해도 불러일으켜 진 힘겨움을 날려버린다. 이 점이 이 영화의 첫 번째 미덕일 터이다. 친족성폭력 생존자의 씩씩함, 생존자라는 말이 너무나 잘 어울리는 주인공인 ‘돌고래’(주인공의 가명 혹은 애칭)가 있다. ‘돌고래’는 성폭력에 대한 영화를 만들려고 하는 감독에게 찾아와 주저 없이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한다. 그 주저 없음에 감독은 잠시 망설이는 것 같지만 이내 카메라를 들고 ‘돌고래’를 따라 나선다. 그리고 ‘돌고래’의 법정 싸움에 함께한다. 그리고 이 법정 싸움은 표면적으로 다큐멘터리의 큰 틀거리를 만들기에 관객들은 중간 중간에 들려주는 사건의 개요를 따라가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 이런 다큐멘터리도 흔치 않다. 늘 소재와 주제에 맞는 이야기 방식을 연구해야 하는 감독과 같이 늘 새로운 이야기 방식에 적응해야 하는 관객으로서는 매우 반가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잔인한 나의, 홈>을 다 설명할 수는 없다.
<잔인한 나의, 홈>은 또 이렇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잔인한 나의, 홈>은 믿음에 대한 영화라고. 인간 내면의 믿음이 어떻게 형성되며 어떻게 허물어지고 파괴된 믿음이 어떤 과정을 통해 다시 구축될 수 있는 지 ‘돌고래’를 통해 보여준다.
<잔인한 나의, 홈>에는 성폭력임을 인지할 수 있게 도와주는 책이 있고, ‘돌고래’의 이야기를 믿어준 친구가 있고 진실을 직시했을 때 생겨난 두려움으로 힘겨웠을 ‘돌고래’를 안아준 쉼터 선생님들이 있다. 그리고 주인공의 이야기에 공명하는 감독이 있고 연민과 책임감을 가지고 응원해주는 재판관이 있다. 이들을 통해 영화는 파괴된 믿음을 구축한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이 감독과 ‘돌고래’이다. 감독은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호감을 표현한다. 그러다 배려의 이름으로 불안을 들키고 ‘돌고래’와 갈등을 겪지만 끝까지 ‘돌고래’ 옆에 있으며 확신을 만들어나가고 행동한다. 멋진 ‘돌고래’는 매 순간 솔직하고 갈등하고 두려워하지만 그 두려움에 물러서지 않는다. 친족성폭력에 대해 이야기하는 순간 가족 구성원들은 흔들린다. 누구는 사건을 부정하고 누구는 원망한다. 하지만 ‘돌고래’는 갈등하지 않는다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물러서지 않는다. 등장인물들이 불러일으키는 감정들은 관객에게도 전해지며 몰입을 높인다. 우린 그 안에 누구도 될 수 있다. 파괴된 믿음을 다시 구축할 수 있는 누구도 될 수 있다고 이 영화는 이야기한다. 현실은 잔인하지만 그 잔인함을 피하지만 않는다면 당신과 내가 누군가에게 믿음을 만들어주고 조금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이 될 수 있다고 용기를 북돋아 준다. 인간이 생존하는 데 필요한 믿음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당신과 내가 살아가는데 이만큼 용기를 북돋아 주는 다큐멘터리도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