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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기

2022, 카를로타 페레다

피기 대표 이미지

그날도 여느 날과 같았다. 마을 수영장에 간 과체중의 사라를 친구들이 놀린다. 지독한 말로 조롱하고, 물에 들어간 사라를 뜰채로 괴롭힌다. 한때는 가깝게 지냈던 클라우디아도 수동적으로 가담한다. 그들은 옷과 휴대폰이 들어있는 사라의 가방을 가져간다. 사라는 수영복 차림으로 집까지 걸어가야 한다. 그런데 사건이 생긴다. 한적한 도로에 멈춰 있던 밴이 걸어가던 사라를 지나쳐 간다. 밴의 뒷 창문에 누군가의 손이 올라온다. 피묻은 손이 멈추고, 클라우디아의 얼굴이 비친다. 도와달라고 소리 지른다. 사라는 얼어붙는다. 보고만 있다. 밴의 운전석에 앉은 남자는 사라를 지켜보고, 눈이 마주친다. 남자는 사라의 가방을 남겨두고 그대로 가버린다.

여기까지가 카를로타 페레다가 2018년에 연출한 단편 <피기>(Cergita)의 내용이다. 페레다는 2022년, 단편을 각색하여 장편 <피기>를 만들었다. 단편의 내용은 심플하지만, 생각할 거리가 넘친다. 사라를 놀리던 아이들은 벌을 받아야 마땅한 것일까? 범죄를 보고도 못 본 척하는 사라는 정당할까? 아마도 남자는, 사라가 괴롭힘 당하는 것을 보았다. 그것이 납치의 이유일 수도 있다. 남자의 범죄는 이해할만한 여지가 있는 것일까? 가방을 집어 든 사라는 범죄자인 남자와 공감대를 형성한 것일까?

아이디어로 충분한 단편과 달리 장편은 캐릭터에도, 사건에도 설명을 해줘야 한다. 장편 <피기>는 사라의 부모님이 운영하는 정육점 장면으로 시작한다. 고기를 썰고 다지고, 소시지를 만든다. 인간이 먹기 위해 존재하는 동물의 고기들을 다루는 곳이다. 정육점에 앉아 공부를 하는 사라의 시선에는 거리에서 날씬하고 멋진 남녀들이 어울리는 모습이 보인다. 사라는 절대 낄 수 없는 그들만의 리그다. 또래들은 사라를 보면 돼지, 미스 베이컨이라 놀려댄다. 또래에게 사라는 살찌고 못생긴 ‘고기’일 뿐이다. 아이들이 조롱한다는 사실을 안 엄마는 당장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며 사라에게 채식을 강요한다. 모두가 모두를 알고 있는 작은 마을. 그곳에서 사라는 집 밖을 나가는 것조차 두렵다. 눌리고 눌려서, 터져버릴 것만 같다.
 

혐오가 시대정신이 되어버린 요즘, <피기>의 사라는 폭력의 박스에 갇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온라인도 위험하다. 또래들은 정육점에 있는 사라의 가족을 촬영하고 ‘아기 돼지 삼형제’ 태그를 붙여 온라인에 올린다. SNS는 도피의 공간이 아니라 더욱 지독한 혐오의 난장판이다. 현실에도, 온라인에도 도망칠 곳이 없는 사라에게 낯선 남자의 출현은 일종의 판타지로 작용한다. 남자가 친구들을 납치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사라는 두려워한다. 꼼짝할 수 없고, 소리도 못 지른다. 겁에 질린 사라를 보면서 남자는 고민했을 것이다. 남자의 선택은 일종의 믿음이다. 남자는 친구들이 사라를 괴롭히는 것을 목격했고, 사라가 쉽게 그들의 편을 들지 못할 것이라고 믿었다.
사라의 마음은 한층 복잡하다. 작은 마을에서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친구들. 그러나 한때 친했던 친구조차 지금은 사라를 조롱하는 놀이에 가담한다. 누군가를 괴롭히는 것은, 그들의 가장 큰 즐거움이다. 한쪽 편이 되지 않으면, 누구라도 밀려날 수 있다. 당하는 사라의 입장에서는 세상 자체가 지옥이다. 어디로도 갈 곳이 없다. 막막함 뿐이던 순간에 남자는 사라에게 해방을 안겨주었다. 지독하게 사라를 조롱하는 마카와 친구들을 납치했고, 아마도 죽일 테니까.

낯선 남자도, 사라도 마을의 이방인이다. 외부인이거나, 마을에서 따돌림당하는 존재다. 사라는 헤드폰을 끼고, 이불을 머리 위까지 끌어올리고 핸드폰으로 야한 동영상을 본다. 그 남자를 생각한다. 어쩌면 그는 나를 구원해줄 왕자님일지도 몰라. <피기>는 동화적 은유로 사라와 남자의 미묘한 관계를 드러낸다. 사악한 약탈자이지만, 뒤틀린 시스템을 부숴버릴지도 모르는 이방인. 한밤에 가방을 찾으러 숲으로 간 사라는 남자와 마주친다. 아이들을 찾으러 온 부모들이 숲을 헤매자, 사라와 남자는 구석진 곳에 몸을 피한다. 남자와 사라가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며 숨을 죽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혹시 키스라도 하는 것이 아닐까, 두려워진다. 남자는 정말로 사라를 폭력적인 공동체에서 구원할 수 있는 사람일까?
 

마을 사람들은 사라에게 아무 관심이 없었다. 어른들은 무시하며 방관하고, 아이들은 조롱하고 폭력을 가했다. 사라가 수영장에 갔다는 것을 안 경찰과 마을 사람들은 저마다 도움을 요청한다. 클라우디아의 남자친구는 자신에게 가해지는 의심을 풀기 위해, 사라가 증언해달라고 부탁한다. 아무것도 아니었던 존재는, 그들이 필요할 때만 인식된다. 무사히 아이들이 돌아온다면, 모든 상황은 똑같아질 것이다. 무시하고, 조롱하고, 폭력을 가할 것이다. 그러니 피기의 마음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남자는 사라의 주변을 맴돈다. 사라가 좋아하는 사탕을 사서 침대에 올려놓는다. 사라를 조롱하는 남자들을 차로 밀어버린다. 남자의 본성이 무엇이건, 지금 남자는 사라를 바라보고, 무엇인가를 주고 있다.

<피기>의 후반부, 피폐한 건물에서 벌어지는 장면들은 1970년대 유럽풍 그라인드하우스 영화를 연상시킨다. 거칠고 잔인한 폭력은 그대로 노출된다. 사라의 액션이 대단하지 않을 것임은 예상할 수 있었지만, 상상 이상으로 후반부 <피기>의 긴장감이 탁월했다. 학교와 가정에서 끔찍한 조롱과 폭력을 당하던 캐리, 스티븐 킹 원작이고 브라이언 드 팔마가 연출한 <캐리>(Carrie, 1976)의 주인공은 초자연적인 힘으로 조롱하던 친구들을 모두 죽여버린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시나리오를 올리버 스톤 스타일로 연출한 <내츄럴 본 킬러>(Natural Born Killers, 1995)에서 맬로리는 폭력에서 자신을 구원해준 범죄자 믹키의 폭력에 기꺼이 동참한다.
 

밤중에 벌어진 사라와 남자의 기묘한 행각을 보고 나면, 궁금해진다. 사라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만약에 복수를 한다면, 누구에게 할 것인가. 일상의 폭력을 저지른 친구들과 마을 사람들? 사람을 몇 명이나 죽인 낯선 남자? 무엇을 택하건, 딜레마다, <피기>의 포스터는 온몸에 피가 잔뜩 묻은 사라가 길 위에 서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과체중의 사라는 포스터를 가득 메우고 있다. 압박감이 느껴진다. 사라의 과체중 때문일까? 피 묻은 사라의 모습이 낯설기 때문일까? 사라는 슬래셔영화의 공식인 ‘최후의 그녀’와는 많이 다른 캐릭터다. 최후에 살아남은 것은 사라 혼자가 아닐뿐더러 사라는 어쩌면 공범일 수도 있다. 처음부터 범죄를 같이 하지는 않았지만, 방조하고 은폐했다. 사라의 도덕적 딜레마는 최후의 최후까지 그녀를 괴롭힌다.

<피기>는 쉽지 않은 질문을 마지막까지 유지한다. 페레다는 사라가 근본적으로 공동체를 거부하거나 파괴하는 지점으로 나아가지는 않는다. 그런 점에서 결국 <피기>는 안전한 선택을 했다고도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사라의 입장에서 본다면 당연한 선택이기도 하다. <X>와 <펄>의 주인공 펄은 욕망이 좌절되면서 모든 것을 파괴하는 선택을 한다. 펄은 되찾아야 할 것이 있었고, 살인을 통해서 대리만족한다. 사라에게는 판타지적 욕망이 존재할 뿐이다. 완벽하게 망상에 빠지기에 <피기>의 세계는 상식적이다. <피기>에서 그려지는 마을과 주변 사람들의 행동은 평이하다. 애초에 <피기>는 아주 극단적인 상황으로 사라를 몰아가지 않는다. 현실적인 고난을 겪고, 상식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캐릭터다. <피기>는 영리하면서, 꽤나 파괴적인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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