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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이스]옷 젖는 건 괜찮아

이우정, 2009

[초이스]옷 젖는 건 괜찮아 대표 이미지

이우정 영화에 늘 주요 장소로 등장하는 아파트. 그 안에서 아영은 소파에 누워 눈을 껌뻑이며 뭔가 상념에 잠겨있다. 이윽고 오랜 친구 채은의 방문을 무심하게 맞이한다. (후반부 채은의 대사로 추정해 보건데, 둘은 예전에 팬티까지 젖을 정도로 같이 뛰놀던 어린 시절부터의 친구 사이인 듯하다.) 그런데 아영은 채은의 메시지를 확인한 후, 소파에 누워 태아처럼 웅크린다. 이 순간 왠지 그의 정신적 어려움이 느껴지기도 하는데, 엄마의 양수 속이 그립기라도 한 것일까? (이때 카메라는 창밖에서 불안하게 흔들리며 아영을 바라본다.) 

뭔가 분주하고 산만하며, 갖고 싶은 것과 필요한 것은 거리낌 없이 요구하고, “아, 섹스하고 싶다”는 욕구마저 스스럼없이 드러내는 채은과 달리 아영은 말이 없고 뭔가 절제하고 있다. 심심해서 못 견디겠다는 채은의 요구로 둘은 밖으로 나가는데, 커다란 스티로폼을 주운 채은이 앞장서 걸으며 아영을 인도한다. 아영은 현실적 격식을 갖추는데 사용되는 도구로서의 커피 잔을 받침까지 받쳐 들고는 따라 나선다. 이때, 종종 창밖에서 아영을 바라보던 카메라는 어두운 건물 내부에서 방충망을 통해 걸어가는 둘을 훔쳐보기도 한다. 이것은 위상의 역전인데, 이것이 어떤 변화에 대한 예고가 될 수 있을까? 둘은 채은이 아파트에 도착하기 전 거쳐 왔던 장소를 거슬러 지나가게 된다. (채은은 다리 위에서 버스를 내려 한강공원, 학교 등을 지나쳐 아파트 단지로 들어섰었다.) 물이 없는 빈 수영장 안에서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아영을 채은이 손을 잡아 일으킨 후 강으로 향한다. 물이 있는 곳으로 가야 했다. 어둡고 음습한 터널과 습지를 지나 그들은 강에 도착한다. 스티로폼에 나란히 누워 눈을 감은 채 떠내려가던 둘은, 아영의 인상이 변하고 있다는 채은의 지적 직후, 물에 빠지게 된다. 이때 커피 잔도 덩달아 강물에 빠진다. 흠뻑 젖은 채 서로를 대면하는 아영과 채은. 아영은 채은에 의해 뭔가를 알게 된다. 이제 둘은 나란히 걸으며 다시 아영의 집으로 향한다. 

채은은 아영 엄마의 부재를 확인시키고, 아영에게서 빌린, 날지 못하는 조류 모양의 열쇠고리를 가방에 매단 채 아영의 집을 떠난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다시 혼자 남겨진 아영, 알지만 모른 척 했던 채은의 질문에 “어, 알아”하며 혼잣말로 대답한다. 인터폰을 눌러보지만 벨은 울리지 않고, 이윽고 정전. 어둠 속 아파트 건물 내부(자신의 집 앞)에 홀로 남겨진 아영. 아이처럼 맨발인 그는 다시 집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 열쇠의 고리는 채은이 가져갔다.

반응을 하지 않는 인터폰, 이 소통의 부재는 무엇인가? 아영은 빈 집임을 알면서도 왜 벨을 눌렀는가? 강물 위 스티로폼에서 했던 채은의 말을 상기해 보자. “이렇게 누워 눈을 감고 있으면 보이는 것, 그것이 뭘까?” 그렇게 내면을 들여다보는 작업. 어두워진 아파트 내부에서 아영은 이제 스스로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어떤 질문에 스스로 답변을 찾아야만 한다. 여기서 프로이트의 유명한 문구를 한번 떠올려 보자. “Where id was, there ego shall be.” 채은은 자신이 지나쳐 왔던 곳으로 아영을 이끌었고, 아영의 치유(성장, 변화)를 매개하고자 했다. 초반에 보인 아영의 웅크림은 죽음이자 재탄생이며 또한 그것은 변화의 의지이기도 한 것이었다. 채은이 있었던 곳에 아영은 주체로서 들어서야만 한다. 어쩌면 채은은 아영의 퍼스낼리티를 구성하는 한 요소이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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