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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걸작선]최후의 증인

이두용, 1980

[한국영화걸작선]최후의 증인 대표 이미지

이두용 감독의 <최후의 증인>을 처음 본 건 TV를 통해서였다. 1980년대와 90년대 초반 사이에는 TV에서 뜬금없이 한국영화를 틀어주는 일이 빈번했는데, 이 영화와의 만남도 그렇게 시작됐다. 그런데 문제는 무슨 이야기인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시원시원한 전개와 팽팽한 미스터리 구조가 눈길을 붙잡았음에도 이야기가 어찌나 비약을 거듭하는지 결국 기억에 남은 것은 하명중이 입에 권총을 넣고 자살하는 마지막 장면 정도였다. 그리고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야 이 영화가 그토록 이해 불가 수준이었는지 이유를 알게 됐다. 애초 150여 분이었던 러닝타임이 검열을 거치면서 40분 넘게 들어내면서 쪼그라들었던 것이다. 한국영상자료원의 원본 네가 필름이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면 <최후의 증인>은 영원히 괴이한 영화로 기억됐을지도 모른다.

김성종이 쓴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최후의 증인>은 한 형사의 집요한 추적극이자 한 여인의 끔찍한 수난사이며 한 남자의 서글픈 고행기이기도 하다. 이야기를 끌고 가는 건 문창경찰서의 오병호 형사(하명중)다. 서장의 특별지시로 양조장 주인 양달수(이대근)의 살인사건을 수사하게 된 그는 이 사건이 한국전쟁 뒤 지리산에 잠입했던 빨치산과 연관돼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양달수는 당시 우익 청년 대장으로 빨치산 유격대를 소탕하는 데 공헌을 세웠던 인물. 오 형사는 수많은 사람을 탐문한 끝에 양달수가 유격대장의 딸 손지혜(정윤희)와 유격대장이 남긴 유산을 가로채기 위해 그녀의 보호자 황바우(최불암)에게 살인 누명을 씌웠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과정에서 오 형사는 손지혜가 유격대원들 사이에서 위안부 취급을 당했을 뿐 아니라 양달수가 살해된 뒤에는 술집과 다방을 전전해왔으며 손지혜를 지키려다 살인자로 몰린 황바우가 사실은 가련한 역사의 희생양이었다는 사실 또한 알게 된다. 

<최후의 증인>은 외양상으로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영화처럼 보인다. 오 형사는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이 사람에게서 저 사람에게로 끊임없이 움직이면서 수사를 진행하며, 그 과정에서 애초 단순한 살인으로 보였던 사건은 가면 갈수록 거대한 실체를 드러낸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한 퍼즐 조각 맞추기가 아니다. 강원도에서 강 노인으로부터 첫 번째 결정적인 증언을 듣는 순간, 오 형사는 자신이 쫓고 있는 대상이 단순히 살인범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빨치산 투쟁, 손지혜의 고난, 황바우의 희생, 양달수의 음모 등 썩고 뒤틀어지고 얽히고설킨 과거사는 사건 해결의 단초일 뿐 아니라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대상으로 발전한다. 이야기가 서서히 추리에서 역사 드라마로 전환됨에도 <최후의 증인>의 영화적 흥미는 떨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현재와 과거가 서로에게 강력한 영향을 미침에 따라 극적 긴장은 강화되고 호흡은 가빠진다. 

이 영화에서 역사적 진실 규명은 책임감 수준으로 발전한다. 과거를 덮으려는 한동주의 세력에게서 공격을 받고 가까스로 살아난 오 형사는 서장에게 “이 사건은 제가 꼭 해결하고 싶습니다… 경찰도 그만 두겠습니다.”라고 말한다. 오 형사에게 이 사건은 단순한 직무를 넘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해결해야 할 임무가 된 것이다. 이 말은 “당신이나 나나 안일 무사하게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이 져야 할 책임을 그 친구가 대신 십자가를 지고 하고 있소”라는 서장의 이야기와도 연결된다. 

이 ‘(역사적) 책임감’은 궁극적으로 이두용 감독 자신의 것이기도 하다. 이두용 감독은 <최후의 증인> 시작 부분에 다음과 같은 글귀를 적어놓았다. “구악을 일소하고 새 질서를 확립하려는 1980년 이 시대에 어제의 진실이 무엇이고 가짜가 무엇이라는 것을 한 수사관의 집념적인 인간보호를 통해 가식 없이 토론하고 싶었다. 얘기도 어두운 얘기, 화면도 어둡다. 80년대엔 이런 어둠이 사라졌으면 한다.” 또 그는 <씨네21>과 인터뷰에서 “무지하지만 착한 사람들이 권력에 마모되고 상처받는 그 광경을 보여주고 싶었다.”라고도 말했다. <최후의 증인>은 주로 호쾌한 액션영화를 만들었고 멜로드라마와 사극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던 이두용 감독으로선 흔치 않은 사회 드라마였지만, ‘인간보호’정신, 즉 휴머니즘을 긴장력 있는 극적인 형식과 결합해냄으로써 뛰어난 성취를 이뤄냈다. 

하지만 역사의 아이러니는 영화 안에서만 발현된 게 아니었다. ‘구악을 일소하고 새 질서를 확립하려’ 한다는 전두환이 이끌던 당시 정부는 이 영화에 극약 처방을 내렸다. 40여 분을 걷어냄으로써 영화의 맥락마저 제대로 파악할 수 없게 한 것이다. 양달수와 결탁한 검사가 황바우를 선처하겠다고 속인 뒤 손지혜를 자기 방에 들이는 장면이 정권을 불편하게 만들었으리라는 게 이두용 감독의 회고지만, 그보다는 ‘얘기도 어두운 얘기, 화면도 어둡다.’는 점이야말로 이 영화가 고난을 겪은 진짜 이유일 것이다. 빨치산이라는 역사의 어두운 금칙어를 당당하게 들이밀 뿐 아니라 ‘인간보호’와는 정반대 노선을 통해 부와 권력을 획득한 세력을 직설적으로 비난하는 이 영화에 대해 당시 기득권 세력이 어떤 생각을 했는지는 보지 않아도 뻔하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최후의 증인>은 복원사업의 의의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로 기록될 것이다. 과거 검열의 가위질에 의해 누더기가 된 영화에 애초의 가치를 돌려주는 일 또한 오랜 독재의 나날을 겪었던 우리에겐 각별히 중요한 사업이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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