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
[초이스]나무 없는 산
김소영, 2008
몇 년 전, 아동 일시 보호소에 여러 날 머문 적이 있었다. 아동 일시 보호소는 부모로부터 버려지거나 맡겨진 아이들이 짧게는 며칠, 길게는 몇 달간 지내다 부모가 찾아오지 않을 경우 고아원이나 입양기관으로 인계되는 곳이다. 그 곳에서의 첫날, 한 젊은 남자와 그의 손을 잡고 온 6살짜리 여자 아이를 보았다. 담당직원과 이야기를 나눈 남자는, 아이에게 잠깐 여기서 기다리고 있으면 곧 데리러 오겠다고 말한 뒤 자리를 떴다. 나중에 직원에게 이야기를 들은 바로는, 그가 아이의 아빠였고 다시 아이를 찾으러 오겠다는 기약 같은 건 남기지 않았다고 했다. 무슨 사정인지 알 순 없었으나, 어쨌건 아이는 아빠로부터 버림을 받은 것이었다. 그런 사실을 까맣게 모르는 아이는 하루 종일 아빠를 기다렸다. 날이 저물고, 저녁식사 시간이 끝나는 순간까지 아빠가 나타나지 않자, 그제야 아이가 왈칵 울음을 터뜨렸다. 선생님들이 아이를 달래보았지만 쉽게 그쳐질 울음이 아니었다.
그 날 밤. 복도를 걷다 우연히 보게 된 그 아이의 모습이 잊혀 지지 않는다. 자정이 넘은 시각의 커다란 방 안. 잠든 여러 아이들 사이에 홀로 일어나 앉은 아이는 방 안 어둠 속을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 더 이상 울고 있지도 않았고, 그 어느 곳에도 시선을 두고 있지 않았다. 오로지 멍한 눈빛을 한 채 미동 없이 앉아있기만 했다. 그 때 아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분명, ‘다시 데리러 오겠다’는 아빠의 말이 아이에겐 더 잔인하고 가혹한 희망의 끈이 될 것이었다.
영화 <나무 없는 산>를 보며 유독 마음이 아팠던 건, 그 때의 일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진’과 ‘빈’이라는 이름을 가진 어린 자매는 생활고에 시달리는 엄마에 의해 고모 집에 맡겨진다. 아빠를 찾아 다시 오겠다는 엄마는, 어린 자매에게 돼지 저금통 하나를 건네며 이렇게 말한다. “고모 말 잘 듣고 있으면, 고모가 동전 하나씩 줄 거야. 여기다가 동전을 넣고, 동전이 가득차면 엄마 그 때 올게, 알았지?” 그 약속을 신앙처럼 간직한 아이들은, 동전을 모으며 엄마와 다시 만나게 될 날만을 기다린다. 기다림의 시간은 점점 길어지고 아이들의 그리움은 커져가지만, 결국 엄마는 돌아오지 않는다. 버림받았음을 즉각적으로 알게 되는 상황에 놓이는 것과, 자신들이 버려졌다는 것을 오랜 시간 천천히 깨닫게 되는 것. 어느 쪽이 아이들에게 덜 잔인한 일이었을까. 자꾸만 가늘어져 결국엔 끊어질 것 같은 엄마라는 끈을 어떻게든 붙잡으려는 아이들의 몸짓은 그래서 더욱 아프다.
이 영화의 가장 놀라운 점은, 아이들의 연기에 있었다. 그 존재만으로 화면을 꽉 채우는 아이들의 얼굴은 관객으로 하여금 즉각적인 반응을 이끌어내지 않는 대신, 먹먹한 감정들이 조금씩 마음 안에 쌓이도록 만든다. 그 표정들과 그것을 포착해내는 카메라는 어느 순간 경이롭게 다가오기까지 한다. 그리고 이 영화의 또 다른 빛나는 점은, 보통의 영화들이라면 지나칠 법한 여백의 순간들을 포착해내는 세밀한 시선에 있다. 유리문에 기대 눈물 흘리던 진의 뒤통수에 서려있던 하얀 수증기. 무얼 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는 동그란 눈동자와 오물거리는 작은 입술들은 이 영화의 보석과도 같은 장면들이다.
자매를 버리고 떠났던 엄마는 결국 돌아오지 않지만, 영화는 결코 비극적 신파로 끝을 맺지 않는다. 아이들은 도시에서 지방 소도시로, 그리고 결국엔 조부모가 사는 시골로 떠밀리듯 보내지지만, 그 공간의 이동과 더불어 점차 변화하기 시작한다. 시골에서의 생활이 나오는 후반부는 마치 자연의 생명력을 이어 받은 아이들이 점차 회복되어 가는 모습처럼 보인다.
아이들은 조금씩 자연을 닮아간다. 스스로의 힘으로 상처를 치유하고, 그 바탕 위에서 조금씩 성장해가는 자연의 모습처럼, 아이들도 그렇게 자연을 닮아가는 것이다. 그것이 어쩌면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의 바람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무 없는 산>을 보노라면, 일시 아동 보호소에서 봤던 그 아이가 떠오른다. 한 밤 중 홀로 깨어나 멍한 눈빛으로 어둠을 응시하던 아이. 지금은 중학생이 되었을 그 아이는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영화의 마지막 장면. 가을 들녘을 걸으며 노래를 부르던 영화 속 진과 빈의 씩씩한 모습을 애써 떠올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