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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이스]피부색 : 꿀

로랑 브왈로,융 헤닌, 2012

[초이스]피부색 : 꿀 대표 이미지

어린 시절 32색 크레파스를 가진 친구가 부러웠던 적이 있다. 내가 가진 12색 크레파스에는 하나밖에 없는 살색 크레파스가 그 친구에겐 무려 3종류나 있었고, 그 때는 그 친구가 나보다 그림을 잘 그리는 이유가 오직 32색 크레파스 덕분이라고 생각했다. 머리가 굵어지고 더 이상 크레파스 색깔을 ‘살’색이라고 부르지 않을 만큼 사리분별을 하게 된 이후에도 가끔씩 궁금해진다. 누가 먼저 그 색깔을 살색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일까. 융 헤닌 감독의 <피부색:꿀>을 보고 한동안 잊고 있었던 그때의 질문이 다시 떠올랐다. 

<피부색:꿀>은 융 헤닌 감독 본인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한 입양 소년의 성장담이다. 고아원에서 지내다 벨기에로 입양된 소년 전정식은 보통의 양부모 밑에서 평범하게 자란다. 동양인 입양아의 피부색을 ‘꿀’색이라고 부르는 이 작품의 가장 큰 미덕은 입양아들의 사연을 특별하게 취급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도식적인 드라마라면 입양아가 겪는 고난과 양부모의 괄시, 혹독한 환경에서의 성장기를 다루겠지만 소년 융의 삶은 평범했다. 그는 평범하게 괴롭고, 평범하게 외롭고, 평범하게 반항한다. 양부모는 융을 특별히 차별하지도 않고 융도 특별히 엇나가지 않는다. 하지만 안온해 보이는 일상 속에 입양아로서 느끼는 상실감이 곳곳에 묻어 있다. 

흔히 ‘보통’, ‘평범’이라는 말은 평화롭고 별일 없이 잘 산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곤 하는데, 이는 이야기가 만들어낸 착각에 불과하다. 실상 보통사람들의 평범한 생활은 웃고, 울고, 싸우고, 상처 입고, 헤어지고, 화해하는 먹먹함으로 가득 차 있다. <피부색:꿀>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범이란 단어로 덮고 살아가는 진짜 감정에 귀를 기울인다. 특별하고 드라마틱한 사연이 아니라 수십만 입양아들이 실제로 겪었을 법한 심적인 갈등을 담담하게 담아내는 것이다. 융 헤넨 감독은 우리가 이야기를 통해 이해하고 멋대로 상상한 모습이 아닌 입양아의 민낯, 진짜 사연을 보여준다. 때문에 장면마다 공감했을 때의 울림 또한 각별하다. 

일견 다큐에 어울릴 법한 소재처럼 보이지만 <피부색:꿀>의 이야기는 애니메이션으로 표현되었기에 더욱 빛을 발한다. 진짜 삶, 진짜 고민, 진짜 이야기가 지닌 무게. 차분하게 가라앉은 어둠은 투명한 수채화풍의 배경과 둥글고 포근한 인물묘사를 만나 동화처럼 호소력 있게 가슴 속에 파고든다. 덕분에 어두울 수 있는 이야기가 따뜻하게 다가와 보는 이에게 훈훈한 웃음마저 안긴다. 우리가 반드시 보고 제대로 알아야 할 진지한 이야기를 가장 효과적인 방식으로 전달한다는 점에서 애니메이션의 힘을 십분 활용한 수작이라 할 수 있다. 살색을 꿀색으로 부를 수 있는 동심. 상대의 모습을 온전히 이해하려는 진심. 그 위에 유럽인이면서 아시아인, 한국인이면서 유럽인인 작가 융 헤넨, 소년 전정식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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