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
[초이스]1945년의 시대정신
켄 로치. 2013
다큐멘터리 역사에서 어느 시점 이후 ‘프로파간다’라는 단어는 나치 선전을 위해 만든 레니 리펜슈탈의 다큐멘터리와 연결되며 뭔가 불순한 것, 예술과는 같이 갈 수 없는 가치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현실을 기록, 편집하는 과정 전체가 작가의 의도이기에 모든 다큐멘터리는 기본적으로 프로파간다라고 이야기되기도 한다. 현실을 더 직접적으로 반영하는 다큐멘터리의 특성상 프로파간다의 논란은 많은 작품에 따라다녔고 이는 대부분 부정적인 의미에서 ‘프로파간다냐 아니냐’의 논란인 경우가 많았다. 근래 기술의 발달로 영상의 제작, 배급 방식이 변화하면 인터넷을 통한 배포를 목적으로 한 수많은 영상이 만들어진다. 이들 영상은 신속하고 간결한 정보전달을 통한 최고의 효과를 요구하는 인터넷 유저의 특성을 그대로 반영한다. 최근 유튜브를 통해 공개되어 화제를 모았던 <백년전쟁>과 그에 반박하는 <생명의 길>을 비롯한 일군의 영상은 이러한 바뀐 매체의 특성이 다시 ‘프로파간다’를 전면에 표방하는 형태의 영상을 탄생시키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켄 로치의 2012년 다큐멘터리 <1945년의 시대정신>은 극영화를 통해 노동계급을 대변해왔던 감독이 작정하고 만든 프로파간다이다. 인터넷 배포를 목적으로 한 영화는 아니지만 많은 부분 유튜브 프로파간다의 형식을 연상시키는 스타일을 사용하고 있다. 이 이야기를 하기에 이 시대 매체의 환경, 사회적 환경, 특히 받아들이는 관객의 태도에 걸맞은 화법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1945년 노동당 승리에 대한 기억과 회상’이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작품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에서 총선을 통해 정권을 잡은 애틀리 내각에 의해 실현되는 듯했던 이상적인 사회를 되돌아본다. 1차 대전 이후의 가난이 뼈저리게 기억에 남아있었던 사람들은 그 고통을 절대 다시 겪을 수 없었기에 국민 모두의 복지를 약속하는 노동당에 투표했다. 당시 노동당은 ‘전후의 빈곤은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부가 소수에게 집중되어서 오는 당연한 결과이다.’라고 말하며 모든 국민의 기본적 생활의 질을 약속한다. 공약이었던 주택문제 해결은 단순히 살 집의 보급이 아니라 쾌적한 주변 환경, 편리한 교통, 아름다운 배치에 문화 향유권까지 약속하고 있었고 그 약속은 실현되었다. 그때를 살았던 노인들은 당시 접했던 사회주의의 개념을 경쟁 없이 모두 함께 잘 살기 위해 일하는 사회로 경이와 함께 회상한다. 공공 임대주택 입주통지서를 보물처럼 평생 지니고 산 아버지의 기억을 안은 백발의 할머니, 돈 걱정에 아픈 아이들을 모두 보여주지 않으려는 어머니에게 이제 모두 공짜라고 이야기하던 날을 평생 잊지 못하는 노의사는 그 시절이 꿈이 아니었다고 증언하려 카메라 앞에 앉았다. 이들은 자본주의밖에 경험해보지 못한 지금 세대에겐 꿈 같은 얘기일 뿐인 세상을 봤다. 그 후 1979년 대처가 나타나 공기업을 민영화하며 이 꿈 같은 사회를 망쳐놓는 과정, 그 후 달라진 노동의 개념이 실제로 일터에서 어떤 일을 가져왔는지도 이들은 봤다. 켄 로치는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에 대한 관념적 설명 없이 예의 명쾌한 직설 화법으로 두 체제가 사람들의 삶에 미친 영향을 극명하게 대비시켜 보여줌으로써 자본주의가 개인의 삶을 보호해줄 수 없다고 관객에게 설파한다.
흑백의 아카이브 영상과 아름다운 음악으로 그때 그 시절은 무성영화같이 아련하고 시종일관 인터뷰 내용과 관련 영상을 매우 직접 연결하여 편집하는 단순하고 전통적인 뉴스 영상의 스타일을 취한다. 아련한 흑백영화였던 첫 화면의 종전을 축하하는 젊은이들 모습은 영화의 끝에 컬러로 다시 나타나 지금까지 들었던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옛날 얘기가 꿈이 아니라 현실이고 다시 실현 가능하다고 못 박는다.
1945년부터 30여 년간 지속된 그 시절이 정말 영화에서 그려진 것 같은 꿈 같은 사회주의의 실현이었는지와 같은 논쟁을 감독은 스타일에서 이미 거부하고 있다. 다큐멘터리의 윤리와 진정성은 형식이 아니라 그것을 사용한 의도와 그것이 발휘하는 가치에서 찾아야 한다고 볼 때, 의도된 주관적 기억의 미화와 편파성도 영화의 타겟인 젊은 세대들의 이해 방식과 지금의 현실에는 오히려 균형 잡힌 것일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노련한 감독의 의도된 촌스러움 안에 숨은 그만의 미학적 언어는 영화를 수많은 유튜브 영화와 차별화시킨다. 공기업 민영화가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게 된 지금, 민영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여실히 보여주며 우리에게도 경종을 울릴 수 있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