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
[초이스]송전탑 / 765와 용회마을
<송전탑(이동렬, 2013)>, <765와 용회마을(김소희, 2013)>
다큐멘터리 편집은 이상한 묘미가 있다. 애초의 구성에 따라 편집을 하기도 하지만, 가능한 모든 것을 열어 놓고 작업을 하려고 마음을 먹게 되면 처음의 기획과는 전혀 다른 결과물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작업을 하더라도 몇몇 장면들을 중심에 놓고 고민하게 되기 마련이다. 그런 장면을 ‘결정적 장면’이라 칭해보자. ‘결정적 장면’은 어느 때는 주인공의 말일 때도 있고 표정일 때도 있고 그 장면의 분위기일 때도 있고 또는 다른 무엇일 때도 있다. 사실 그것이 무엇이든 감독에게는 그 장면이야말로 주제를 가장 잘 전달해주는 무엇일 것이다. ‘결정적 장면’을 만나게 되면 그 장면을 중심으로 다른 장면들을 조직하게 된다. 다큐멘터리 편집의 논리에 대한 역사적인 논의들이 있지만 그런 것들보다는 ‘결정적 장면’을 만났을 때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게 늘 더 흥미롭다.
올해로 13회째를 맞은 인디다큐페스티발에서 두 다큐멘터리를 만났다. 이동렬 감독의 <송전탑>과 김소희 감독의 <765와 용회마을>이다. 인디다큐페스티발은 작은 영화제이지만 1년 동안 만들어진 다큐멘터리를 통해 한국사회를 촘촘히 들여다볼 수 있는 특이한 경험을 제공해준다.
<송전탑>은 관객을 경상북도 청도군 각북면 삼평1리로 데려간다. 마을에 들어선 송전철탑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동네 사람들을 만난다. 동네 사람들을 답답하다. 법원에서 업무미숙으로 밝혀진 공무원들의 무심한 행정처리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마을 한가운데를 지나가는 송전탑이 2기나 세워지는 동안 속수무책으로 3년을 보냈다. 지금은 마지막 철탑 공사를 막기 위해 분주하다. ‘쌍둥이 아버지’는 자기 부모가 그랬듯이 아직 어린 두 쌍둥이에게 미래가 있는 마을을 물려주고 싶다. 그래서 공사장 입구에 천막을 세운다. 그런데 그 천막 안에는 마을 ‘할매’들이 옹기종기 앉아 있다. ‘할매’들은 너무나 작고 작다.
<765와 용회마을> 역시 송전탑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밀양 단정면 용회마을로 데려다 준다. 공사가 멈춰진 송전탑을 지키기 위해 할머니들이 배낭을 메고 산을 오른다. 시간에는 장사가 없다고 오랜 투쟁에 상처 입은 사람들은 조금씩 멀어진다. 하지만 또 다른 사람들은 농사와 투쟁을 병행하며 일상을 버텨낸다. 오늘은 공사현장을 지키려 산에 오르고 또 다른 오늘은 밭에 나가 깻잎을 딴다. 이내 모여 앉은 사람들은 같이 깻잎을 게며 한여름의 더위를 피한다.
두 작품에서 ‘결정적 장면’을 만나게 된다.
용회마을 사람들이 더위를 피하며 투쟁하기 위해 처 놓은 천막에 송전탑 공사장 노동자 한 명이 걸어 들어온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뭔가를 얻어먹고 동네 할머니들은 공사를 그만하라고 말한다. 노동자는 ‘하루살이’ 같은 자신의 위치를 이야기하고 할머니들은 이 동네 인심이 좋다는 이야기를 한다. 스스럼없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평화로워 보이기까지 한다. 공사장의 노동자도 공사를 막는 마을 사람들도 각자 삶을 살아갈 뿐이다. 순간, 둘 간의 싸움이 아니라 둘을 그렇게 마주 보게 만든 무엇인가를 떠올리는 순간이다. 사건에 매몰되지 않고 사건 속에 숨어 있는 프레임을 보게 만들어 주는 순간.
삼평1리 공사장 입구에서 막으려는 사람과 계속 진행하려는 사람들의 싸움이 벌어진다. 질퍽한 땅에 포크레인이 잘 지나갈 수 있도록 깔아 놓은 천이 있다. 작디작은 할매가 천을 걷어내며 한마디 한다. “살란다.” 송전탑이 세워지고 전기가 흐르게 되면 마을은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 된다. 분노에 휘청거리며 천을 걷어내던 할매는 이내 쪼그려 앉고 다른 할매들이 천을 걷어내기 시작한다. ‘쌍둥이 아버지’는 할매들이 희망 때문에 싸움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희망을 말하는 할매들 덕분에 희망이란 말의 의미가 확장된다. 작디작은 할매의 ‘살란다’란 말은 모든 사람에게 각자의 목소리가 있음을 그리고 그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함을 깨eke게 해주는 순간이다.
‘마을을 지나는 송전탑은 부산 기장군에 있는 신고리원전 5, 6호기로부터 대도시로 이어지는 송전탑이다.’(<송전탑> 자막 중)
‘결정적인 순간’들이 모이고 몇 개의 자막이 조직되면서 감독들은 우리 모두의 삶이 연결되어 있다고 이야기해준다. 대도시의 전기를 대주기 위해, 아무 상관 없는 사람들의 삶이 어그러지고 있다고 찬찬히 이야기해주고 있다. 누구 하나만 행복해선 어느 누구도 행복해질 수 없다는 깨달음이 너무 늦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