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
[초이스]잠 못 드는 밤
장건재, 2012
장건재 감독의 <잠 못 드는 밤>은 결혼 2년 차 부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멸치 공장에서 일하는 남편과 요가 강사를 하는 아내가 그 주인공이다. 영화는 두 사람이 어떻게 결혼을 하게 됐는지 설명해주지 않지만, 두 사람의 연애와 결혼이 ‘우리 주변의 그 누구’ 혹은 ‘우리 자신’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리라 추측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적당히 선량하고, 상식적으로 살려고 노력하며, 어딘가 여려 보이는 두 사람은 말 그대로 우리 주변의 평범한 젊은 부부이다.
영화는 그 두 남녀가 자그마한 집에서 함께 먹고, 씻고, 자고, 대화를 나누고, 사랑을 나누는 모습을 관조적으로 바라본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 두 사람을 스쳐 지나간다. 풀벌레 소리, 비빔국수, 맥주, 적당히 나온 남자의 배, 조용하고 평안한 섹스, 잃어버린 자전거, 별똥별. 더없이 조용하고 평화로운 여름밤에 두 남녀는 자신들의 삶을 가만히 응시한다. 그 응시는, 표면적으론 일상에서의 현실적인 대화들로 이루어져 있다. 출산과 육아에 대한 갈등, 부모님께 더 잘해야 한다는 근심 어린 다짐, 미래의 삶에 대한 현실적인 고민. 그러나 그 대화 사이의 짧은 침묵, 순간의 시선, 둘 사이를 흐르는 공기, 그리고 그들이 꾸는 꿈속에서, 안온함 속에 도사리고 있는 왠지 모를 불안이 함께 느껴진다. 그들은 일상의 평안과 가늠할 수 없는 불안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두 남녀가 만나 함께 살고, 아이를 낳고, 여생을 함께하는 것에 잠재해 있는 어떤 불안의 요소들. 영화를 보며 그 불안의 요소들이 자꾸만 떠올랐다. 단순히 출산과 육아에 따라오는 현실적인 문제와 두 사람 사이의 관계 변화가 그 불안 요소의 전부일까. 영화는 그 현실적 문제에 대한 끈을 놓고 있진 않지만, 그게 전부인 것처럼 보이진 않는다.
영화를 본 후, 조금은 개인적이고 엉뚱한 연상들이 떠올랐다. 이십 대 초반의 시절, 꽃이 피고 잎사귀가 열리는 화창한 봄날에 느꼈던 근원을 알 수 없는 불안들. 논리적인 말로 설명하긴 힘들지만, 더 이상 바랄 것 없던 젊음과 무미한 일상의 공간에서 느껴지던 은근한 불안감이 그 시절을 지배했던 것 같다. 인생의 정점이라는 건, 떨어질 일만 남은 추락의 또 다른 이름일지도 모를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 시절 가장 자주 듣던 노래 중의 하나가 산울림의 ‘비닐 장판의 딱정벌레’였다. 화창한 봄날, 이어폰을 귀에 꽂고는 김창완의 무미건조한 읊조림을 듣곤 했다. ‘비닐 장판의 딱정벌레, 어디로 가는지 알까 아마 모를 거야. 먹이 찾아 제 짝 찾아 제 발걸음도 잊은 채 평생 헤맬 거야. 그리곤 죽어 흔적도 없이 슬퍼하지 않으면서... 아, 딱정벌레 한 마리 기어가네.’ 노래 속에 나오는 딱정벌레와 내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 때문에 한없이 우울해졌다가, 그 체념이 주는 행복감에 허탈한 미소를 짓기도 했다. 영화를 보며, 왜 봄날의 불안과 이 노래가 떠올랐는진 모르겠다. 영화 속 아내가 나쁜 꿈을 꾸며 흘렸던 눈물이 마음에 와 닿았기 때문일까. 어쨌건 이 모든 건, <잠 못 드는 밤>을 보며 자연스레 배어 나온 개인적인 마음의 잔상들이다.
<잠 못 드는 밤>은 여백이 많은 영화다. 그만큼 여러 층위로 읽혀질 풍부한 요소들이 많다. 누군가에겐 젊은 부부의 현실적 고민이 담긴 이야기로, 누군가에겐 두 남녀의 소박한 사랑 이야기로, 누군가에겐 삶을 흔드는 정체 모를 불안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로 느껴질 것이다. 그 무엇을 느끼든, 영화 속에서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에 마음을 맡긴 채 두 남녀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노라면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의 덩어리들이 차곡히 쌓일 것이다. 그 덩어리들을 숨죽여 응시한다면, 삶에 관한 비밀의 한 조각을 엿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