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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이스]남자는 울지 않았다

문형일, 2011

[초이스]남자는 울지 않았다 대표 이미지

'울지 않는 건 이상하다고 생각해요.'
지난 6월 영상자료원에서 있었던 독립애니메이션 정기상영회에서 한 관객이 손을 들고 한 이야기이다. 그렇다. 우리는 아버지의 눈물을 본 적이 있는가. 아버지라고 남자라고 해서 슬픈 일을 슬프게 느끼지 않을 리 없다. 그럼에도 그들은 ‘남자는 태어나서 세 번 운다’는 말처럼 좀처럼 어떤 슬픈 상황에서도 눈물을 보이지 않는다. 이처럼 울지 않는 남자는 강인함의 상징인 것 같지만, 정말 그럴까? 아니다. 솔직히 관객의 말그대로 이상하다. 

지난해 인디애니페스트 영화제에서 졸업작품으로서는 이례적으로 대상 ‘인디의 별’을 수상한 문형일 감독의 작품 <남자는 울지 않았다>는 울 수 없었던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한 소년이 태어난 날 악마가 찾아와 부모에게 ‘이 아이가 처음 우는 날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부모는 아이가 어떠한 일이 있어도 울지 않는 아이로 키우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한다. 그리고 정말로 아이는 <프란다스의 개>를 읽고도, 부모가 이혼을 해도, 또한 어머니의 죽음에도 울지 않는 아이로 성장한다. 그러던 주인공은 자신의 아이가 태어나 첫 울음을 터뜨리는 순간, 그 울음이 ‘싫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그동안 참아왔던 눈물을 어린아이처럼 쏟아낸다. 그리고 그날 주인공은 죽음을 맞이한다. 

사람들은 곧잘 눈물을 흘리면 카타르시스를 느낀다고 이야기한다. 카타르시스는 ‘정화’라는 의미의 그리스어이다. 즉, 눈물은 감정의 정화이며, 이는 복잡한 정념의 승화작용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울지 않는 사람’은 강한 사람이라기 보다는 정화되지 못한 감정으로 마음이 굳은 부러지기 쉬운 사람이 아닐까? 언제부터인가 여기저기서 한국은 ‘분노사회’가 아닌가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순간적인 분노를 억제하지 못하고 범죄도 늘어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에 의하면 충동조절장애의 환자 추이를 보면, 남성이 여성에 비해 4.7배나 많다고 한다. 비교적 눈물을 흘리는 등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자유로운 여성이 결국 정서적으로 보다 안정되어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이 작품은 ‘남자는 울면 안된다’는 사회적 통념과 억압에 대해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담담한 목소리의 나레이션은 그동안 숨겨왔던 복잡한 감정들에 ‘괜찮아’라고 말을 건네는 것 같다. 그동안 사람들 저마다의 억눌렸던 감정이 주인공의 눈물을 보면서 시원하게 뚫려나가게 하는 작품이다. 그렇게 관객들의 웃음소리가 눈물로 바뀌는 그 순간, 흘러나오는 눈물과 함께 나의 감정 또한 정화될 것이다. 그렇게 스스로의 감정에 솔직해진다면, 보다 자유롭게 이 세상을 바라보고 정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왜냐하면, <남자는 울지 않았다>는 단순히 한 남자의 ‘눈물’에 대한 이야기에 머물고 있는 작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를 억압하고 있는 수많은 사회적 기제들을 담담한 목소리로 지적하고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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