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
[초이스]아마추어
예그림, 2012
<아마추어>는 지난 전주국제영화제 한국단편경쟁부문과 인디포럼에서 만날 수 있었던 작품이다.
영화를 만들고 싶은 유리는, 오랜 만에 만난 친구들 앞에서 좋아하는 “태국 영화”와 등장인물 “아줌마”를 은근히 열 올려 얘기한다. 지방 집으로 내려간 그녀는, 한겨울에 출몰한 모기 퇴치용 방충제 사는 걸 잊었다는 모친의 귀가는 안중에도 없이 “태국 영화”를 되풀이해 보는 데 열중한다. 그 “태국 영화”는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의 <친애하는 당신>이다. 어머니가 TV를 함께 보길 청하면 방문을 걸어 잠그는 그녀는, <친애하는 당신>의 “아줌마”, ‘온’의 얼굴에 푹 빠져 있다. <아마추어>와 <친애하는 당신>이 꼬집어 일러주진 않지만, ‘온’이 누워 있는 숲은 타이와 버마(현 미얀마)의 국경 지대로 많은 이들이 죽은 곳이다. 그곳에서 일광욕을 하는 ‘온’의 표정이 왜 비통한지 <친애하는 당신>은 제대로 보여주지 않지만, 유리는 그녀의 슬픔을 눅이고 싶다. 허나 자신이 서울로 가면 홀로 지내는 어머니가 무엇으로 사는지 유리가 관심을 두지 않기에, 그녀가 채집하는 주관적 이미지를 따르던 우리도 어머니의 삶을 알 길이 없다.
영화 속 영화, 자막 등 자기 반영성의 장치에 크게 기댄 이 작품에서, 중간 자막과 제목은 직설과 상징으로 동시에 작동한다. 이를테면 반복되는 중간 자막 ‘아줌마’는 쓰일 때마다 다른 이를 지칭하는 듯도 보이지만, ‘아마추어’라는 제목은 대놓고 주인공 유리 혹은 작가 자신을 드러내는 언술인 듯싶다(‘아마추어’는 오늘날 흔히 ‘비전문가’를 일컫지만, 기실 ‘사랑하는 것’이라는 라틴어 amator에서 나온 말이라 한다).
‘자기 반영의 영화와 문학’의 대가 로버트 스탬에 따르면, 모든 예술은 환영주의와 자기 반영성 사이의 영원한 긴장 관계를 오가며 발전해 왔단다. 환영주의는 언어와 영상의 연결체를 실제 시간인 것처럼, 스스로의 재현을 실체화된 사실인 듯 제시한다. 한편 자기 반영성은 자신의 가면을 스스로 바라보고 숙고하게 한다. (<아마추어>에는 등장하지 않는 장면이지만) 남편과 연인을 옆에 두고서도 언제나 침통한 <친애하는 당신>의 “아줌마”가 버마 출신 불법 체류 노동자의 피부병을 치유하는 연고를 만들듯, <아마추어>에는 영화감독 지망생 유리가 자신과 벗들, 관객 모두에게 보내는 마법의 순간이 있다. 그 순간 속 지난 여름의 개미라는 환영의 재현은, 삶과 영화 만들기 모두에 있어 “아마추어”임을 자인/자임하는 예그림 감독의 자기 반영적인 영화 말미 헌사와 어울려 큰 울림을 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