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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이스]열심히 일하고 신나게 즐겨라

카르멘 로스만, 2011

[초이스]열심히 일하고 신나게 즐겨라 대표 이미지

<열심히 일하고 신나게 즐겨라>는 올해 4회째를 맞는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본 영화이다.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는 국내에서는 접하기 힘든 외국 다큐멘터리 접할 수 있는 공간이다. 다큐멘터리가 가지고 있는 동시대에 대한 성찰과 영화에 대한 실험들을 확인 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해준다. 이번에도 영화제 책자를 살펴보며 어떤 다큐멘터리를 볼까 정하고 있는데 <열심히 일하고 신나게 즐겨라>라는 제목이 눈에 띄었다. 독일 다큐멘터리였는데 영화설명에는 “<열심히 일하고 신나게 즐겨라>는 직장의 경계를 허물며 새로운 일터의 모습을 제시한다. 오늘날 서구 사회의 서비스산업은 사람을 핵심 성장 동력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에 기업들은 앞 다투어 인력 관리에 힘을 쏟고 있다. 기업의 문화에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다. (중략) 신개념의 직장 문화를 과감히 도입한 이들의 이야기”라고 적혀있었다. 그리고 영화 스틸이 있었다. 영화스틸은 양복을 잘 차려입은 남자가 벽으로 막혀 있는 공터에서 뭔가를 기다리는 모습이다. 어딘가 수상하다. 제목과 영화 설명은 얼추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영화를 대표하는 이미지는 묘하게 틀어져 있었다. 보통 영화설명을 보면 대략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다. 자꾸 머릿속에서 ‘정말 이 이야기를 하는 거야?’ 라는 생각이 맴돌았다. 결국 보려 했던 다른 다큐멘터리를 뒤로 하고 이 영화가 상영되는 영화관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열심히 일하고 신나게 즐겨라>는 책자의 설명대로 기업이 인력관리에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는 지 보여준다. 다큐멘터리는 한 여자가 이러 저러한 질문을 하며 시작한다. 업무와 관련한 질문들인데 그 사람의 반대편에서 누군가 대답을 해야 하는 상황인 것 같다. 그리고 타이틀이 뜨고 다국적 기업인 유니레버의 신사옥의 컨셉을 잡는 회의에서 사람들이 편안하게 일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이야기한다. 그리고 신사옥이 만들어 지고 사람들이 일을 한다. 새로운 사옥에는 곳곳에 휴게실이 있고 업무가 효율적으로 이뤄질 수 있는 동선이 마련된다. 공간뿐만이 아니다. 영화는 이후에도 세계적인 기업들이 진행하고 있는 인간의 잠재력을 분석하는 심층인터뷰, 리더쉽을 향상하기 위한 훈련 등 인간의 능력을 향상하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보여준다. 

화면은 깔끔하고 영화의 모든 속도는 느리면서도 적당하다. 각 기업의 노력이 얼마나 사려 깊고 정교한지 보여준다. 감탄스러울 정도로 정교하여 이런 조건에서 일을 하면 정말 효율적이겠단 생각이 들게 된다. 그만큼 다큐멘터리는 기업의 노력 또한 정교하게 보여준다. 대략의 그림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MRI 촬영처럼 정교하게 보여준다. 보이는 것들은 모두 이성적이고 각이 맞는다. 한 치의 오차도 없다. 

헌데 묘한 균열이 있다. 이야기와 이야기 사이의 컷들(영화 설명에 나온 스틸컷은 심층인터뷰의 결과를 기다리는 사람의 모습이었다. 일상처럼 보이지만 막막한 느낌이 감돈다.), 컷들의 묘한 속도감, 보이스 오버로 나오는 소리들이 쌓이면서 다큐멘터리는 ‘보이는 것으로 알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닌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딘가에서 “Are you there?”라고 질문한다. 처음에는 전화벨 소리의 한 종류인 듯 하지만 이내 다른 공간에서도 같은 소리가 들린다. “Are you there?” 그리고 열심히 토론하는 사람들의 말소리 대신 이명이 들린다. 이명은 내 귀 속에서 나는 소리여야 하는데 영화에서 난다. 묘한 균열이 쌓이면서 보여 지는 것과 분리되어 다큐멘터리가 하는 이야기가 들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섬뜩해진다. 이 시스템이 얼마만큼 진화할 수 있는 지 그리고 그 진화한 시스템 속에서 인간은 어떻게 되는 지. 영화가 끝나도 그 섬뜩함이 가시지 않는다. 

좀 거칠게 이야기하면 다큐멘터리는 현실을 다룬다. 현실을 몇 퍼센트로 담아내는 지는 전적으로 감독의 몫이다. 물론 현실을 담아낸다는 것은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까지 포함된 이야기다. 다양한 조합 속에서 양식들이 생겨나기도 한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듯 가장하지만 관객은 똑똑하다. 현실의 조각들 속에서 감독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찾아낸다. 영화보기의 능동성이 가능하기 때문일 것이다. <열심히 일하고 신나게 즐겨라>는 제목도 설명도 보여 지는 것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 다큐멘터리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달랐다. 사건 속에 숨겨져 있는 구조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매우 힘들다. 매번 고민하게 되지만 매번 좌절하게 되는 과제인데 이 다큐멘터리는 나름의 답을 내놓고 있었다. 어떻게 가능 했는지 궁금했다. 이 작품이 감독의 첫 장편이었다. 그럼 독일 다큐멘터리는 어떤 환경 속에 놓여있는 지 궁금했다. 약간 열띠게 이 다큐멘터리에 대해 설명했더니 동료 감독은 아마도 하룬 파루키의 영향권에 있는 작품인 것 같다고 했다. 독일감독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관련한 다큐멘터리를 찾아봐야겠다. 이래저래 요즘의 고민을 환기시켜줬던 다큐멘터리였다. 사건에 매몰되지 않고 실체를 보는 일은 어떻게 가능할까? 다큐멘터리 제작자뿐만 아니라 이 복잡한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도 어렵지만 필요한 질문 일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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