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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이스]지슬

오멸, 2012

[초이스]지슬 대표 이미지

오멸 감독의 (혹은 자파리 필름의) 새로운 영화 <지슬>을 부산국제영화제 기간에 보았다. 영화제가 시작되고, 주말을 넘기면서 주변의 친구들이 하나둘씩 이 영화에 대해서 말했다. 한 지인은 후반부 내내 우느라 영화를 제대로 볼 수 없었다고 했다. 극장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만난 사람은, <지슬>을 보러 가는 길이라고 말하자 엄지손가락을 들었다. 어떤 영화일까. 영화를 통해 어떻게 제주도의 비극적인 역사 안으로 들어가 그들의 이야기를 담아냈을지 무척 궁금했다. 이번 영화 역시도 감독의 전작들(<어이그 저 귓것>(2009)과 <뽕똘>(2009))처럼 뜻을 알 수 없는, 심플한 어감의 제목이 달렸다. 

영화는 1948년 4월 3일 발생한 봉기사태와 그로부터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그 진압과정에서 무자비하게 자행된 양민학살의 사건을 배경으로 다룬다. 민중항쟁의 배경에는 일본 패망 후 남한을 통치했던 미군정 체제의 사회문제와 남한의 단독 정부수립을 반대하는 좌익세력의 활동과 군정경찰, 극우 반공단체의 횡포에 대한 제주도민들의 반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사실만으로 제주 4·3사건을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지슬>은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말없이 죽어간, 역사의 기록에서 누락된 사람들을 스크린으로 불러와, 단순히 선과 악의 편을 나눠 기술하는 방식이 아니라, 당시 희생된 주민들 개개인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는 방식을 택한다. 전쟁에 희생된 대다수의 선량한 사람들이 그러했듯, 영화 속의 사람들도 세상 밖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저 흉흉한 소문을 피해 산 속으로 피신할 뿐이다. 집에 남아있겠다는 노모와 키우던 돼지를 뒤로 한 채… 그리고 그들을 뒤쫓는 군인들이 있다. 나라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징집돼 당신의 부모와 형제에게 총을 겨눌 수밖에 없었던 청년들… 결국 그 둘은 만나고, 대다수의 주민들은 살아남지 못한다. 

오멸 감독의 카메라는 대학살의 참상을 전시하는 함정에 빠지지 않고, 그 과정을 마치 씻김굿을 하듯 건조하고 비장한 톤의 흑백화면으로 담아낸다. 그래서인지 영화를 보고 있으면 장엄한 진혼곡을 경험하는 느낌이다. 주민들은 스멀스멀 다가오는 죽음의 위협 속에서도 시종일관 낙관적인 태도로, 서로에게 온기를 전하면서 칠흑 같은 어둠의 동굴 속에서 긴 시간을 버틴다. 식량을 구하기 위해 마을로 내려간 청년은, 잿더미로 변한 집터에서 끝까지 남아있겠다고 고집을 부렸던 어머니의 시신을 발견한다. 그녀가 죽는 순간까지 품에 지키고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감자. 마을 사람들은 그 사연을 모른 채 청년이 들고 온 잘 익은 감자를 맛있게 나눠 먹는다. 제를 치루고 음복을 하듯. 영화는 이렇듯 제의의 형식(1장 신위(神位), 2장 신묘(神廟), 3장 음복(飮福), 4장 소지(燒紙)의 순)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잘못이 누구에게 있는지 따져 묻고 선동하기보다는, 죽은 사람들을 먼저 위로해야 한다고 믿는다. 아니나 다를까, 비밀스런 영화의 제목 ‘지슬’은 제주말로 ‘감자’를 뜻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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