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
[초이스]가시꽃
이돈구, 2012
영화는 무지 화면 속 사람들의 수군거리는 목소리에서 시작된다. 여기에는 두명의 이름이 등장한다. 박장미와 이성공. 박장미는 성폭행의 피해자이고, 이성공은 원치 않았지만, 성폭행에 가담하게 된 가해자이다. 이돈구 감독의 <가시꽃>은 끔찍한 성폭행의 상황에서 출발해 거두절미하고 10년 후로 건너뛴다. 성공과 장미는 사건 후 10년 후에 우연히 교회에서 다시 만난다. 성공은 의류 봉제 공장에서 일하고 있고, 장미는 교회를 다니며 커피숍에서 일한다. 성공은 장미의 이름을 듣고 `그녀`임을 깨닫지만, 장미는 성공을 알아보지 못한다. 여기서부터 숨막히는 긴장이 감돈다. 다소 사회성이 결여된 성공의 행동은 의아하다. 장미를 미행하고 쉴새 없이 그녀 주위를 맴돌며 직장을 그만두고, 장미가 일하는 커피숍에서 일하게 된다. 그는 장미에게 용서를 구하려는 걸까? 하지만 쉽게 이야기하지 못하고 계속 악몽에 시달린다. 장미는 겉보기에는 발랄해 보이지만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지 못하고 시시때때로 불안에 사로잡힌다.
그렇지만 성공의 노력으로 둘은 친구가 된다. 어느날 교회 수련회에서 서로의 비밀을 고백하는 시간. 장미는 과거의 일을 이야기하며, '죽여버리고 싶어, 그 새끼들 다 불태워 죽여버릴거야'라며 오열한다. 장미에게 사랑의 감정까지 느꼈던 성공은 충격을 받고, 그 길로 서울로 돌아와 과거 함께 성폭행을 행했던 친구들과 선배를 찾아가 그들이 잘못을 뉘우치고 있는지 묻는다. 그들은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고 있지 않다. 성공은 그들은 물론 스스로에게도 단죄를 가한다.
<가시꽃>은 죄의식과 용서 그리고 단죄의 드라마다. 과거의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두 인물을 대비시키며, 용서받지 못한 자와 용서하지 못하는 자의 고통을 보여준다. 두 사람의 상처는 대립적이다. 피해자의 상처와 가해자의 상처. 결코 지워질 수도 없고 양립할 수도 없는 두 개의 상흔. 결국 성공은 장미에게 용서를 구하지 못했고, 장미는 끝내 성공이 가해자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영화는 씻을 수 없는 상처로 인한 비극을 보여주는데 집중하면서 한번 벌어진 일은 결코 주워담을 수 없다는 사실을 각인시키고, 끔찍한 범죄는 다시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고 다짐한다. 하지만 상당히 논쟁적인 지점도 남긴다. 성공이 행한 행동이 장미에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장미가 성공을 용서할 수 있었을까? <가시꽃>은 단선적으로 보이면서 복합적이고, 복합적이면서 단선적이다. 씻을 수 없는 죄의식과 용서에 대한 갈구. 가해자이면서 피해자가 될 수 밖에 없었던 한 남자의 운명의 고리. 그러나 여전히 남아있는 상처들. 한 신인 감독의 집요한 문제의식과 그것에 근접하려는 노력을 <가시꽃>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영화는 때론 기나긴 롱테이크로 호흡을 유지하고, 때론 거칠게 장면을 잘라내면서 완급을 조절한다. 불규칙적이고 거친 스타일은 마치 성공의 성격을 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영화의 긴장감을 유지하는데 효과적으로 작용한다. 수많은 영화들이 만들어지는 요즘 날 것 그대로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해낸 흔치 않은 경우이다. 배우들의 연기 또한 발군이라 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