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
[초이스]엄마의 사랑은 끝이 없어라
김정구, 1997
1996년, 우연히 기회를 얻어 대구에서 시네마테크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는 새로운 영화에 목말랐던 이들이 전국 각지에서 시네마테크를 만들고 활동을 했던 꽃같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당시의 시네마테크는 합법적인 활동이 아니었다. 뭐랄까? 영화 문화의 밑거름을 만드는 일임은 분명했지만 음지에 존재하는 듯한 그런 느낌이었달까?(그래도 그때 활동들은 90년대 한국영화 문화를 더욱 성숙시키는데 크게 기여했…을 것이라고 스스로 위로해 본다.)
그러던 97년 가을, 상상도 못한 전갈을 받았다. 정성일 평론가와 김홍준 감독이 중심이 되어 운영하던 서울단편영화제가 4회째를 맞아 전국 각지에서 고군툰투하는 시네마테크 운영자들을 초청해 영화제의 특별상의 심사를 맡기겠단다, 이름하야 `젊은 시네마테크상`. 삼성영상사업단이 주최한 서울단편영화제는 1회 최우수상 수상자 임순례 감독을 시작으로 새로운 감각의 영화인들을 발굴해냈던 당대 최고의 영화제였고, 4회 영화제에는 영화광들의 큰 사랑과 지지를 받았던 김기영 감독님과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왕가위 감독 등이 심사위원으로 위촉되어 큰 화제를 모으고 있었다. 이런 대단한 영화제에서 심사를 한다는 것은 정말 놀랄만한 일이었다. 뭐랄까, 음지에서 양지로 초대받는 듯한 그런 느낌.
시청 앞 삼성생명 건물에 있던 `전설의` 씨넥스에서 개최된 4회 서울단편영화제의 경쟁작품들은 정말 굉장했다. 이제는 유명 감독들이 된 송일곤, 정윤철, 오점균, 김지훈, 윤종찬, 김태용, 민규동, 고 조은령 등의 단편영화들이 한꺼번에 상영되었으니 오죽 했겠는가? 송일곤 감독의 <간과 감자>, 정윤철 감독의 <기념촬영>이 공동으로 최우수상을 받았고, 오점균 감독의 <초촌면 신암리>가 우수작품상을, 고인이 된 조은령 감독의 <스케이트>가 예술공헌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심사에 참여했던 `젊은 시네마테크상`의 수상작은 <기념촬영>이었다. 하지만, 영화제 내내 가장 화제가 되었던 작품은 김정구 감독의 <엄마의 사랑은 끝이 없어라>가 아니었나 싶다. 10분에 불과한 이 영화는 당시의 어떤 한국 (독립)영화와도 비교하기 힘든 파격적인 작품으로 영화제 내내 화제를 모았다.
`자식 키우기`, `부쩍 커버린 아이`, `두 어른`, `어린 엄마 늙은 자식`, 이렇게 4개의 장으로로 구성된 <엄마의 사랑은 끝이 없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엄마와 아들, 그리고 아들의 애인만 등장하고, 대사도 없는 꽤나 간결한 영화였다. 하지만 작품이 담고 있는 함의는 그리 간단치 않았다. 영화는 제목대로 `모성애`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아름답게 묘사하지는 않았다. 내용은 대충 이렇다. `엄마는 아들을 사랑한다. 하지만, 아들은 엄마의 사랑을 달가와 하지 않는다. 엄마는 이런 아들을 이해하려 한다. 하지만, 아들은 더더욱 엄마를 무시한다. 결국 엄마는 자해라는 방법을 동원해 아들의 사랑을 갈구(?)한다. 그리고 아들은 엄마를 다시 사랑하게 되는데…'.
사랑을 거부하는 아들에게 엄마가 칼을 들고 자해까지 하며 사랑을 갈구하고, 그제서야 아들은 엄마의 사랑을 받아들인다는 내용부터가 심상치 않았다. 영화는 광각렌즈를 적극 활용해 기괴하고 일그러진 이미지들을 만들어내었지만, 반면 음악은 각 장마다 `미뉴에트`, `어머니와 고등어`, `물망초` 등 잔잔하고 애잔한 곡들로 선곡해 이미지와 사운드를 효과적으로 대비시키고 있었다. 이런 이질감을 통해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주제들을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작품이었다.
무엇보다 금기시 되었던 것들을 적나라하게 까발리는 파격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영화 내내 텔레비전에서는 포르노가 그대로 노출되고(무척이나 고급스러운 씨넥스의 대형 스크린에 영사되는 포르노 이미지!), 아들과 아들의 애인의 성기도 은근히 노출되며(게다가 둘 다 남자! 동성애?), 급기야 엄마는 다 큰 아들 앞에서 상반신을 탈의하는 까지 부도덕한 상황까지 등장한다. 당시에는 영화관에서 이런 장면들을 보는 것 자체가 매우 생경한 경험이었기에 꽤나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영화 마지막에 흘렀던 처철한 기타맨이 처절하게 부르는 오리지널 곡 `날 내버려둬`와 엔딩 크레딧 마지막에 등장한 [지하창작집단 '파적']이라는 생경한 제작단체 이름까지 영화는 파격, 그대로 였다. (실제로 지하창작집단 '파적'이라는 크레딧이 뜰 때, 관객의 탄성을 내질렀다!)
김정구 감독의 <엄마의 사랑은 끝이 없어라>는 논란의 영화였지만, 결국 우수작품상을 수상했다. 심사위원들도 이 작품의 파격과 도발에 동의하고 지지했단 뜻이리라. 요즘도 가끔 이 영화를 생각할 때 마다 `젊은 시네마테크상`을 선정할 때 이 영화를 선택했다면 어땠을까란 생각을 해본다. `젊은`이라는 수식어에 맞게 파격적인 영화를 지지했으면 더 폼 나지 않았을까라는 상상. 비록 상을 주며 지지를 표명하진 못했지만, <엄마의 사랑은 끝이 없어라>는 그 이후 15년간 '내 인생의 독립영화'가 되었다. 여전히 기존의 표현과 상상력을 넘어서는 도발적인 영화들은 독립영화 일을 계속하게 했던 크나큰 동력이었다. 독립영화야 말로 상상력과 창의력의 장이자, 영화를 혁신해내는 장이라는 것을 스스로 표현해내는 영화들, 그런 영화들이 너무나 사랑스럽고 자랑스럽다.
[사족] 당시 서울단편영화제 수상작들은 삼성의 케이블채널인 캐치원 등을 통해 방영되기도 했는데, 이 작품은 포르노가 등장하는 등 당시의 사회 정서에 부합하지 못한 관계로 방영되지 못했고 수상작 비디오에도 수록되지 못했다. 하지만 2008년말 독립영화배급사 인디스토리가 창립 10주년을 맞아 자사 배급 작품 중 베스트 10을 선정하여 발매한 [인디스토리의 10주년 기념 DVD]에 수록되며 출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