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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이스]옥탑방열기

고유정 , 노은지, 2012

[초이스]옥탑방열기 대표 이미지

9년전 쯤이었던가? 고맘때쯤 윤가브리엘 형을 만났던 것 같다. 낯선 나를 웃음으로 대해준 친절한 형이라는 첫인상이 남았던 사람. 뒤늦게 언론의 기사를 통해 그가 HIV/ADIS(후천성면역결핍증) 감염인이라는 것을, 어린시절부터 고된 삶을 살아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후 몇 번인가 마주쳤지만 긴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다. 그리고 언젠가 길에서 우연히 그를 보고 다가가 인사했을 때 그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한참이나 내 얼굴을 뚫어져보더니 '경묵이구나!'하며 반가워 했다. 강한 성분의 항생제 복용으로 인해 그 사이 시력이 심각하게 나빠진 것이었다. 그날 헤어지며 그의 눈이 멀어지는 것이 그가 세상으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것 같은 처연한 기분이 들었다. 

작년 한 영화제에서 고유정, 노은지 감독을 만나 가브리엘 형과 그의 연인 두열을 다룬 <옥탑방열기>를 제작중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의 삶이 영화를 통해 사람들에게 보여질 수 있다는 소식에 정말 반가웠다. 그리고 누구보다 먼저 영화를 보고 싶은 마음에 정식 상영 이전에 스크리너를 구해 보았다. <옥탑방열기는> 옥탑방에 동거하는 가브리엘과 두열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 두 사람은 HIV/ADIS 감염인 쉼터에서 만난 연인 관계로 발전되었다. 영화는 극적인 사건과 강경한 어조로 다그치며 정치적 올바름을 무기로 우리를 설득하지 않는다. <옥탑방열기>라는 제목에서처럼 옥탑방 생활기를 통해 이 커플이 지닌 삶의 태도와 에이즈 감염인으로서 세상의 시선에 맞서야 하는 내/외면의 투쟁을 드러내고자 한다. 혹은 열기를 뿜어내는 연인의 사랑 이야기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시간 동안 우리는 옥탑방에 기거하며 두 사람이 청소를 하거나 음악에 맞춰 춤을 추거나 요리를 하거나 그저 드러누워있는 일상생활을 보게 된다. 그 일상 사이에 감염인으로서 에이즈를 대하는 차이를 드러난다. 가브리엘은 동성애자이자 에이즈 감염인으로서 차별받아야 하는 현실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인권 운동가인 반면, 두열은 자신을 감염시킨 동성애자 남성을 잊지 못한 채 HIV/ADIS 감염 이후 삶이 끝났다고 생각한다. 가브리엘은 여전히 자기 안의 포비아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두열을 안타까워 하고, 두열을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연인에게 섭섭해 한다. 그들에게 HIV/ADIS란 세상 밖의 시선뿐만 아니라, 자기 내면에 자리한 지리한 공포와의 투쟁을 의미한다. 그 싸움은 결국 이 관계에 생채기를 낸다. 반복되는 신경전을 겪다 두열은 옥탑방을 떠나기도 하고, 다시 돌아오고, 또 떠나간다. 그러던 어느 날엔 가브리엘과의 생활로 인해 어떤 변화가 있었는 지 두열은 가브리엘이 활동하는 에이즈 인권운동을 함께 하기도 한다. 

기억에 남는 두 상황이 있다. 하나는 에이즈 치료제인 푸제온이란 명칭이 박힌 박스를 버리려 집밖에 둔 것을 주인집의 화분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을 발견했을 때다. 가브리엘은 '푸제온이 뭔지 검색해보진 않겠지'하며 어쩔 수 없이 내버려둔다. 그러나 만약 주인집이 그들의 `비밀`을 알게 될 경우의 상황은 상상만으로도 아찔한 것이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감염인으로서의 산다는 것의 두려움이 보이는 장면이었다. 또 다른 장면은 출판 기념회에서 가브리엘이 가장 좋아하는 뮤지션 한영애씨의 음성을 들으며 백스테이지에서 뒤돌아 눈시울을 붉히는 모습이다. 그 이미지에서처럼 그가 이 사회에 처한 입장 역시 세상에 등 돌린 채 홀로 견뎌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은 서글픈 장면이다.

비좁은 옥탑방에 함께하는 내내 연출자는 자신의 존재를 서스럼없이 드러내고, 종종 그 카메라는 가브리엘이나 두열의 손에 들려있기도 하다. 카메라와 대상 사이 허물없는 친밀성이 주는 장점만큼 촬영은 헐렁하다. 도한 중요한 변화의 시기와 상황들이 보여지지 않고 간자막으로 건너뛰는 형식은, 관계에 초점을 맞춘 영화임에도 그들 관계와 정서적 묘사를 세밀하게 그려내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내가 구한 스크리너는 여전히 가편집본이기에 완성된 영화를 기대하며 기다려 보련다. 무엇보다 윤가브리엘과 두열의 삶을 지지하는 이로서 이 영화를 추천하고 싶다. `침묵은 곧 죽음`이라 믿는 가브리엘의 말처럼 그의 목소리가 많은 이들에게 들려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아마도 세상은 그리고 그들의 삶은 그렇게 조금씩 나아갈 수 있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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