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
[초이스]아버지의 이메일
홍재희, 2012
모든 가족에는 그들만의 비극이 있는 법이다.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가족들 역시 들여다보면 얽히고 설킨 말 못할 사연이 있다. 도대체 이 비극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홍재희 감독의 가족에게 그 원인은 술에 취해 휘두르는 아버지의 폭력인가, 혹은 그 곁에서 자식에 대한 책임감으로 평생 묵묵히 견디기만 했던 어머니였을까? 아니면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어 저 멀리 그를 버린 자식들인가. 감독은 이 비극의 원인을 탐구하기 위해 마지막 생해였던 2008년에 아버지가 그녀에게 보내온 이메일함을 열어본다. 43통의 이메일들은 아버지가 남긴 자기 생의 기록이었다.
홍성섭. 1938년 5월 25일 황해도 황주군 구락면 출생, 2008일 12월 23일 서울시 성동구 금호동에서 사망. 평생 알코올 중독과 우울증을 앓으셨던 아버지의 삶은 그가 관통한 한반도의 근현대사 그 자체였다. 1948년 그는 북조선의 인민군을 벗어나기 위해 목숨을 걸고 38선을 넘어 월남한다. 바로 비극의 시작. 이후 그는 평생 북에 남겨진 가족을 다시 만날 수 없었다. 1950년 6월 25일 전쟁이 발발했고,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가 되었다. 그는 미군부대에서 부역을 하며 돈을 벌었지만 이내 계모 때문에 재산을 모두 탕진하게 된다. 1965년 교사였던 어머니와 선을 보고는 단지 서울 여자가 아니고 착하다는 이유만으로 결혼을 하게 된다. 1964년 한국은 월남전에 파병을 보내게 되었고, 그는 한국에 가족을 남겨두고 돈을 벌기 위해 홀로 베트남으로 향한다. 베트남에서 돌아오자 마자 그는 해외건설 촉진법으로 중동건설붐이 한창이던 사우디로 오일 달러를 벌러 간다. 아버지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가족 곁을, 이 땅을 떠나려 했다. 서독에 광부로 가려했고, 베트남에서는 미국에 가려 했었다. 베트남에서 돌아와선 브라질로, 사우디에서는 호주로 이민을 가고자 했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그의 발을 묶은 것은 바로 반공체제였다. 처남들이 6.25때 보도연맹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해외 출국을 금지 당했고, 소망이었던 이민의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좌절한 그는 무력감에 평생 동안 2평짜리 골방에서 술만 마셔댔고, 술에 취한 채 ‘빨갱이’집안을 원망하며 어머니와 자식들에게 폭력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완전히 변했다. 예전의 모습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미쳤다.’
자기 연민에 빠져 그가 미쳐갔던 건 오로지 그의 잘못이었을까? 그리고 아버지는 왜 그토록 조국을 떠나려 했을까? 지긋지긋한 인민군을 벗어나 남한으로 왔으나 그의 자유는 국가에 의해 철저히 짓밟혔고, 사람답게 살기 위해 오로지 돈만 생각하며 살았던 그에게 이 나라는, 그 시대는 무엇이었을까? 실향민이자, 반공 시대에 의해 꿈을 접어야 했던 아버지에게 남한은 진정 그의 조국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국가주의와 군사적 가부장제의 사회에서 아버지란 국가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전쟁과 이념대립, 군사정권 시절에 개인의 삶이란 국가의 운명에 의해 좌지우지 되었다. 그는 언제나 자신의 꿈과 자유 찾아 그가 머물던 자리를 떠나려 했으나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그와 이 가족의 비극은 전쟁, 남북의 사상 대립, 그리고 군부독재의 시대와 무관하지 않은 삶이었다. 그의 미시적 생의 기록은 질곡의 근현대사를 직조한 씨줄이 되었다. 영화를 보며 도박에 빠져 지내며 어머니에게 폭력을 휘두르던 나의 아버지가 떠올랐다. 일자리를 잃고서 절망에 빠져 지내던 그의 삶은 당시 들이닥친 IMF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 시대를 겪어 보지 못한 우리에게 아버지는 쉽사리 다가설 수 없는 상처 입은 타자의 얼굴을 하고 있다. 과연 우리가 그들을 이해하거나 그 영향에서 벗어나는 것은 가능한 일일까? 연좌제에 묶여 이민을 포기해야 했던 아버지와 달리, 아버지의 딸이자 감독의 언니는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지긋지긋한 아버지의 폭력을 견딜 수 없어 미국으로 떠난 그녀는 과연 자신의 바람대로 아버지로부터 자유로워졌을까? 기이하게도 아들에게 히스테리에 가까운 역정을 부리는 그녀의 모습에서 가정에서 폭력을 휘둘렀던 아버지와 오버랩 된다. 또한 돌아가신 아버지의 삶에 보이는 냉담한 반응 속에는,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상처를 마주하고 포용하려는 대신 그토록 고통을 주었던 아버지의 얼굴을 닮아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고국을 떠난 그녀 역시 여전히 아버지-국가의 그늘 아래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나의 단순한 착각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 모두 아버지처럼은 살지 않으려 하지만 사실 그로부터 버림받은 역사를 이어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 모두의 아버지는 모두 자기 시대의 역사적 부산물이었고, 그들을 혐오하는 우리 역시 그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이해 불가능한 아버지의 모습만큼이나 가족의 비극은 계속 이어질 것 같지만, 영화를 통해 아버지의 역사에 다가서고자 감독이 내민 담담한 용기에 나 역시 당신의 삶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